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명에게 발신 취소 후 재발신.. 그리고 또 실수
회사에 다니면서 많은 퇴직메일을 받았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받을 때도 있었지만,
퇴직 메일은 언제나 꼼꼼히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언제 이걸 써보려나 하며,
언젠가 쓰게 될 퇴직 메일에 참고하기 위해
일부는 저장시켜두기도 했다.
그리고 나도 드디어 쓸 때가 왔다.
마지막 인사를 정말 잘하고 싶었기에,
퇴직 몇 주 전 시간 여유가 잠시 있을 때
메일 초안을 작성해 두었다.
그리고 시간이 생길 때마다 내용도 조금씩 수정하고,
수신인도 조금씩 추가하였다.
(가끔 전체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메일을 보내시는 분들도 있었는데, 난 아는 분들에게만 보내고 싶어 900여 명 중 일일이 추가를 하였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앞두고는 정신이 없어서
퇴직 당일 오후가 되어서야
임시저장된 메일을 열 수 있었다.
급히 내용을 최종적으로 다듬고
총 177명을 수신에 추가하였다.
긴장된 마음으로 발송 버튼을 누르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데,
바로 옆 동료가 "어... 오타..."라 말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으아! 퇴직 메일에 오타라니...
그것도 유일하게 한 번 쓴 회사명에 오타가 났다.
회사명이 다섯 글자인데,
그중에 네 번째 글자를 빼먹은 것이다.
웬만한 오타면 넘어가려고 했지만,
퇴직 메일에 회사명 오타는 좀 아닌 것 같아
황급히 발신 취소를 하고 수정하여 메일을 보냈다.
그런데 이번엔 대각선 맞은편 동료가 말했다.
"수신인이.. 다 보이는데요..?"
물론 퇴직 메일을 보낼 때
전체 수신인이 다 보이게 하는 분들도 몇 봤지만,
난 수신인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 보낼 땐 개인별 발신에 표시를 했는데,
발신 취소 후 재발신할 땐 누락한 것이다.
동기 대화방이 난리가 났다.
"오 누나 친구 많네. 177명이라니."
"우리 그룹은 4명밖에 없네..."
"XXX 프로님이랑은 어떻게 알아?"
짧은 시간 동안
한 번 더 발신 취소를 해야 하나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두 번 발취는 아닌 것 같아 포기했다.
굳이 좋게 생각한다면,
메일 받으신 분들이
내가 아무나한테나 보낸 것이 아니라
나름 고민하며 보냈단 것을 알아주시기를...
같은 그룹 선배도 오타 없는 퇴직 메일 본 적이 없다며
신경 쓰지 말라고 해주셨다.
그래 사실 수많은 퇴직 메일 중 하나이고,
바로 다 잊힐 거다.
그러고 화장실을 갔는데,
수신인을 꼼꼼히 본 동료들이 꽤나 많아 당황했다.
점심 식사 후 졸릴 때쯤 사소한 재미를 제공했다면
그것 또한 다행이다.
아래는 퇴직 메일 전문이다.
진심으로 회사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대문자 P로 회사에 들어와서
꼼꼼해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을 가졌고,
실제로 내 성격 중 많은 부분이 변하기도 했다.
실행력이 생겼달까.
좋은 사람, 닮고 싶은 사람도 많이 만났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한다.
(커버 사진은 동료들에게 감사인사하며 돌린 꿀이다.)
안녕하세요.
XXXXX그룹 XXX입니다.
오늘부로 퇴직하게 되어 인사드립니다.
2019년 7월 입사 이후 6년 넘는 시간 동안
좋은 선후배님들과 동료분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훌륭하신 분들과 함께 일할 수 있음에 늘 감사했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또 이만큼 의미 있고 즐거운 일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도 있지만,
새롭게 배우고 싶은 분야가 있어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XXXXX에서의 감사하고 소중한 인연들과 시간,
다양한 프로젝트들은 잊지 못할 것입니다.
비록 이제 회사 안에서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앞으로도 소중한 인연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 연락처 공유드리오니,
좋은 일이나 필요한 일 있으시면 언제든지 편하게 연락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