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미국 EV·전기 픽업 출시 계획 재검토 중
관세 안정화를 요구하며, 현재의 불확실성이…
관세 지속 시 미국 EV 보급에 악영향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기아는 북미 시장을 위한 야심 찬 전기 자동차 모델 라인업을 구상하며 새로운 지도를 그려 나갔다. EV4 세단과 더불어 미국 시장의 핵심 세그먼트인 전기 픽업트럭을 선보여 현대차그룹의 전동화 전환에 박차를 가하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계획은 속도를 내기 전, 예상치 못한 거대한 암초에 부딪히며 제동이 걸렸다. 바로 '관세'라는 예측 불가능한 장벽 때문이었다. 기아의 북미 EV 전략은 과연 이 난관을 극복하고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을까?
최근 열린 로스앤젤레스 오토쇼에서 기아 미국 법인 마케팅 담당 부사장 러셀 웨이저는 솔직한 입장을 밝혔다. 그는 EV4 세단과 기아의 차세대 전기 픽업트럭의 미국 출시 운명이 전적으로 '관세 안정성'이라는 회사 통제 밖의 요인에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웨이저 부사장은 이미 EV4가 관세 문제로 인해 계속해서 출시가 지연되고 있음을 시사하며, 이는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전기 자동차 모델을 선보이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분명히 했다.
러셀 웨이저 부사장은 관세 문제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멕시코, 캐나다, 서울 간 관세가 언제 해결될지 답해줄 수 있다면 나도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답하겠다"라고 답하며 현 상황의 불확실성을 토로했다. 그는 기아가 관세가 완전히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관세율이 확정되기를 바란다고 명확히 했다. "그 시점이 되면 우리는 관세가 25%인지, 15%인지를 보고 사업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라는 설명은, 무관세 상황을 전제로 설계되었던 EV 모델들의 현재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재의 불확실성이 EV4와 전기 픽업트럭의 미국 출시를 가로막는 주요 요인인 셈이다.
기아의 북미 EV 출시 지연에는 관세 문제 외에도 또 다른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웨이저 부사장은 연방 전기 자동차 세액 공제가 종료된 이후 미국 소비자들의 EV 수요가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는 "우리는 세계 여러 다른 지역에서 판매 중인 훌륭한 EV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으며, 해결책만 있다면 이 모델들을 선택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즉, 관세 문제 해결과 함께 미국 소비자들이 이 모델들을 '원해야' 한다는 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고관세 상황이 지속될 경우, 기아는 가격 인상이라는 어려운 선택을 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웨이저 부사장은 "다른 회사들이 가격을 올리는 것을 봤고, 그들의 판매가 줄어드는 것도 봤다"라고 언급하며, 기아도 무한정으로 모든 비용을 흡수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8개월간 버텨왔지만,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거나 너무 높다면 사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는 결국 휘발유 모델을 포함한 다른 자동차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 소비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기아의 미국 전기 픽업트럭 및 EV4 출시 계획은 관세 불확실성이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당분간 속도를 내기 어려워 보인다. 예측 불가능한 외부 환경 요인과 더불어, 전기 자동차 세액 공제 종료 이후 미국 내 EV 수요 둔화라는 복합적인 문제가 기아의 북미 전동화 전략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한때 빠른 전동화 전환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던 기아는 이제 불확실성의 덫에 갇혀, 미래 전략의 불투명성이라는 어려운 과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기아에게 남겨진 과제는 명확하다. 첫째는 정부 차원의 관세 안정화, 둘째는 미국 시장 내 EV 수요 회복이다. 기아는 '솔리드 밸류'라는 브랜드의 핵심 가치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어려움을 어떻게 헤쳐나갈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관세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가격 인상이 현실화된다면, 기아의 경쟁력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기아는 미국 EV 시장에서의 성공적인 안착과 브랜드 명운이 걸린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으며, 이에 대한 현명한 해법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