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목적은 완주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에 대한 애정은 유별나다. 마치 칸트의 산책처럼 그는 많은 것을 달리기에서 배웠다고 말한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라는 에세이에서 그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했다. 그에게 삶이란 “누가 더 빨리 달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느냐”의 문제였다. 완주는 그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을 잃지 않고 끝까지 살아내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이다.
인생은 늘 경쟁의 언어로 포장된다. 더 빨리, 더 멀리 달리라고 재촉한다. 우리는 누군가의 속도를 기준 삼아 자신의 존재를 평가하고, 남보다 늦으면 불안감과 좌절감을 느낀다. 그러나 하루키는 그 경쟁의 언어에서 비껴서라고 말한다.
“인생의 목적은 완주에 있다.”
그의 말처럼 인생은 속도의 철학이 아니라 지속의 철학이고 공백과 침묵의 철학이다. 중도에 멈추지 않고 끝까지 지속해 낸다는 것은 자기 페이스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도 대신 정해줄 수 없는 속도, 그것이 삶의 리듬이다. 때로는 느려도 좋다. 중요한 건 그 느림 속에서도 자신의 호흡을 잃지 않는 일이다. 바람이 불면 고개를 숙여야 하고, 다리가 무거우면 좀 더 페이스를 늦추며, 나의 호흡과 컨디션에 오롯이 집중해서 달릴 때 비로소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존재의 의미에 닿는다.
완주는 끝이 아니라 과정의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사랑하는 사람인지, 어디까지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를 배운다. 인생의 목적은 이기는 데 있지 않고 살아내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생이 결승점이 아닌 여정이라면, 완주는 끝이 아니라 ‘계속 살아 있으려는 약속’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