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천국이어라, 해수탕

제주와 제대로 마주하다

by 유화

바쁜 여행 일정을 소화하기보다는 조금 여유롭게 즐기는 편이고 특히나 시장과 온천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번 제주 방문에서 팀원들이 추천한 목욕탕엘 가보자는 남편의 말이 꽤나 솔깃하게 다가왔다. 제주는 더 이상 관광지가 아니라 일상을 살아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고 했던 말이 무색할 만큼 기대가 되는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래 봤자 온천도 아니고 목욕탕인데, 탄산수로 유명하다는 산방 온천도 아직 못 가봤는데 너무 들뜨는 거 아닌가 싶었지만 솔직히 들떴다고 말하기에 민망할 만큼 다음 날 늦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늘어지게 잠을 자고 뒹굴뒹굴 여유를 부리다 점심밥 때가 다 되어서야 집을 나선 걸 보면 어쩌면 수국만큼의 실망은 하지 않겠노라 하는 내심 방어적인 마음도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 집에서 약 15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곳에 낯선 모습의 낡은 건물이 보였다. 몇십 년 전에 신혼부부들이 제주로 신혼여행을 오면 이런 곳엘 들렸을까? 뭔지 모르지만 격하게 이는 감정에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여기 대체 뭐야, 하는 의아함이 들 무렵 주차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차들이 눈에 들어왔고 긴장했던 마음을 살짝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확신을 했다. 나는 분명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강원도의 오래되고 낡은 온천 숙소를 떠올리게 하는 외부 모습과는 상관없는 곳이라는 듯 내부는 마치 일본 온천장 안의 소박한 목욕탕같은 느낌을 주었다. 았지만 확연히 다른 두 곳의 느낌이 묘하게 섞여 있는 것이 신선했다. 분명 낡긴 했지만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었고, 선명하고 깨끗한 공기가 선풍기를 통해 계속 돌고 도는 그런 장소,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 드신 중년 분들이 여유롭게 시간을 즐기는 그곳, 좋구나! 역시 나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혼자라면 세 시간도 있을 수 있었지만 목욕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남편을 위해 아쉬운 마음을 접고 한 시간 뒤에 입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바다가 보이는 노천탕을 보고도 애써 덤덤한 척했다. 마음을 달래지 않으면 이곳을 나갈 수 없을 것 같아 마치 몇 번 와본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알아서 눈치껏, 가엽게도 나는 늘 이런 식이다. 짠물이 알맞게 따뜻한 해수를 즐기기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게 쫓기지 않는 목욕을 마쳤다. 그리고 나오면서 다짐했다.


‘나 진짜 여기, 제주 올 때마다 올 거야!’

목욕 후 허기진 배를 달래준 것은 해장국이었다. 해장국은 언제 먹어도 맛이 좋다. 굳이 추천하는 식당이 아니어도 대부분의 평범한 식당이 다 음식 맛이 괜찮다고 하는 남편과 이번에 들른 해장국집은 목욕탕에서 가까웠다. 지난번에 먹은 해장국만큼 맛있다는 내게 여기 은희네뿐만 아니라 미풍이고 미미고 다 비슷한데 간의 세기가 조금 다르다는 차이를 말해주며 제법 제주사람인 양 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찌 됐든 그 말이 맞다. 내가 보기에도 어느 곳이든 다 맛있고 반찬으로 나오는 김치 종류만 조금 다를 뿐이다.


점심 먹고 저녁 약속 전까지 모하지 싶은 내게 남편은 너무도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차의 방향을 종달리로 향했다. 와, 수국 안 봐도 된다는 사람에게 결국 수국을 보여주겠다는 거구나. 성실하고 사명감 투철한 남편 덕에 맹목적인 수국 타령이 결국 현실화가 되었다.

예쁘다. 그래, 무척이나 예뻤다. 연한 연둣빛으로 시작해 푸름과 보랏빛으로 물들다 진한 자줏빛까지 색상도 다양한 그 꽃이 참말로 예뻤다.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진도 잘 나와서 무척이나 기분이 좋아진 김에 말했다. “여보 태종사 수국이 그렇게 좋다는데?” 언젠가는 함께 가보자는 생각으로 무심히 말하다가 만족을 모르는 사람으로 부담을 줄까 싶어 이제는 그만 수국 타령을 접기로 한다. 가는 길에 <토끼섬> 카페에 들러 목을 축이고자 추천메뉴인 식혜를 주문했다. 그 평범할 것 같은 식혜가 내 입에는 맞지 않는 향이 가득해 사진만 몇 장 찍고 미련 없이 나와 버린다. 그리고는 저녁을 사주시겠다는 남편 회사 분을 만나기 위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같은 팀에서 함께 일하시는 과장님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편을 팀장으로 인정해주고 한편으로는 동생처럼 잘 보살펴주는 고마운 분이었다. 오히려 우리가 식사를 대접해야 할 입장인데 주말 저녁에 귀한 시간을 내어 나와 주신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추천해주신 식당에서의 놀라울 정도로 맛이 좋은 고기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다음번엔 뭍으로 오시겠다는 말에 민첩하게 반응했다. 남편과 함께 못 오셔도 좋으니 꼭 대접할 기회를 달라고!

또 하루가 저물고 제주의 밤이 깊어간다. 미리 내둔 오전 반차 덕에 다음 날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후에 회사로 출근을 하면 되었기에 더없이 여유롭다. 덥고 습한 날씨지만 불편하단 생각과 피곤하다는 생각이 전혀 없는 일상 같은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