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니컬한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이랬기 때문에 나는 이런 나 스스로를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친구가 없지는 않았지만, 내가 노력해서 친해지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어떤 곳에 소속되어야 안정감을 느꼈기 때문에 학교 다닐 때는 적당한 그룹에 속했고, 학원에서도 몇몇 친구들을 만들었다. 대학교에선 과친구들이나 동아리 활동을 하며 어떻게든 소속감을 챙겼다. 생각해 보니 네트워킹에 정말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의 시니컬함은 다시 스멀스멀 올라왔다. 몇몇 이메일들만 읽어도 바로 인류애가 사라지고 정규교육을 받은 게 맞나 싶은 문의가 많았기 때문이다. 억지로 친해지지 않아도 그럭저럭 혼자 생활하는 데에 어렵지 않아졌기도 했다. 몇 번의 이직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사람들과의 친분을 쌓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그냥 사는 게 이런 건가 싶었다.
그런데 왜 뭔가 부족하다고 생각이 될까?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던 나 자신조차 사람들과 멀어지니 에너지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고독해야 하고 사유해야 한다고 철학하는 사람들은 말한다. '과연 그럴까?' 남에게 끌려다니는 것과 사람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 것은 다르다.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서로 은근한 자랑이 오간다. 남과 비교하게 되고 남의 말에 휩쓸린다면 반드시 한번은 무너진다.
그렇지만, 너무 안전지대만 찾아서 혼자 있거나 편한 가족들과만 있다면 과연 남은 평생을 잘 살 수 있을까? 삶의 낙은 가만히 있는다고 생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맥과 생각의 폭을 더 넓혀야지 자연히 더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속 배우고 생각을 넓히는 것만이 삶을 단단하게 하는 방법인 듯싶다. 다음은 막 써 내려간 나의 다짐, 회고..
무너지지 않고 오늘도 나의 속도로 뚜벅뚜벅.
삶을 기쁨의 시선으로 볼 수 있기를.
직장은 가끔 답답하기도 하지만
마음속에선 언제나 자유롭고 여유롭기를.
남들처럼 살아가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닌,
때로는 부서지고 엉망이 되더라도 불안정 속에서도 견뎌내며 숨겨진 회복의 감각을 깨우며,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나침반이 없어도 결국 내 길을 찾기를.
두려움도 외로움도 결국 나의 가능성을 깨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믿고,
상처 속에서 새로 살이 돋기를.
아무도 믿지 않아도 스스로를 믿고 나의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