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어라

[김유경의 오늘] 집밥에 올인 중이다

by 김유경

나는 집밥에 올인 중이다. 국물맛을 내는 식재료들을 꺼내려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다용도실을 여닫는다. 양파, 대파, 감자, 멸치, 다시마, 마늘, 된장, 고추장 등이 쓰인 케미레시피는 놀랍다. 거기에 액젓 약간만 더하면 국이든 찌개든 찜이든 완성 차원의 조미助味 세계로 들어선다. MSG 따위 향미증진제는 소용없다. 물론 재료들이 물크러지고 얼크러져 묘한 맛색을 내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요리에 쓰인 양념 같은 구실만 해도 사람답다는. 아린 마늘이 형체를 잃어 국물을 달게 하는 어우러짐의 케미는 사람 관계에도 필수적이다. 부엌살림에는 문외한이던 내가 집밥 만들기에 골똘하게 된 연유이기도 하다. 1년여가 흐른 지금 그럭저럭 김치를 담글 줄 알고, 겉절이나 나물 무침은 뚝딱 해낸다. 갑자기 몰아친 바람 앞에서 우여곡절을 겪고 마침내 겨울나무가 된 거다.


“바람이 불면 겨울나무가 되어라.” 용화선원 원장 송담 스님 말씀이다. 모든 걸 떨구어 휑한 겨울나무를 바람은 그냥 지나친다. 바람이 걸릴 게 없으니 나무 또한 바람에 맞지 않는다. 유방암과 치매에 부대끼다 합죽이가 된 엄마의 우울과 두려움은 나를 뒤흔드는 광풍이다. 엄마가 내뿜는 바람이 일상의 안위를 좌우한다. 나름 찾은 방안이 ‘끼니때마다 작은 행복을 느끼면, 바람은 잦아들 수도 있을 거야.’다.


KakaoTalk_20200215_095517223(아침 밥상).jpg


엄마의 오늘 아침상은 된・고추장두부찌개가 메인이다. 고추장 약간이 된장의 텁텁한 맛을 덜어준다. 감자와 양파와 느타리버섯은 양념 겸 일종의 꾸미다. 사실 두부는 어쩌다 쓴다. 대두의 고단백질이 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주장이 있어서다. 기본 반찬은 늘 셋이다. 맞춤하게 익힌 김치와 무피클을 각각 갈은 두 종지와 김자반볶음이다. 달걀찜은 아침에만 보탠다. 침대에서 먹느라 손잡이가 있는 쟁반이 엄마의 식탁이다.


점심은 어묵탕이다. 이 없는 엄마의 자존감을 위해 보기에 먹음직해야 한다. 월동무를 넣되 형체를 유지하면서도 흐물흐물 해지도록 석박지에 넣는 크기로 자른다. 그래야 엄마가 국물맛이 밴 무를 쉽게 으스러뜨릴 수 있다. 엄마는 어묵탕 무맛을 뭇국 무보다 좋아한다. 곁들일 반찬은 닭다리갈비찜이다. 닭고기와 궁합 맞는 사과를 갈아 넣은 넉넉한 양념장으로 오래 쪄야 맛 밴 닭고기가 엄마 숟가락에 으깨진다.


저녁은 아침에 남은 찌개를 리폼한다. 호박과 된장을 더하면 모양이 나면서 된맛으로 보글거린다. 대개 엄마는 세끼 다 싹쓸이 상태로 밥상을 물리친다. 매 끼마다 과일 후식으로 입가심도 즐긴다. 사과나 배, 그리고 단감 등의 과일은 강판에 간다. 믹서기는 다른 액체를 넣어야 하므로 제 맛을 잃어서다. 속이 무른 딸기나 키위, 귤 등은 그냥 먹을 수 있다. 잘 먹어도 엄마와 내 몸무게는 합쳐 100㎏ 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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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하루 세 번 식사 30분 전에 녹즙(당근90% 이상 + 케일&양배추10% 이하, 당근만 해도 됨)을 먹는다. 머그잔 두 컵 분량이다. 당근 탓에 녹즙은 꽤 달다. 5년 전에 유방암 초기 진단을 받은 직후 녹즙 복용을 시작했는데, 당뇨에서 자유롭다. 수술이나 항암치료 대신 유정화 한의사(현 세종한의원 원장)가 미국 연수에서 눈여겨본 녹즙 효능을 믿고 따른 게 오늘에 이른 거다.


엄마 유두에서 흐르던 피고름이 멈춘 건 오래 전이다. 유방을 탱탱하게 하던 응어리도 거의 안 잡힌다. 이젠 축 늘어진 유방이 그저 반갑고 아름다울 뿐이다. 그러나 유 원장은 녹즙 홍보를 못하고 있다. 동종 업계에서 심하게 폄훼하는 분위기여서다. 사실상 자연치유나 자가 면역 효과는 개인차도 크지만, 종적 연구가 쉽지 않아 과학적 검증이 어렵다.


더군다나 녹즙 만들기는 내 경우 완전 노가다다. 대개 당근(만 해도 됨) 5㎏로 3일분을 마련하는데, 수동녹즙기를 고집하느라 종일 매달린다. 이틀에 한 번 꼴이니까 내 이기적 욕망을 돌보기 힘들다. 외출은 언감생심이다. 특히 유의할 점은, 당근이 땅 기운을 맹렬하게 빨아올리는 뿌리채소여서 무농약 재배 이상이어야 약이 될 수 있다는 거다. 기존 구매처에서 갑자기 공급이 끊기면, 구하기 쉽지 않아 발을 구른다.


송담 스님 제자인 테오도르 준 박은 책 ‘참선’에서 삶을 나름 정의한다. 삶이란 외부와 내부로부터 자극이 밀려드는 매순간의 경험이라고. 동선은 같아도 오늘은 어제와 다르다 여기는 나는 선뜻 동의한다. “삶의 속도를 쫓아갈 정도로 빠른 것은 이 우주에서 찾아보기 힘들다.”는 송담 스님 말씀에도 공감한다. 현재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를 담은 두 견해는 집안과 부엌에서 세월여류에 노출된 나를 위로하고 격려한다.


엄마는 세수를 꼼꼼하게 한다. 화장 시간도 꽤 길다. 여성성이 엄마를 늘어지지 않게 하고 우울감에서 헤어나게 한다. 특히 치매에 당하는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가 될까봐 두려운 엄마에게 그런 자기돌봄은 엄마를 지탱하는 자존심이자 좋은 약이다. 엄마가 흡족해 할 집밥에 내가 신경 쓰는 이유도 그런 맥락이다. 자연스런 관심과 인정 표시가 엄마에겐 요긴하니까. 내가 한 집밥이 정말 나도 외식보다 맛있다.


암튼 겨울나무 모드는 날 위해서도 나쁘지 않다. 멋모르고 ‘나’를 앞세운 때는 광풍에 얻어맞았지만, 지금은 화나는 나를 알아채면 복식호흡이나 108배로 다스린다. 그냥 누르는 게 아니라, 자동 선회하여 엄마 신발에 내 발을 넣게 된다. 엄마도 짬 내 영화관으로 달려가는 나를 이해하고 기다릴 줄 안다. 물론 여전히 아슬아슬한 순간에 봉착하곤 한다. 그 역동적 시공을 뒹구는 ‘나’는 생물이 분명하다. 그러니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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