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잇몸으로 살 거야

[김유경의 오늘] 엄마의 결심

by 김유경

엄마가 확확 변한다. 그 변화가 노골적이어서 안쓰럽다. 윗니를 몽땅 빼 합죽이 된 낯이 젤 그렇다. 디딜 힘이 부족해 체중계를 딛고 올라서기는 언감생심이다. 하늘 아래 노화를 비켜갈 생명이 없다는 건 알았지만, 요즘 엄마를 바라보니 인간 몸이 참 무상하다. 생각 하나가 홀연 떠올랐다 사라지는 것도 자아의 생사(生死)라 치면, 엄마 몸에 일어나는 변화는 존재의 생사 그 자체다.


그러니 내가 알던 엄마는 없으면서 있다. 나날이 사라지면서 이어진다. 표면적(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다. 수박, 토마토, 갈치, 두부, 냉장고, 리모컨, 볼펜 등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셀 수 없이 많은 명칭들이 엄마에겐 이미 낯설다. 읽고 쓰던 한글도 그렇다. 어제 한 약속도 그런 일 없었다며 화낸다. 그렇게 말귀를 어둡게 하는 화학적 변화가 엄마를 바꾸는 중이다. 그건 신경과 진단이나 MRI 촬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엄마가 틀니 착용을 마다한다. 임시 틀니 적응 과정에서 장차 진짜 틀니 사용을 위해 잇몸 성형 시술이 필요하단 말을 들은 후다. 벌건 작은 동굴이 숭숭 뚫린 잇몸에 이물질인 틀니를 끼고 뺄 때마다 진저리를 치게 되는데, 시술의 통증까지 더한다니 두려운 거다. 여러 번 다듬은 임시 틀니를 끼고 귀가한 날 합죽이를 면했다고 기념사진도 찍었는데... 엄마가 합죽이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KakaoTalk_20190622_105819493(틀니 위아래).jpg

( 임시 틀니)

엄마는 평생 서울깍쟁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릴 하거나 허투루 보이는 걸 끔찍하다 여긴다. 자존심 강하면서도 남의 눈을 의식한다. 그 습성은 아직 남아 있다. 외출 전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코디를 해 놓아야 직성이 풀리고, 입맛도 여전히 까다롭고, 부지런히 쓸고 닦고, 예스・노가 분명하다. 미용실에서 해준 머리 모양이 맘에 안 차 기어코 까탈을 부려 미용사를 길들이고서야 단골 삼은 게 며칠 전이다.


그 일이 난 반갑다. 내가 아는 팔팔한 엄마를 볼 수 있어서. 더군다나 엄마의 치매는 착하다. 딸에게 자주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한다. 또 자기 실수를 깨달으면 부끄러워한다. 혼자 있는 게 두려워도 딸의 어쩌다 외출을 말리지 않는다. 물론 둘 다 악다구니하던 흑역사도 있다. 그러나 이제 엄마는 조용하게 생존과 자존을 다 챙긴다.

합죽이가 된 엄마 덕분에 내 치아 상태를 훑는다. 치경부 마모(cervical abrasion)를 땜질한 레진(resin)이 무려 7개다. 금 크라운(crown)은 4개다. 치과의사는 아몬드를 씹는 일도 크라운을 깨지게 할 수 있다고 겁준다. 깨지면 복구할 수 없으니 임플란트를 해야 한다. 딱딱한 주전부리를 즐기는 치아의 미래가 밝지 않다. 지금 엄마에게 적합한 식단이 장차 내 먹을거리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엄마가 있어 지금 내가 있음을 안다. 치매가 진행 중인 합죽이 엄마가 꿋꿋하고 명랑하게 곁에 머무니 감사하다. 한참 조용하던 엄마가 날 부른다. “이렇게 하니까 쭈글쭈글한 게 펴졌어.”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 엄마가 웃는다. 손거울을 보며 고심한 작품이다. 그런 엄마가 예쁘다.

(2019.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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