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이나비
노력하지 않아도 그 나이가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먼저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글을 남길 수 있어서 감사하다. 이 책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냥 나이 들고 시도도 못 해보고 ‘그때 할 걸’ 후회하면서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냥 노력하지 않고 살아도 세월은 저절로 흐르는데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최소 나는 후회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는 출장을 가시거나, 아니면 우리 오 남매가 생일을 맞이했을 때 손 편지를 가끔 주셨다. 그땐 잘 몰랐다. 그것이 쉽지 않은 일이란 것을! 아버지께 편지를 받았다 하면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우쭐하면서 자랑하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내가 결혼 후 어느 술자리에서 아버지는 젊었을 때 시를 쓰고 싶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언니가 시인이 되어서 아주 기뻐하시며 대리 만족을 하셨다. 꿈은 젊을 때 이루는 것이지 나이 들어서는 자신을 닮은 자식을 통해서 뿌듯해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도전해 보시지요?”라는 말씀을 어떻게 아무도 안 드렸는지, 지금 생각하니 너무 죄송스럽다. 아버지는 그 꿈을 그냥 꿈으로 가슴에 품고 돌아가셨다.
나도 아버지처럼 글을 써 보고 싶었다. 그러나 서른의 나이에 어느 잡지사에 투고를 했다가 실패를 한 뒤로는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을 하며 글쓰기를 잊고 살았다. 다행히 잘한 일이 있다면 아이들 학교 도시락에 편지를 넣어주기도 했고, 여행이나 멀리 갈 때 날짜에 맞춰 매일 하나씩 열어보도록 작은 메모를 실에 꿰어 넣어주기도 한 일이다. 아이들은 지금도 나와 헤어지고 나면 메모 편지부터 찾는다고 얘기한다. 얼마 전에도 일주일을 머물고 출국하는 큰 딸의 가방 속에 짧은 편지를 넣어 두었다.
그렇게 글쓰기에 미련이 있었는가 보다. 아버님 병시중을 할 때도 아버님과의 기억을 글로 풀어쓰며 버티고 지냈다. 힘든 상황을 글로 이겨내려는 것을 창조주가 가상히 여겼던 걸까? 우연히 전자책이란 것을 알게 되어 책의 저자가 되었고, 또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만나 이렇게 글쓰기를 계속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줄리아가 말하는 ‘초보자’ 임을 인정했다. 기꺼이 형편없는 아티스트가 됨으로써 진정한 아티스트가 될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말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갈 것이고, 지금부터 노력해도 시간은 갈 것이다. 하지만 그 두 길은 확연한 차이가 날 것이다. 처음은 초라하지만, 점점 좋아지리라 믿는다.
이 길에 들어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노후 대책이고 놀이터가 될 것이다. 나도 좋고 남도 좋은 글쓰기, 누구에게나 권할 수 있는 일이 글쓰기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정적이었던 생각들을 바꿀 기회가 되고, 멀리 있는 아이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내 이야기는 할머니가 되어 손주들에게 들려줄 옛날이야기가 될 것이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겐 공감을 부를 수도 있고, 위안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힘든 시간이었다. 주저앉을 수도, 자신을 포기해 버릴 수도 있는 삶이었다. 그러다 만난 <아티스트 웨이>는 나에게 반려 도서가 되어 주었다. 옆에 두고 잊을 만하면 들추어 본다. 완벽해지려 하지 말고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자고, 반려 도서는 나에게 손을 내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