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본 공포의 외인구단 까치는 왜 이렇게 불편할까
집에 있던 만화책 ‘H2’를 무심코 집어 들었다가 밤을 꼬박 새울 뻔했다. 주인공 히로의 그 무심한 듯한 시크한 눈매를 보고 있자니, 문득 머릿속에 전혀 다른 관상의 한 남자가 툭 튀어나왔다. 바로 우리 세대라면 모를 수 없는 ‘공포의 외인구단’의 ‘까치’ 오혜성이다. 두 사람 모두 마운드 위에서 청춘을 바쳤지만, 그 방식은 정반대였다. 한 명은 타오르다 못해 재가 되버리고, 하나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같은 느낌이다..
까치는 말 그대로 80년대가 낳은 비장미의 결정체다. 그의 사랑은 거의 종교적이었고, 동시에 지독하게 파괴적이었다. “난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던 그 유명한 대사는 지금 들으면 솔직히 좀 무섭다. 까치에게 사랑은 상대를 아끼는 마음이라기보다, 자신의 불행을 전시하며 “내가 이만큼이나 너를 위해 망가질 수 있어!”라고 외치는 자기 증명인 것 같다. 팔이 부서져라 공을 던지는 그 모습은 헌신이라기보다 차라리 자해를 통한 시위처럼 보였다. 상대인 엄지의 마음이 어떠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뜨거움으로 상대를 질식하게 만드는 그런 식의 열정 말이다.
반면 히로의 세계는 쿨하고 시크하다. 히로 역시 짝사랑을 품고 살지만, 그는 결코 그 감정을 바깥으로 질질 흘리지 않는다. 히로의 ‘쿨함’은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감정이 타인의 삶에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아주 세련된 절제다. 그는 첫사랑이 다른 남자 곁에 있는 것을 존중하고, 그들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까치가 상대를 소유하기 위해 파멸로 폭주했다면, 히로는 상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그에게 야구는 비명이 아니라 정교하게 다듬어진 언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까치의 비장함에 열광했던 시절은, 사실 모두가 조금씩 병들어 있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남자가 자기 자신을 망가뜨리는 게 곧 순정이라고 믿었던 착각의 시대. 하지만 이제 우리는 안다. 누군가를 정말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편하게 해줘야 한다는 것을. 자신의 결핍을 장엄하게 전시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상대를 자기 서사의 엑스트라로 쓰는 이기심일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다시 보는 히로의 뒷모습은 까치의 앞모습보다 훨씬 단단하고 어른스럽다. 뜨겁게 불타오르기는 쉽지만, 그 열기를 안으로 갈무리하며 상대를 배려하는 건 훨씬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까치의 투구가 “나를 좀 봐줘!”라는 외침이었다면, 히로의 투구는 “나는 괜찮아, 너도 잘 지내”라는 다정한 안부 인사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마 까치처럼 펄펄 끓던 열기를 히로처럼 맑고 선선한 공기로 바꿔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제는 비장함보다는 다정함이, 집착보다는 거리가 더 고귀하다는 걸 안다. 책장을 덮으며 생각한다. 촌스럽고 위태로웠던 우리 안의 까치에게는 작별을 고하고, 이제는 히로처럼 조금 더 세련되고 건강하게 누군가를 아끼는 사람이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