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고?

아무튼, 머리카락

by 김진오

누군가는 탈모를 고통이라 하고, 누군가는 운명이라 여기며, 또 누군가는 그냥 나이 탓으로 넘긴다. 그런데 나는 그걸 해결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았다. 말 그대로 하루 종일 머리카락을 들여다보며 살다 보니, 어느새 전문가가 되었고, 하다 보니 글을 쓰고, 영상을 찍으면서 생각들을 나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그 모든 활동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그저 내가 아는 지식과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유튜브 구독자는 34만 명.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라고 생각하려 해도, 그 안에 담긴 크고 작은 시선들이 제법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다. 지금도 댓글 하나하나를 다 읽는다. 처음에는 모든 댓글들을 마음에 담고, 밤에 이불 덮고 누워서도 자꾸 생각이 났다. “나는 이 말을 왜 이렇게 했지?”, “이 장면은 왜 저렇게 나왔을까?” 반성인지, 자기 검열인지 모를 시간들이 길어졌다.


기억에 오래 남는 건 역시 악플이었다. 나는 그 사람을 모르고, 그 사람도 나를 모를 텐데, 어떻게 저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는 걸까. 그게 참 궁금했다.

초기에는 상처도 많이 받았다. “말투 왜 저래”, “얼굴 좀 어떻게 해봐라" "네 머리나 잘해라”, “의사 맞아?” 같은 댓글을 보면 괜히 거울을 들여다보게 됐다. 말투를 바꿔볼까, 편집 스타일을 다르게 해 볼까 고민도 했다. 신경을 너무 쓰다 보니 글 쓰기도 싫고, 영상 찍기도 싫고, 심지어 올렸다가 다시 내린 적도 있었다. 그때의 나는 아직 세상에 나를 드러내는 일에 서툴렀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내 존재 전체를 흔드는 것처럼 느껴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진심이다. 순간 기분이 나쁠 때도 있지만, 그 감정이 오래 머물지는 않는다. 이제는 감정의 결을 안다. 상처받는 순간에도 "이건 곧 지나갈 거야", "내가 진짜 귀 기울여야 할 목소리는 따로 있어"라고 스스로 말한다.


얼마 전, 예능 방송에 출연한 뒤 주위 사람들이 잘 봤다고 카톡 연락을 많이 받았다. 본방은 나도 못 봐서 유튜브에 올라온 영상으로 확인을 했는데, 영상을 보고 나서 댓글 창을 보게 됐다. 예전 같았으면 손끝이 떨리고, 혹시나 실수한 장면이 있었는지 되짚으며 영상을 다시 봤겠지만, 이번엔 그냥 습관처럼 스르륵 내렸다. 익숙한 댓글들이 보였다. “돈 벌러 나왔냐”, “비호감”, “요즘 의사들 다 유튜버야?”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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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받은 유튜브 악플들


그 말들이 내 삶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방송에 나가고, 내 말이나 태도가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흥미롭겠지만, 누군가에겐 불편할 수도 있다. 그것도 이해된다. 각자의 감정이니 존중하면 되는 일이다. 내가 그걸 전부 감당할 필요는 없다.

같은 방송에 출연한 연예인에 대해 댓글창에는 내가 받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악플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였다. 너무 과한 말들이 많아 내가 다 움찔했다. 연예인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걸 그날 처음 진지하게 느꼈다. 나도 가끔 상처를 받는데, 매일 대중 앞에 서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감정을 안고 살아갈까.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받은 악플 따위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꽤 못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자기 확신도 부족하고, 누군가에게 내 속마음을 들킬까 봐 괜히 먼저 웃고, 일부러 더 쿨한 척도 한다. 환자들 앞에서는 단단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이게 최선일까?”를 수없이 생각한다. 유튜브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카메라 앞에서 입이 얼어붙었고, 말하다가 실수를 연발해서 처음부터 다시 찍은 적도 많았다. 목소리는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았고, 편집하면서는 내 표정이 왜 이 모양이냐고 아내에게 묻기도 했다.

지금도 종종 그런다. 카메라를 켜기 직전, “이 말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완벽한 사람은 없고, 엉성하고 부족한 모습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그 못남이 결국 나고, 그걸 숨기지 않는 게 오히려 진심이라는 걸.

악플도 이제는 나름의 쓸모가 있다. 덕분에 내가 어떤 모습으로 비칠 수 있는지를 배우고, 내 진짜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중심을 잡게 됐다. 때론 댓글을 보며 "아, 이렇게도 보일 수 있구나" 하고 새롭게 깨닫는다. 상처가 아니라 학습으로 남는 지금이, 예전의 나보다 훨씬 낫다.


‘유명세’라는 말이 있다. 유명하면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들을 그렇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이젠 익명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남을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도구가 있기 때문에 그 세금이 많이 올라간 것 같다. 대범한 척했지만, 아닌 척했지만 은근히 그래도 신경 쓰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도 안 보려다가 그래도 궁금해서 사람들이 뭐라 하는지 댓글을 보는 것처럼. 그래도 항상 노력한다. 근거 없는 이유 없는 악플로 상처받으면 지는 거야. 상처받지 말자'라고.

과거 유명인들보다 지금 유명인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훨씬 많을 거다. 유명세가 과거보다 많이 올랐으니까. 나 하나라도 굳이 남에게 세금을 더 매기지 않는 사람이 되자. 좋은 말을 한번 더 해주자. 선플받으면 그날 기분 정말 많이 좋더라. 맘에 안 드는 점이 있더라도 정중하게 하자. 막상 보면 앞에서 아무 말도 못 할 거면 차라리 합죽이가 되자.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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