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티스트 데이트]레일 위의 아티스트 데이트

백년서원

by 뉴아티

내 안의 창조성 회복을 위한 기본 원칙 중의 하나로 아티스트 데이트가 있다. 일반적으로 데이트라고 하면 사랑하는 연인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을 '데이트'라 부른다. 줄리아 캐머론이 말하는 아티스트 데이트란 매주 2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두고 내 안의 어린 아티스트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쉬운 일일 것 같아 보이지만 말처럼 쉽지는 않다. 자신과의 약속이라는 점이 가장 아킬레스다. 웬만큼 이기적이지 않으면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낸다는 것은 힘들다. 일상의 도발을 요구하기 때문에 위험해 보이기까지 하다. 안타깝지만 '우리'라는 가족 공동체에서 '나'라는 존재는 언제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나는 거의 혼자 있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혼생활 35년을 더해 가족과 기타 집단의 무리 속에서 벗어나 본 기억이 없다. 유년시절에는 형제자매가 많아 대가족으로 늘 북적였고 결혼 후에는 내 아이도 셋을 보탰으니 늘 바쁘고 부산했다. 삶의 질을 따져 볼 때 나란 사람이 얼마나 자아성취와 동떨어진 삶이었는지 아티스트 데이트를 통해 알게 되었다. 자아보다 타아를 돌봐야 했던 지난 시간들을 조금만 떼어 나를 돌보는 시간을 가졌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내 주변은 지금의 모습에서 훨씬 더 나은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타심으로 살아온 시간을 보상받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남이 성장할 때 나도 같이 성장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데이트 패턴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 데이트는 단연코 기차여행이다. 두 딸이 서울을 거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KTX 기차로 딸들을 만나러 간다. 열차가 공간 이동을 하는 2시간 40분은 혼자 있을 수 있는 극적인 시간이다. 그 시간만큼은 그 누구도 나에게 개입하지 않으며 달려 나가는 시속마저 짜릿함의 절정을 맛보게 한다. 레일 위를 달려 나가는 기분이 얼마나 달콤한지 나는 이 기차여행을 매번 '꿀벌의 기행'이라 부른다. 서울역에 도착해서 역사를 나가게 되면 핸드폰 카메라부터 켠다. 언제나처럼 그때 그 느낌을 사진으로 남긴다. 일정을 모두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대중가요 가사 한 소절도 흥얼거려 본다. “안녕~ 안녕~ 서울이여, 아~안~녕”

나는 저질체력이라 차로 이동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지만 기차만큼은 나를 꿈꾸게 해 주는 유일한 '타임캡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밖 뷰를 선호해 창 측 자리를 좋아하겠지만 나의 어린 아티스트는 얌전하게 앉아있기보다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무척 재미있어한다. 그래서 나는 입구에서 가까운 복도 쪽에 앉는 것을 즐긴다. 객실 밖으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 자리에서 일어나고 앉는 것조차 생활 규범을 쫒아 살아왔던 나는 '내 마음 가는 대로' 다닐 수 있는 해방감을 기차여행에서 맘껏 충족한다. 이 작은 선택 하나에도 억압된 일상에서 살짝 벗어나 볼 수 있는 작은 탈출구가 된다. 통제하던 어떤 것들에서 홀연히 벗어나는 후련함은 아티스트 데이트를 하면서 비로소 찾아온다.

삶이 꽃이 되는 순간이 있다. 내가 ‘화양연화’라 부르는 그 시간은 아티스트 데이트의 시간 안에 있다. 내 안의 나는 너무나 오랜 시간 외톨이로 있었기에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아티스트 웨이>를 통해 내 안의 창조성이 어리고, 여리고, 예민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아티스트 데이트를 실천하면서 나에게 필요한 온기와 생기를 한껏 불어넣어주고 있다. 나는 나를 다시 사랑하기 위해 아티스트 데이트를 한다. 하마터면 평생 내 안의 창조성을 못 본 채 무덤까지 갈 뻔했다. 삶이 아트라면 그것을 깨달은 바로 지금이며, 최고의 데이트는 서울, 부산 간의 기차여행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아티스트 데이트] 붓이랑 함께 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