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디자인의 세계에서 '독창성'은 브랜드의 생명과도 같다. 엠블럼을 가리고 봐도 알 수 있게 만드는 정체성, 즉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 위해 제조사들은 천문학적인 비용과 시간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최근, 미국의 제너럴모터스(GM)가 공개한 콘셉트카 하나가 전 세계, 특히 한국 자동차 팬들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있다.
GM의 중국 디자인 센터가 야심 차게 공개한 이 소형 전기 크로스오버 콘셉트. 미래지향적이고 날렵한 모습이지만, 어딘가 묘하게 익숙하다. 전면부의 날카로운 라이트는 제네시스의 상징을, 측면의 박스형 실루엣은 기아의 아이코닉한 모델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이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한국차의 디자인이 이제 글로벌 표준이 되었다는 반증일까?
GM이 공개한 이번 콘셉트카의 디자인 테마는 명확하다. 바로 '활시위를 떠나 날아가는 화살'이다. 정지해 있어도 달리는 듯한 속도감을 부여하기 위해, 차체 전면부에서 후면부로 흐르는 캐릭터 라인을 날카롭고 역동적으로 다듬었다. 전기차답게 전면부 그릴을 과감히 없애고 매끈한 표면을 강조한 것도 특징이다. 여기까지는 훌륭한 디자인 스토리텔링이다.
하지만 공개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이거 제네시스 두 줄 라이트 아니냐"는 지적이 빗발쳤다. 실제로 전면부 범퍼 하단에 배치된 분리형 헤드램프와 그 위를 가로지르는 날렵한 주간주행등(DRL)의 형상은, 제네시스 브랜드의 시그니처인 '쿼드 램프' 디자인과 묘하게 닮아 있다. 물론 디테일은 다르지만, 멀리서 보면 오해할 법한 유사성이다.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측면부를 보면 또 다른 국산차가 떠오른다. 바로 기아의 박스카 '쏘울'이다. A필러를 검게 처리해 지붕이 떠 있는 듯한 '플로팅 루프' 디자인과, 뒤로 갈수록 수직으로 떨어지는 박스형 실루엣은 영락없는 쏘울의 형상이다. 이에 대해 네티즌들은 "앞은 제네시스고 옆은 쏘울이다", "한국차 디자인이 워낙 좋아지니 이제 GM도 따라 하는 것이냐"며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GM 입장에서는 '화살의 속도감'을 표현했다고 항변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한국차의 믹스매치'로 받아들여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디자인 논란을 뒤로하고 차의 성격을 뜯어보면, GM의 철저한 계산이 보인다. 이 콘셉트카는 철저하게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되었다. 거대한 대륙이지만, 상하이와 베이징 같은 대도시의 교통 체증과 주차난은 상상을 초월한다. 따라서 큰 차보다는 기동성이 좋고 실내 공간 활용성이 뛰어난 '소형차'의 수요가 꾸준하다.
이 콘셉트카의 크기는 현재 중국에서 판매 중인
쉐보레 트래커 RS
나, 국내에서도 단종되어 아쉬움을 남긴 전기차 '볼트'와 유사한 소형급(B세그먼트)으로 추정된다. 전장은 짧지만 휠베이스를 최대한 늘리고, 박스형 디자인을 채택해 실내 거주성을 극대화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좁은 도심 골목을 누비면서도 성인 4명이 탑승하거나 넉넉한 짐을 실을 수 있는, 도심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비율이다.
GM은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BYD와 같은 로컬 브랜드들의 저가 공세에 고전하고 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비싸고 큰 전기차보다는, 젊은 층이 접근하기 쉬운 합리적인 가격대의 소형 전기 크로스오버가 절실하다. 이번 콘셉트카는 바로 그 니즈를 정확히 파고든 결과물이다. 비록 '제네시스 닮은꼴'이라는 소리를 들을지언정, 중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세련되고 미래지향적인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는 성공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GM의 메리 바라 회장은 단종된 볼트 EV의 후속 모델을 '얼티엄 플랫폼' 기반으로 부활시키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기존 볼트가 '못생긴 디자인' 때문에 저평가받았던 것을 감안하면, 차세대 볼트는 이번 콘셉트카처럼 날렵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입고 나올 확률이 높다. 만약 이 디자인 그대로, 볼트의 합리적인 가격대를 유지한 채 출시된다면 '제네시스 표절 논란'은 오히려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소형 전기차 시장을 집어삼킬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GM의 새로운 화살이 누구를 겨냥하고 있는지는 명확하다. 바로 중국 시장과 글로벌 엔트리 전기차 시장이다. 비록 그 화살의 깃이 제네시스나 기아와 닮아 보인다는 논란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GM이 소형 전기차 시장을 포기하지 않고 칼을 갈고 있다는 사실이다.
디자인의 유사성은 논란거리가 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한국 자동차 디자인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과연 이 콘셉트카가 단순한 습작으로 끝날지, 아니면 '차세대 볼트'라는 이름표를 달고 도로 위를 달리게 될지. GM이 쏘아 올린 화살의 궤적을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