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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화 Apr 21. 2016

나는나는 파랑

엄마 내 마음을 알아주세요


컬러에 계절감은 있어도 남녀구분은 없다고 했던 한 컬러전문가의 말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다. 다소 개인적인 이유인즉, 아이를 낳게 되면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이란 공식을 깨고 싶다던 내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거니와 저런 마음 속 작은 확신은 아이의 물건뿐만이 아니라 다른 선택을 할 때에도 작지만 강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태어나 수없이 많은 물건을 사들이고 소비하고 버리고 정리하다보면 육아의 반은 쇼핑에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물건에 치이며 지내게 된다. 그리고 그 쇼핑리스트에는 언제나 컬러를 선택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 구분이 정해져 있다. 


파랑·분홍처럼 사람들이 대개 남녀 색으로 선호하는 색부터 연두·노랑처럼 그 구분이 다소 모호한 네 가지 색을 기본으로 흰색부터 자주색까지 언제나 쇼핑은 옵션과의 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파랑색이 왜 좋아?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


그 선택에 있어 의도적으로 가장 많이 배제되었던 색은 파랑이었다. 아이의 성이 남자아이라는 이유만으로 파랑색 옷을 입히고 파랑색 이불을 덮어주고 파랑색 샌들을 신기지는 말아야지, 연두색 의자에 앉히고 자주색 바지를 입혔고 노란색 장화를 사주며 엄마의 의도를 숨겨도 아이는 이상하리만큼 그런 색깔들에 익숙해지기는커녕 파란색으로 된 물건들을 숨바꼭질 하듯 찾아냈다.      


파랑색과 노란 색 공을 내보이며 “엄마는 어떤 색이 좋아? 나는 파랑이 좋아” “응, 엄마도, 파랑” “안 돼. 파랑은 내거야.” “그래? 그럼 엄마는 노란색 해야겠네. 하하하.” 질문이지만 답은 정해진 대화 속에서 파란색을 집으려는 엄마에게 아이는 엄하게 소유욕을 내보인다. 엄마의 포기에 안심이 섞인 웃음을 지어주고는 이내 다른 놀이에 몰두하는 아이. 그런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엄마다. 저런 앙칼짐은 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경찰차는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요.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


아이를 돌봐주시던 분께 “파란 색 티 하나 더 갖고 싶어요!” “사모님 거, 파란색 목도이(목도리) 저 주면 안 되나요?” 엄마가 없는 곳에서도 파랑색 관련 에피소드는 계속해서 생겨났고 파란색에 대한 아이의 집착은 점점 강해졌다.      


색이 더 많이 든 크레파스를 새로 받던 날, 크레파스 전부를 주르륵 늘어놓고는 “나는 파랑색이 좋은데 엄마는 어떤 색이 좋아요?” 라고 또 물었다. “엄마는 보라색!” 이라고 하니 “안 돼. 보라색은 사모님거야. 엄마는 노란 색 해.” 라고 다시 정해준다. 색을 알아가고, 자신의 선호를 끊임없이 드러내는 아이가 기특하고 신기하다. 또한 누군가의 기호를 기억해내서 대입시키는 과정도 엄마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이런 대견함에 서운함은 잠시  미뤄둬야 하겠지?       


왜 파랑색을 좋아할까? 문득 그런 의문이 들었다. 답은 쉽게 얻어지지 않았지만 어느 날 ‘프론’을 들고 있는 아이를 보며 희미하게 떠오르는 느낌이 있었다. 아이가 관심을 갖고 좋아하는 장난감의 대부분은 파랑색이었다는 것. 경찰차로 변신하는 로봇도, 레일 위를 쉼 없이 달리는 친구 많은 기차도, 바다탐험대 선장도 모두 파랑색이다. 


선호가 색을 알게 한 것일까, 색을 알게 되고 호불호가 생긴 것일까. 좋아하는 장난감이 파란색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차갑고 시원한 파란색이 주는 건실함과 정의로움이 아이에게도 전해졌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파랑의 상징성을 이해하게 된 건 아닐까?    


경찰차로 변신하는 로봇 '프론' 이미지 출처 : 구글검색


사람이 많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시선을 아래로 향하다 새파란 바탕에 주황색 끈을 묶어 경쾌하지만 조금은 튀어 보이는 운동화를 발견했다. 예전 같으면 내 취향이 아니기에 지나쳤을 그 운동화에 시선이 꽂힌 채 순간 아들 생각이 났다. 


엄마가 저 운동화를 신고 달려준다면 내 뒤를 따라오는 아이는 무척 힘이 나겠지? 힘이 나 달린 아이는 또 신이 나겠지? 그리고 달리는 아이 손에 ‘프론’이 들려있다면 정말로 행복하겠지?     


뱃속 아이가 딸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부터는 커플템(커플+아이템)을 고려해본 적 없던 엄마는 아들과 함께 파란 운동화를 신고 공원을 산책하고 달려볼 생각에 짧은 상상만으로도 갑자기 출근길이 상쾌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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