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시작
아이의 피부가 도저히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니 방심한 사이 더 악화가 되었다. 건선과 아토피 경계선에서 그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아이의 상태는 딱히 어떤 의학적 결론을 내릴 수 없었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일부 방치되고 있었음이 뼈아픈 사실이었다. 엄마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이는 사이 아이는 크고 무거운 괴로움을 혼자서 겪어 내고 있었다. 누구나 알아볼 만큼 얼굴이나 손에 드러나거나 범위가 넓게 퍼진 건 아니었지만 살이 접히는 겨드랑이와 무릎 안쪽에 ‘모질게 긁어 상처 나고 아물기를 반복하여 생긴’ 딱지가 선명하다. 모든 사람의 이해를 구할 수는 없더라도 엄마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뾰족한 수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사타구니 밑이 간지러워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고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도 혼자 잠들지 못해 선생님이 겪으시는 곤란함이 말투와 표정에서 고스란히 느껴지게 되자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더 이상 일반 보육기관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어렵겠구나 싶었다.
왜 좀 더 독한 약을 쓰지 않는 건지, 남자아이의 사타구니를 미혼인 교사가 긁어주는 어려움을 이해하는지 짙어지는 호소에 달리 답할 무언가를 찾지 못했다. 한정된 시간과 노동력으로 여러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우리 아이만을 위한 특별한 보살핌을 기대하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약을 쓰지 않고 깨끗한 물과 좋은 음식으로 천천히 나아지길 기다린다는 다소 무책임해 보이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왜 나는 맨날 가려운 거예요?”
아이를 돌봐주시던 분들이 귀농을 계획하시면서 아이를 시골에서 자라게 하는 건 어떻겠냐고 의중을 물으셨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기에 고민 깊은 밤들이 이어졌다. 둥글둥글 티 없이 자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지만 혹 피부로 인해 예민해지고 까칠해질까 어떤 변화라도 선택해야 할 무렵 아이의 질문에 바로 결심이 섰다. 아이는 이제 자기 의사를 정확히 표현할 만큼 자라 있었다. 어떤 식인지 답은 없었지만 늘 아이를 느리게 천천히 키우고 싶었기에 아이에게 엄마의 선택에 대해 동의를 구할 때가 왔다 싶었다.
그곳이 자연 속이라면 좋겠다고, 막연한 생각도 해봤었다. 돈벌이와 편의를 포기할 수 없는 현실이 이상을 따라주지 못하면서도 늘 알 수 없는 갈증을 느끼던 차였다. 마음을 먹고 나자 모든 것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부모와 아이가 떨어져 산다는 건 쉬운 문제가 아니었기에 자연스럽다는 말이 모순처럼 느껴지지만 나의 바람과 맞닿은 듯한 질문과 결심, 모든 것이 그렇게 느껴졌다. 단순하게 생각하니 기회다 싶었고, 아이가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새살이 돋아나 더 이상 간지러움으로 인해 괴롭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그 외에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피부를 치료하고 느리게 사는 삶을 배우기 위해 구례로 내려간 다섯 살 유치원생 아이의 이야기를 엄마의 시선으로 풀어 볼 생각입니다.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