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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나다

규리드림

by 뉴아티

“I'm nothing”

나는 오랫동안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또 낮은 자존감으로 나를 내세우지도 못했다. 그래서 화가 나더라도 꾹 참고 슬픔도 입을 꽉 물고 삼키곤 했다. 감정 따위도 느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괜찮지 않지만 늘 괜찮다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나는 사실과 다르게 '괜찮아'라고 말해 왔는데 마음 속에는 표현하지 못한 화가 차곡차곡 쌓여 분출할 곳을 찾는 화산 같았다. 그러다 상대의 말 한마디에 폭발하거나 또 난폭한 행동으로 나왔다. 그런 내 모습에 실망하여 자책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내 몸이 힘든지도 몰랐다. 몸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몸이 퉁퉁 붓기도 했다. 나의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괜찮다고 포장해서다. 그러던 와중에 줄리아 카메론의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었다. '괜찮아' 라는 말은 거의 모든 기분에 적용되는 상실감의 표현이고 창조성을 성공적으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사실과 다른 '괜찮아'가 아니라 '솔직한 대답'을 해야 한다고 했다. 모든 기분에 적용되는 상실감의 표현이 내 몸 구석구석 박혀있으니 그것을 견디느라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된다.

"자신을 명확하게 인식하면 오해는 없어진다. 모호함을 쓸어버릴 때 환상도 떨어져 나간다. 우리는 명쾌한 답에 이르고 그 답은 변화를 가져온다"
- 아티스트 웨이, p.153


두리뭉실하게 표현하고 명확하게 분석해내지 못한 나는 이 말이 비수처럼 내 가슴에 꽂힌다. 내 이야기를 방향 없이 주절주절 늘어 놓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스스로가 안타까울 때도 있다. 내가 얼마나 모호한지 눈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더는 모호함이 아닌 정확하고 명료한 표현으로 타인을 대하고 싶은데 이 부분에서 나는 아직 능력이 부족하다.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고 선배 한 분이 나를 상담 선생님께 데리고 갔다.

상담 선생님을 만나 감정도 공부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감정에는 분명한 역할이 있었다. 외부 자극에 대해 신속하게 반응하여 우리 몸을 보호하는 기능을 한다.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알면 더 건강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인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기쁨, 슬픔, 화와 분노, 그리고 두려움 등 주요 감정의 원인을 알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또 처음으로 나의 욕구와 감정을 살피게 되었다. 내게 오는 느낌을 잘 살피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줄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한 자신의 일을 마친 감정은 조용히 사그라진다는 것도 알았다. 화가 날 때나 아플 때 괜찮다는 말 대신 내 상황과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을까? 줄리아 카메론의 책을 통해 알게 된 해결 방법이 있는데 바로 ‘모닝 페이지’ 쓰기다. 모닝 페이지는 내게 올라오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내는 것이다. 내 감정과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올라오는 생각과 감정을 글로 적어나가야 한다. 이른 새벽 일어나서 몽롱한 상태로 자신에게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을 노트에 모두 적는 것이다.

줄리아 카메론은 모닝 페이지를 거울 닦는 것에 비유한다. 매일 겉으로 보여지는 나와 실제 나의 사이에 끼인 때를 닦아주는 일이라고 표현한다. 나는 새벽 몽롱한 상태에서 올라오는 내 생각과 느낌을 모닝 페이지에 써내려 가면서 나의 검열관을 만났다. 또 해소하지 못한 많은 감정들을 만났다. 그것들을 모닝 페이지에 적고 표현해내니 조금씩 홀가분해진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또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도 차차 알게 되었다. 이제는 매일 아침마다 나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일에 익숙해 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에게 모닝 페이지는 나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표현하는 연습 과정의 첫 단계가 되었다.

내 삶에서 감정을 좀 더 용기 있게 표현하기 위해 더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곰곰히 생각하다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책 속에 길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줄리아 카메론은 모닝페이지에 이어 또 하나의 도구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아티스트 데이트였다.

아티스트 데이트는 내 안의 어린아이와 만나 놀면서 창조성과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도록 돕는 시간이다. 줄리아 카메론은 매주 두 시간 정도를 할애해 내 내면의 아티스트에게 영양을 공급하라고 한다. 어린 시절 동네 회관에서 친구들과 했던 오징어 게임과 나이 먹기, 공 던지기 놀이가 생각난다. 진땀을 흘리며 열심히 뛰어다니며 놀았다. 놀이에 진심이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음껏 소리 지르고 내 안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쏟아냈었다. 그것도 거의 매일! 이런 기억처럼 아티스트 데이트는 내 안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도록 자신을 양육하고. 또 내 안의 창조성을 키우는 것을 넘어, 내면의 이제껏 억눌린 감정을 발견하고 그것을 표현할 용기를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근에 내게도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데이트가 생겼다. 나의 감정과 욕망을 표현해내는 그것은 서예 시간이다. 매주 2시간 동안 붓을 들고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 글씨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붓의 길을 익히고 중봉을 찾아가는 일이 여간 흥미롭지 않다. 글씨의 좌우 균형 맞추기, 공간의 적절성 따지기, 자획의 굵기 맞추기 등에 집중하다 보면 어린 시절 놀이 시간처럼 2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그 획의 하나하나에는 나의 순간의 감정이 들어있다. 힘을 주는 순간, 그리고 빼는 순간이 그렇고 붓이 가는 길에도 내 감정들이 담겨 글씨로 답해준다. 이렇듯 서예를 통해 나의 감정을 담아낸다면 억눌린 감정이 밖으로 비로서 나오게 될 것이다. 또 꾸준히 글씨를 쓰다 보면 언젠가는 조화로우면서도 진짜 나 다운 글씨로 나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이보다 더 멋진 아티스트 데이트가 있을까? 나의 서예 시간은 창조성을 공들여 채우고 있는 나만의 아티스트 데이트이며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나다움의 샘물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나는 매일 아침 모닝 페이지를 쓰면서 나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아티스트 데이트로 선택한 서예를 통해 나를 표현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있다. 두 가지를 꾸준하게 실천하면서 ‘I'm nothing’이 아닌 '나는 나' 라고 자신 있게 나를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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