"같은 긴급 제동인데, 이름만 40개?"

by 뉴오토포스트

자동 긴급 제동' 이름만 40개
ADAS 안전 용어 혼란 심각
제조사 마케팅 경쟁에 소비자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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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아우디

스스로 차선을 유지하고, 앞차와의 거리를 조절하며, 위험 상황에서는 알아서 멈춰주기까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ADAS)은 이제 더 이상 고급차의 전유물이 아닌, 자동차 안전의 필수 요소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이 똑똑한 기술의 이면에는 소비자와 정비사 모두를 깊은 혼란에 빠뜨리는 심각한 ‘소통의 문제’가 숨어있다. 제조사마다 똑같은 기능을 제각기 다른 이름으로 부르는 ‘용어의 난립’ 때문이다.

마치 같은 약을 팔면서 서로 다른 이름표를 붙여놓은 것과 같은 이 상황은, 제조사들의 기술력 과시와 마케팅 욕심이 빚어낸 촌극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결국 그 피해는 어떤 기능이 진짜 안전한 것인지 제대로 비교하기 어려운 소비자들과, 헷갈리는 명칭 때문에 정비에 어려움을 겪는 정비사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AEBS는 40개, ACCS는 20개…‘이름 짓기 경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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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르노

ADAS 용어의 혼란이 얼마나 심각한지는 대표적인 안전 기능 몇 가지만 살펴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차량 전방의 충돌 위험을 감지해 스스로 제동하는 자동 긴급 제동 시스템을 예로 들어보자. 운전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이 핵심 안전 기능의 이름은 제조사별로 무려 40여 가지가 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는 ‘전방 충돌방지 보조(FCA)’, 볼보는 ‘시티 세이프티’, 벤츠는 ‘액티브 브레이크 어시스트’, 아우디는 ‘프리센스 시티’… 이 외에도 수많은 이름들이 존재한다. 앞차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정속 주행하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ACC - Adaptive Cruise Control)’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약 20여 가지의 다른 이름(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디스트로닉 플러스, 트래픽 잼 어시스트 등)으로 불리며 운전자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제조사들이 이처럼 다른 이름을 고집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자사의 기술이 더 특별하고 진보했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마케팅적으로 차별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어떤 이름의 기능이 실제로 더 우수한 성능을 가졌는지, 혹은 단순히 이름만 다른 동일한 기능인지 판단하기가 매우 어렵다. 결국 복잡한 이름들에 지쳐 안전 사양 비교를 포기하거나, 기능의 한계를 오해하여 맹신하다 사고로 이어지는 위험까지 발생할 수 있다.

‘경고’인가 ‘제어’인가…정비 현장의 혼란과 표준화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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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BMW

용어의 혼란은 정비 현장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같은 이름의 기능이라 할지라도, 제조사나 차종, 심지어 연식에 따라 단순히 경고음만 울리는 수준과 스티어링 휠이나 브레이크를 직접 제어하는 수준으로 시스템의 개입 정도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똑같이 ‘차선 유지 보조’라는 이름의 기능이라도, 어떤 차는 차선을 넘으려고 할 때 경고만 해주는 반면, 다른 차는 스스로 핸들을 조작해 차선 중앙을 적극적으로 유지해 준다. 정비사는 수많은 차종의 각기 다른 시스템 로직을 모두 파악해야 정확한 진단과 수리가 가능하지만, 통일되지 않은 용어와 제각각인 작동 방식은 작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오진의 위험성을 높인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인 움직임도 시작되었다. 미국자동차공학회(SAE International)는 ADAS 관련 용어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표준화하기 위한 ‘J3063 표준’ 초안을 마련하고, 업계의 의견을 수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과거 자동차 제조사마다 달랐던 고장 진단 시스템 용어를 ‘OBD(On-Board Diagnostics)’라는 국제 표준으로 통일하여 정비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소비자의 ‘알 권리’와 ‘안전’을 위한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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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VOLVO

ADAS 용어의 표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표준화가 이루어진다면, 정비사들은 시스템을 더 쉽고 정확하게 이해하고 수리하여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 일반 소비자들 역시 더 이상 마케팅 용어의 홍수 속에서 혼란스러워하지 않고, 각 기능의 의미와 작동 수준을 명확히 인지하여 자신의 운전 스타일에 맞는 안전 사양을 제대로 비교하고 선택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첨단 안전 기술은 운전자의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약속이다. 제조사들은 자사의 기술력을 뽐내려는 마케팅 욕심을 잠시 내려놓고, 소비자의 ‘알 권리’와 ‘안전’이라는 대의를 위해 ADAS 용어 표준화라는 국제적인 약속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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