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깍이 대학생
스물일곱, 언제 이렇게 나이가 찼는지 가끔 스스로 놀란다. 나는 아직도 아무것도 모르고 하고 싶은 건 많다. 아직은 대학생이라는 신분 아래서 사회를 한걸음 떨어져 관망하고 있지만 저 사회가 곧 내가 가야 할 곳임을 알고 있다. 사실 조금 두렵기도 설레기도 한다.
많다면 많은 나이 스물일곱
스물다섯 살, 꿈을 포기하고 학교로 돌아왔을 때 매일 하던 생각은 "졸업하면 취업할 수 있을까?" 대기업은 바라지도 않았고 그냥 일할 수 있다면 감사했다. 그 당시 내 학점은 1점대였고 자격증은 mos master 뿐이라 뒤쳐진다는 콤플렉스가 심했다.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며 휴학을 하고 3년 간 학교를 떠났는데 그때의 시간들을 세상은 낭비라고 말했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에 꿈을 좇던 그때의 시간을 세상의 말만 듣고 후회했다. 물론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 그때의 시간이 나를 만들었다.
25살의 나는 항상 두려워했다. 대학생이라는 옷이 나에게 너무 커서 부끄러웠고 할 수만 있다면 벗고 도망치고 싶었다. 물론 자퇴를 할 용기는 없었다. 나는 스스로를 비하하는 습관이 있는데 25살은 그러한 내 자기비하 능력의 전성기였다. 모든 후배들 선배들이 대단해 보였고 대기업에 들어갔다고 페이스북에 합격 메일을 올리는 친구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나는 그러한 환경에 위축되어 하루하루를 보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는 그시기에 남자친구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 해 여름, 이별의 상처와 낮은 자존감의 콜라보 향연 덕분에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런 내가 계절학기를 들으러 매일 학교에 다녔는데 학교에서 남자친구가 대리로 있는 회사의 대외활동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대학생 서포터스를 뽑는다는 그 포스터 앞에서 나는 생얼에 머리는 대충 묶은 채로 그앞에 서있었다. 그 비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아직도 모르겠다.
구남친이 내게 남긴 선물, 다시 한번 글쓰기
남자친구 회사의 포스터 옆에는 신한은행 대학생 기자단 홍보 포스터가 있었다. 그날은 지원 마지막 날이었는데 집에 가자마자 나는 신한은행 대학생 기자단에 지원했다. 지금도 맹세할 수 있지만, 나는 내가 뽑힐 것이라고 1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기소개서란에 나의 삶에 대한 넋두리를 잔뜩 써놓았고 증명사진에는 꽃 목걸이를 하고 (진짜 생화 목걸이) 약간 정신 나간 여자처럼 웃는 사진을 첨부했다. 디자인을 공부하는 친구가 잡지 광고를 만들 때 모델로 도와주면서 얻은 가보였다. 누가 보면 대외활동 지원서가 아니라 정신병원 입원 신청서로 보였을 것이다. 약 1천 명 이상의 지원자가 몰린다던데 1천 장의 지원서를 읽다 지친 분들에게 내가 소소한 재미를 드렸나 보다. 그 사진에 호기심을 느낀 신한은행 대외활동 관리자분들은 나를 면접에 불러주셨다. 나는 너무 창피해서 면접에 갈까 말까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스물다섯 살, 나는 정말 힘들었지만 여차저차 대학 생활을 배워나갔다. 대단한 건 없었다. 그냥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아는 영화과 선배를 따라 단편영화 스크립터를 하고, 대학생 기자단을 하면서 글을 쓰고 또 교내 어학당에서 유학생들의 한국어 학습을 도우며 봉사활동도 했다. 그래서 대학생활이 너무나 즐거웠다. 어디든 갈 수 있었고, 무엇이든 해볼 수 있었고 또 그 과정에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서 다양한 꿈을 듣고 또 그들의 열정을 보았는데 그게 나를 너무 많이 바꾸어 놓았다. 내가 생각했던 엘리트 대학생들은 사실 그냥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았다. 대단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하게 자기가 원하는 걸 열심히 하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사람을 나누고, 다르게 생각하는 벽이 있었는데 2년 간의 대학생활 동안 스스로 그 벽을 허물 수 있었다. 나는 '실패'라는 벽 너머에 있지 않다. 나는 '열정'이라는 선 안에 있지도 않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가하는 것과 평가받는 것에 어색해지는 것이다. 세상은 사실 아무것도 정의하지 않고 있다. 어리다고 좋다고 한 적도 없고, 꿈을 좇는 것이 열정이라 한 적도 없다. 열정의 정의도 100명의 사람에게 100가지의 정의가 있으며 심지어 그 많은 정의 안에도 정답은 없다.
7년간 대학생의 신분으로 내가 배운 가장 고마운 사실, 다양한 사람들 속에 수많은 삶이 있다는 사실. 이제 사회로 나가면 더 많이 마주하게 될 것들에 나는 가슴이 두근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