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째 편지
책을 읽다 보면 작가에게 책을 소개를 받을 때가 있는데 한 번도 제 기대를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저번 편지에 쓴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는 책에서 릴케가 젊은 시인이었던 카프카에게 옌스 페테르 야콥센의 단편 소설을 추천합니다.
그래서 당연한 것처럼 저도 그 책을 접하게 되었고 손에 닿는 곳에 가까이에 두고 자주 펴보는 좋아하는 책이 되었지요.
6개의 단편 소설이 들어있는 옌스 페테르 야콥센의 <베르가모의 페스트 외>는 세상을 향한 섬세한 통찰로 인간은 누구나 타인이 달랠 수 없는 고독 속에 있으며, 그 안에서 자신을 위한 행복과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차분하게 읊조리고 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당신께 ‘푄스 부인‘이라는 단편 소설을 읽어드리고 싶습니다. 가족의 반대로 사랑하는 남자와의 결혼을 하지 못한 채로 미망인 된 여성이 우연히 자신의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되는데, 타인에게 희생적인 삶을 살다가 늦게나마 자기 자신과 사랑을 찾아가는 것에 커다란 불만을 품는 이기적인 자녀들을 향한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책과 책 사이를 유영하던 중,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책 표지를 열자마자 유서가 맨 처음에 보이고 침대에 고요히 눈을 감고 누워있는 아내와 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첨부되어 있어 놀랐습니다.
고국을 잃은 슈테판 츠바이크는 유대인으로서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고 망명을 선택했으나 학살이 멈추지 않고 자행되는 비극을 보며 아내와 함께 생을 스스로 마감했습니다.
원통함과 분노, 비애가 깊이 새겨진 슬픈 역사의 피가 흐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의 죽음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테지요.
직접 자신의 생애를 쓴 책을 천천히 읽어 내려가며, ‘코즈모폴리턴‘적인 삶을 추구하던 그의 마지막이 정말 그 답다고 생각되면서도 무척이나 슬프게 느껴졌습니다.
(코즈모폴리턴의 뜻을 위키백과에 찾아보니 특정한 국가나 장소의 시민으로서가 아니아 전 세계적인 철학과 감각을 가지고 세계의 일원이 되는 것과 함께 오는 권리와 시민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의 세계시민의식이라고 합니다.)
정치에 참여하거나 앞에 서서 전쟁에 대한 목소리를 내지는 않았으나 그는 그가 제일 잘하는 방법으로 당대의 사람들을 위로했지요.
<어제의 세계>는 안정 속에서 자라난 슈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와 이성이 패배하고 광포한 야만성이 승리한 ‘오늘의 세계’를 구분하며 자신의 일대기에 관한 서술합니다. 그는 오늘의 세계로 통하는 다리를 스스로 끊어냈지요.
천재들을 따뜻하게 품는 음악 도시 오스트리아 빈에 대한 사랑,
답답하고 황량한 공부를 강요하는 학교에 대한 생각,
청춘에 대한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모든 권위에 불신과 불만을 가지게 된 사춘기,
자신의 인생을 예술가에 바치겠다고 결심한 인생의 전환기,
내면적인 작업에 대한 독립성을 보장하며 외면적인 생활의 조그만 안정을 주는 파리 정책에서 무명 예술가의 꾸준한 예술 활동의 중요성 등이 서술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의 고결하고 정제된 문체로서 접한 제1차 세계대전과 비극의 제2차 세계대전이 더욱 끔찍하게 다가오더군요.
그는 권력과 욕심의 희생물이 된 민간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모든 개인이 지상의 정치의 어리석음의 희생물, 파악할 수 없는 악의에 찬 운명의 힘의 희생물.‘
책에서 가장 좋았던 건 그가 작품으로서나 직접 만남을 가진 위대한 예술가들의 경탄이었습니다.
작가가 의도한 깊은 내면을 읽어주고 작품에 대한 이해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감동적인 일일까요?
그가 예술을 대하는 자세나 예술가를 예찬하는 정제된 글을 읽으며 칭찬받는 당사자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기도 했고 예술을 향한 존중의 정신을 많이 배우기도 했습니다.
좋은 책을 읽으면 그가 직접 번역하여 작가에게 언어가 다른 나라에 알리겠다고 제안하는 그의 경험담을 읽으며 진정한 코즈모폴리턴이 바로 저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한 예술가에 대한 존중을 표현하는 슈테판 슈바이크 역시 예술가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을 거라는 건 찾아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자서전에서 자기 자랑을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데 그 또한 위대한 작가였지요.
예술에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과 세상의 통찰에 감탄하여 푹 빠져든 저는, 그의 어제의 세계에서 헤어 나오는 데 한참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다가 슈테판 츠바이크를 향한 편지를 쓰게 되었고 그 일부분을 당신께 보여드리려 합니다.
[어려서부터 의식이 깨어난 당신과 다르게, 저는 부끄럽게도 이제 막 세상에 눈을 떴습니다.
그래서 이제야 당신의 자서전을 읽을 수 있게 된 것이겠지요.
본질을 꿰뚫어 보는 당신의 능력에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어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
당신의 바람과는 다르게 지금도 전쟁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때처럼 힘의 불균형과 경기 침체로 인한 극단적 사상을 옹호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슬픈 전조가 드리운 이 세계에서 먼 나라의 일처럼 느껴졌던 전쟁이,
한 나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 그리고 바로 저에게도 영향을 주는 끔찍한 일임을 절실히 느낍니다.
당신이 행복했던 어제의 세계는 머나먼 과거가 되었고 당신이 바라던 미래의 통합은 여전히 큰 숙제로 남아있습니다.
…
얼마 전, 저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걸 깨달았고 제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중입니다.
언젠가는 당신처럼 힘든 시기에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통찰력을 주는 작품을 쓰게 되기를 감히 바라게 되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당신의 코즈모폴리턴 정신을 이어받기를 간곡히 바라며 저는 저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는 영적인 교감을 나누던 친구 에밀 베르하렌 시인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을 터놓고, 어떠한 장애에도 구애받지 않았으며, 그 어떠한 허영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쉽게 친근감이 가는 인간이었고, 자유롭게 모든 감격에 몸을 맡기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만남의 최초의 시간에 벌써 나는 결심했다. 즉 이 인물과 그의 작품을 위해 일하겠다고 말이다.’
저는 슈테판 츠바이크 본인이야말로 위와 같은 사람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께 어떠한 걸림도 없이, 한계 없는 다정한 사람이자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어제의 세계의 슬픔과 아픔을 그대로 지닌 당신께서는 오늘의 세계로 통하는 다리를 끊어내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내고 계시지요.
당신께서 제 곁에 숨 쉬며 살아있다는 게 항상 감사하고 오늘은 특히나 더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당신의 오늘의 세계에서는 제 편지로서 가진 상처가 조금은, 아주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랍니다.
- 오늘의 세계에 충실하려 노력하는 윰세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