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이나비
눈을 뜨면 부스럭부스럭 노트를 찾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바로 쓰는 것이 좋다고 해서 가능하면 그리하려고 노력 중이다. 어두컴컴한 방에 스위치를 올린다. 환하게 눈부신 새벽이 열린다. 부스스 눈을 비비면서 밤에 떠다 둔 물에 입을 적신다. 따뜻한 물은 아래층에 내려가야 하니 잠시 입만 축이고 모닝 페이지를 쓰고 난 다음 부엌으로 간다.
모닝 페이지는 어느 사이 모닝 루틴으로 자리했지만 빠지는 일도 다반사다. 여행을 가거나 피곤하거나 늦게 잤거나…. 핑계로 쓸만한 이유는 얼마나 많은지, 그렇게 밀고 당기며 일여 년의 시간이 흐른 듯하다. 이젠 습관이 잡힐 때도 되었건만 나는 항상 지고 만다. 하지만 시작했었고 안 한 날보단 쓴 날이 많으니, 그것도 다행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느끼는 것은 몸이 시키는 대로 하자, 무리하지 말자, 욕심내지 말자는 것이다.
모닝 페이지가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묻는다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데 도리어 그것이 화가 될까 봐 내지는 그냥 혼자 삭이고 싶을 때 제일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말은 한번 뱉으면 주워 담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쉽게 말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다. 그리고 상처가 날 때는 무심히든 속내가 있든, 상대가 던진 말 때문인 경우가 많았다. 말의 힘이 크다는 것을 아니까 조심하게 되고,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을 택한다.
사람은 누구나 영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상대는 느끼리라 생각한다. 내 마음을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뿐더러 또 표현한들 상대는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그 당시에는 잠깐의 위로를 받을 수는 있겠으나 지나고 보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안 한 말보다 한 말에 더 후회가 따르는 법이다. 그래서 모닝 페이지 쓰기는 꾸준히 해야 한다. 내가 스스로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는 방법으로 이만한 것이 없다.
어느 날 글을 쓰면서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어렸을 때 몸도 자그마하신 분이 늘 우리가 가면 두 팔 벌려 안아주셨다. 바깥이 추운 날은 따뜻한 아랫목으로 불러서 이불을 덮어주고 편히 누우라고 하며 무릎을 내어주신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이마와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동생들하고, 친구들하고도 잘 지내지?”라고 물으셨다. 그러면 나는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나 마음에 안 들었던 친구를 다 일러바쳤다. “아이고 그랬구나! 그 친구 나빴다 하시면서 우리 강아지 속상했겠구나, 이젠 괜찮다. 할미에게 다 얘기했으니, 앞으론 안 그럴 거다.” 하셨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내 속이 시원하고 별일이 아닌 게 되었다.
모닝 페이지를 쓰는 일은 외할머니의 넓고 따뜻한 품이 생각나게 한다.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지만 그것이 쉽지 않을 때, 모닝 페이지는 마치 할머니처럼 나의 이야기를 다 받아주고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용기를 준다. 그래서 나에게 모닝 페이지는 ‘외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