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산 스님

[김유경의 오늘] 다육이의 햇볕바라기

by 김유경


비가 온다. 그 탓에 늦은 오후가 아닌데도 어둑하다. 지하 서재에서 바라보니 화분들 다육이도 고즈넉하다. 남향집 햇볕을 나보다 더 즐기던 어제의 생기와 딴판이다. 가끔 장난으로 화분을 돌려놓으면, 꽃 모양의 잎다발을 이끈 굵은 줄기가 어떻게든 햇볕을 향해 틀어진다. 왕성한 햇볕바라기다. 생긴대로 사는 것이니 아부하는 해바라기성은 분명 아니다.


KakaoTalk_20190618_194130638(비 다육이).jpg 비가 와 고즈넉한 다육이들


KakaoTalk_20190618_031950128(다육 환2).jpg 햇볕바라기 한창인 다육이들


햇볕의 열기는 밝음에 비례한다. 사람의 경우 밝음은 맑음, 즉 삶의 순도와 통한다. 내 환한 지인들 중 으뜸은 현산 스님이다. 그는 전북 진안군 천황사 주지다. 문득 절밥이 먹고파 들른 6년 전 가을 인연이다. 그날 이후 그는 내 공양주가 되어 각종 먹을거리를 안긴다. 1년 간 먹을 김장 김치부터 내게 맞춤한 불경(佛經)스런 책들까지 알뜰살뜰하게 살펴 챙긴다.


KakaoTalk_20190619_084251648(봄날 천황사 본채에서 바라본 요사채).jpg

봄날에 천황사 본채에서 바라본 건너편 요사채



그는 자기 방이 없다. 요사채가 넉넉해도 다른 비구니 스님들과 함께 먹고 자며 움직인다. 방(집)은 몸 하나로 충분하단다. 간혹 어느 불자가 고급스런 승복을 선물하면 주변 스님들 몫이 된다. 큰 시줏돈도 절 살림도 회계장부에 명증하게 드러낸다. 내 먹을거리는 그의 쌈짓돈을 까먹는다. 그래도 먹성 좋은 나는 받아먹는 게 그저 기쁘다. 그게 내 현산스님바라기다.

그는 수다쟁이다. 마주 앉으면 몇 시간이고 온갖 화제를 넘나든다. 통화하면 한두 시간은 보통이다. 웬만한 절친 저리가라 할 정도로 속내를 툭툭 털어놓는다. 게다가 내가 귀동냥할 법문투성이다. 그를 담금질한 시간들은 그래서 내게도 유용하다. 내 꿉꿉한 고민들은 그의 열기 앞에서 말라붙는다. 예민하면서도 화통한 그의 화음은 오늘처럼 비 오는 날 더 울려온다.

그는 시쳇말로 미인이다. 이목구비 반듯한 민낯은 대개 웃음꽃이다. 때때로 서릿발 같은 위엄을 내비치기도 하는 그는 내 큰 자랑이다. 그래서 그가 나와 닮았다는 말은 내가 들은 최고의 찬사다. 물론 지금도 의문이다. 어째 그렇게들 생각하는가. 나는 그를 스승 삼은 학불(學佛)이니 사제지간임을 알아본 게지 싶다. 그렇다면 내 현산스님바라기는 어느 정도 성공한 셈이다.


다육이의 햇볕바라기는 절로 하는 근본지향이다. 인간으로 치면 존재의 뿌리 찾기다. 내가 마음을 맑히는 이유다. 매일 108배를 하며 이마를 땅에 댈 때 난 편안하다. 평소 고개 숙일 일이 드문 내게 그 순간은 묘하게 맘이 놓인다. 나보다 나은 대상을 공경하는 중에 낫다 못하다 하는 구분을 절로 넘어서게 되니 그렇다. 그냥 참회가 쏟아지며 경계 짓던 긴장이 풀어진다. 그리곤 쾌변 이후처럼 몸이 가뿐해진다.


모처럼 빗소리에 귀 기울인다. 빗물이 떨어지는 곳에 따라 소리의 경중이 다르다. 어쩌면 그 다름은 내 상태를 반영한 것일 수도 있다. 있어서 있는 게 아니라 있다고 여겨 있는 것처럼. 천황사에도 지금 비가 오는가. 대웅전 오가는 길이 심하게 질퍼덕하진 않는가. 이런저런 안부 인사를 곁들여 보고픈 스승께 삼배를 올린다.

(2019.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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