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정하다 글쓰기를 포기하는 당신에게

by 재미나

오늘도 글 한 편을 쓰려다 노트북을 덮었다. 내용은 대충 머릿속에 있는데, 이 모든 것을 관통하는 '근사한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목이 좋아야 클릭을 할 테고, 제목이 선명해야 글이 길을 잃지 않을 것 같다는 신중함. 그 조심스러운 성격이 결국 내 손가락을 멈추게 한다.


돌이켜보면 내 삶도 그랬다. 완벽한 계획, 근사한 명분,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제목'이 붙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재무회계 8년 차로 살며 깨달은 것은, 아무리 완벽한 시산표를 짜 놓아도 첫 번째 전표를 입력하지 않으면 장부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제목'이라는 포장지에 압도당해 '내용'이라는 본질을 놓친다. 좋은 제목을 뽑으려다 글쓰기를 포기하는 것은, 면접에서 멋진 답변을 준비하느라 정작 면접장에 가지 않는 것과 같다. 나 역시 그런 '모순덩어리'였다. 재미를 찾으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정체성을 바꾸고 싶다면서도 침대 밖으로 나가는 것은 두려워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지금의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결단코 기존의 방식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일단 '무제'라고 적고라도 첫 문장을 떼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아침 8시, 나는 어김없이 카페에 앉아 몽테뉴의 『에세』를 펼쳤다. 그는 말했다. "나의 직업과 기술은 사는 것이다."라고. 거창한 철학적 제목을 붙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기 위해 썼던 그의 글들처럼 나 역시 내 일상의 파편들을 기록하기로 했다.


제목은 글을 다 쓰고 나서 붙여도 늦지 않는다. 아니, 제목이 없으면 좀 어떤가. 내용이 정직하다면 독자는 그 행간에서 자신만의 제목을 발견할 것이다. 만약 당신도 제목을 고민하다 커서를 깜빡이고만 있다면, 그 고민을 그대로 글로 써보길 권한다. 완벽주의라는 이름의 게으름을 인정하고, '잘리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힘으로 일단 써 내려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의 감옥'에서 '실천의 광장'으로 나가는 유일한 전략이다.


자, 이제 제목 칸은 비워두고 첫 문장을 시작해 보자.
내일의 내가 오늘의 나를 보고 "그래도 하나 썼네"라며 피식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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