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닌데...

[김유경의 오늘] 관계의 사슬

by 김유경


‘헐! 이게 뭐야?’

외출했다 밤늦어 본 택배박스가 이상하다. 박스 아래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자리에 테이프가 칭칭 감겨 있다. 내용물인 김치봉지가 축 늘어진 채다. 그냥 받아 둔 식구에게 쏘아붙이려다 관둔다. ‘떨어뜨렸다는 건데... 포기김치가 충격을 받으면 어떻게 되지? 한두 푼도 아니고...’ 밤중이라 구매처나 판매처에 연락할 수도 없다.

일이 나면, 난 조급증을 앓는다. 때론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린다. 그런 증상을 피하려 심호흡을 서두른다. 외출복을 갈아입고, 탈 난 택배박스 사진을 두세 장 찍는다. 해당 쇼핑몰에 접속해 상담란에 글과 사진을 올린다. 그 과정에서 판매처에 직접 상담할 수 있다는 문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판매처 상담란에는 사진 업로드가 아예 막혀 있다. 암튼 이제 할 일은 더 없다. 내일 오전에 두 군데 중 어디선가 연락이 오리라.

나는 평소 단골집을 애용한다. 수시로 피팅이 필요한 안경, 신상이어도 대개 몸 치수에 맞게 손 봐야 하는 옷, 취향을 살린 헤어스타일, 건강 식단에 쓰일 유기농 식재료, 잠시 입 안에 머무나 최소 한나절 행복을 감당하는 원두커피 등을 위해서다. 죄다 믿음에 기초한 관계다. 내가 꾀한 관계의 사슬이다. 온라인 구매도 예외는 아니다. 좋은 품질은 기본이고, 배송과 교환 또는 환불이 원활한 구매처라야 단골 삼는다.

그러니까 나 같은 구매자에게 고객센터 상담자의 싹싹함과 정확한 업무처리 능력은 신뢰 관계 구축의 관건이다. 이튿날 이른 오전에 구매처 고객센터 담당자가 전화했다. 불만 사항을 확인하더니 판매처와 통화 후 다시 전화하겠단다. 곧이어 판매처의 전화를 받았다. 양쪽 담당자 모두 불편함을 끼쳐 죄송하다는 말부터 챙긴다. 점심시간 즈음에 판매처가 즉시 배송하고 택배물은 맞교환하는 것으로 일단락 된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게 있다. 문제 발생 시 쇼핑몰 구매가 직거래보다 낫다는 거다. 고객인 나를 대신해 구매처(온라인 쇼핑몰)가 판매처(김치 생산업체)에게 고객의 불만 사항 처리를 요청하고, 판매처는 장차 구매처와의 관계를 의식해 발 빠르게 대응한다. 갑을관계는 있지만, 드러나게 언성 높이는 갑질은 없다. 기계적일지언정 친절하고 정확하게 진행되는 속도가 맘에 든다.

안도감을 느낄 즈음 갑자기 눈이 놀란다. 더워진 날씨 탓에 현관 앞에 부려 둔 택배박스가 터지고 있다. 김치가 익으며 봉지가 부풀려지는 거다. ‘어쩌지? 나도 테이프로 칭칭 감아야 하나?’ 그냥 두기로 한다. 테이프로 조절될 상황이 아니다. ‘택배기사가 알아서 하겠지.’ 그 생각을 하자 불현듯 택배기사에게 맘이 쓰인다. ‘이 문제가 택배기사 과실로 처리되어 배상으로 이어지는 건가?’

내 구매가 정기적이어서 택배기사와는 이미 구면이다. 그는 늘 웃으며 먼저 인사하고, 내가 계단으로 내려설 때까지 택배상자를 들고 기다려준다. 앞으로도 마주할 게 뻔하다. 내 구매 행위의 부산물 같은 관계의 사슬이다. 뭐든 내 손에 들어오기까지 뭇 사람의 도움이 엮인다는 얘기다. 삶의 구조가 그러하다보니 하자에 대한 내 시정 요구가 의도하지 않은 분란을 일으킨 셈이다.

쪼개지는 스티로폼 택배상자를 바라보니 이래저래 난감하다. 난 택배기사를 괴롭히려는 게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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