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 전에 다시 나는 책
그렇게 3년 1천 권의 책을 읽고 나서는 그냥 손에 잡히는 대로 그날의 기분이나 느낌에 따라 책을 골라 자유롭게 읽었습니다. 어떤 날은 감성 젖는 에세이나 시집을 읽고, 어떤 날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시간관리가 필요하면, 브라이언 트레이시 같은 식이었습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남독(濫讀)을 한 셈입니다.
독서 제법 한다는 사람들은 다 그리하고 있겠지만, 에세이나 소설, 실용서나 철학서는 그 읽는 방법이 다 다릅니다. 가볍게 읽어가면서 전체를 봐야 하는 책도 있고, 한 줄 한 줄 꼭꼭 씹어 삼켜야 하는 책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책에 따라 책 읽는 방법도 가려서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제대로 된 효과를 보기 위해선.
책을 읽는 방법, 그러니까 독서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속도에 따라 구분해 보면, 뜻을 새기며 자세하게 읽는 정독(精讀)이 있고, 정독과 유사한 말로 숙독(熟讀)이나 열독(熱讀)이 있으며, 정독과 반대되는 개념은 속독(速讀)인데, 이는 가벼운 글이나 정확한 이해가 불필요한 책을 빨리 읽는 것을 가리킵니다.
범위에 따라서는 통독(通讀), 즉 책을 중간에 건너뛰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 읽는 방법과 발췌독(拔萃讀), 책이나 콘텐츠에서 필요한 부분만을 뽑아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여기서 통독은 정독과 구분해 줘야 하는데, 글을 꼼꼼하게 그 의미를 새기면서 읽는 것을 '정독'이라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더라도 훑듯이 읽었다면 그건 통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발성, 그러니까 소리를 내는지 그 여부에 따라서는 묵독(默讀)과 음독(音讀)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전자는 밖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속으로 읽는 것을 말하며, 후자는 글을 소리 내어 읽는 것을 가리킵니다. 낭독(朗讀)은 음독처럼 소리 내어 읽는다는 것은 같지만 혼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읽어준다는 점에서 서로 다릅니다.
순서나 체계, 내용에 관계없이 아무 책이나 마구 읽는 남독(濫讀)도 있고, 한 분야의 책만을 고집해 읽는 편독(偏讀)도 있습니다. 다 쓰임이 다르니 뭐가 옳고 그르다는 말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체계적인 지식을 쌓고, 하나의 주제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는 목적이라면, 남독은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책을 읽는 태도에 따라서도 구분해 볼 수 있습니다. 수용적 태도로 읽기는 책에서 주는 교훈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합니다. 반대로 비판적 태도로 읽기는 책 내용상의 오류를 검증하거나 저자의 생각을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읽게 되죠. 물론 둘을 혼용해서 쓸 수도 있습니다. 이외에도 구분법에 따라 다독(多讀)과 소독(少讀), 윤독(輪讀), 강독(講讀) 등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글 첫 머리에서 밝힌 바와 같이 소정의 목적을 달성한 후에는 남독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생각이 편독으로 치우쳐 멈추지 않을까 싶어서 남독을 합니다. 그런데 이 남독을 하게 되면 기존의 다소 단조로웠던 독서법에 변화를 줄 필요가 생깁니다.
시집은 주로 정독을 합니다. 에세이 역시 주로 정독을 하지만 때에 따라 속독을 할 때도 있습니다. 소설은 제 경우 대부분 속독입니다. 다소 다루는 주제가 무겁게 느껴지는 인문학이나 철학, 성공 철학은 쉽건 어렵건 정독을 원칙으로 하고 있죠.
속독으로 읽다가도 뭔가 새길 것이 있거나 마음에서 감흥이 인 경우엔 정독 혹은 숙독으로 바꿉니다. 윤독(輪讀)을 해주기도 하죠. 실용서는 발췌독을 기준으로 하고, 좋은 책들은 대부분 통독이 원칙입니다. 물론 제 기준입니다.
보통은 묵독으로 읽습니다. 하지만 뭔가 턱 막히는 부분이나 소설에선 이후 전체적인 사건의 중요한 분기점 정도가 되는 복선 부분은 소리 내서 읽은 후 윤독, 정독합니다.
제 주관적인 방법은 이게 다예요. 그런데 뭔가 느끼신 분들이 있을까요? 맞습니다. 정해진 게 없어요. 제멋대로죠. 그걸 말하고 싶은 겁니다. 모든 방법은 책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사람, 상황에 따라서도 죄다 달라요. 그게 맞는 겁니다.
소리 내서 읽고 싶을 땐 그렇게, 조용히 속으로 읽고 싶은 책이나 상황일 땐 또 그렇게, 속독으로 쭉 나가다 되돌아가 뭔가 되짚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싶을 땐 몇 번이고 윤독을 하면 됩니다. 통독을 하겠단 마음으로 시작했다가 중간쯤 마음이 바뀌었다면, 발췌독으로 바꿔 뭐 하나라도 건진 다음 끝을 맺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책 읽는 방법이 아니라 책을 읽는 것이고, 책 읽은 결과로 얻고 싶은 강한 목적성입니다. 그깟 독서법이야 뭐든 무슨 상관입니까. 자유롭게 읽으세요. 그럼 부분 부분에 따라, 책의 종류에 따라, 상황에 따라 조금씩 속도를 조절하고, 몰입해 집중하거나 빨리 상황만 캐치해서 읽어갈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의 능력을 그리고 잠재력을 믿으세요. 형태에 얽매이지 말고, 필요한 걸음마 단계를 끝내 습관화됐다면, 자유롭게 여러분을 풀어 주시면 됩니다. 제 독서법은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