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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woo Aug 14. 2020

요즘 애들은 다 프로그래밍을 한다더라

Z , 밀레니얼, 어쩌구저쩌구


우리가 태어난 연도는 10년 단위로 묶여 무슨 무슨 세대라는 별명이 꼭 붙는다. 나는 밀레니얼, 아니면 Z 세대, 아니면 이도 저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에 있다. 멋대로 별명을 지어 부르고 "이 세대는 이래, 이래야 해" 하고 강요하는 무언의 압박 속에서 나는 단지 나로 살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런데 최근 "요즘 애들은 다들 프로그래밍을 한다더라" 라는 말을 들었다. 내가 보기엔 그렇지 않다. 프로그래머로 일하는 친구도 있고 컴퓨터니 코딩이니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 없이 지내는 친구도 아주 많다. 각양각색으로 사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요즘애들은 다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는 걸까?




언택트  

요즘 애들은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하고 혼자 있으려고 하더라 

나도 처음에 키오스크를 봤을 때는 신기하기도 했지만 어렵고 당황스러웠다. 대학교 열람실을 이용하기 위해서 열람실 입구 앞 키오스크에서 학생증을 스캔하고 좌석을 선택해야했다. 들어가고 나갈때도 개찰구를 통과하듯 학생증을 스캔해야 했다. 처음엔 번거로웠지만 며칠 만에 적응했고, 그러고 나니 정말 편했다. 키오스크에는 각 좌석에 앉은 학생들의 입실시간과 퇴실시간, 좌석을 빌린시간과 반납시간이 정확하고 확실하게 찍혔다. 아, 정정하겠다. 좌석반납버튼을 누르지 않고 그냥 가는 학생들이 있어서 (고백하자면 나도 자주 까먹었다.) 반납시간은 확실하지 않았다. 마지막 퇴실시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반납되는 기능으로 이 단점이 보완되었다. 또 하나 단점이 있다면 이용률이 높아지는 시험기간에는 자주 고장이 났다는 점.  2010년대 초반, 언택트의 첫인상은 이렇게 낯설고 신기하고, 한편으로는 불편했지만 대체로 만족스러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지금? 

이제는 키오스크에 줄을 서는 것조차 불필요하다. 휴대폰 어플로 주문할 수 있게 된 덕분이다. 학교를 졸업해서 열람실 키오스크는 못본지 오래되었지만 우리동네 버거킹과 메가박스의 키오스크의 경우 처음 생겼을 때에 비해 훨씬 잔고장이 없어지고 화면 디자인도 한층 정돈되었다. 예전에는 블루스크린이 떠있는 경우가 꽤 있었는데 최근에는 에러화면을 거의 못본 것 같다. 


집에만 있어도 모든 게 가능해지자 더 많은 시간을 편안하게 보낼 수 있게 된 것 같다. 적어도 나랑 내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혼자 집에 있는 것을 외롭다거나 심심해하지 않고 '편안하다' 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편안한 차림으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거실에 편안히 앉아 재택근무를 하고, 필요하다면 웨어바이로 회의를 할 수 있다. 출퇴근시간이 없어지자 잠잘 수 있는 시간이 대폭 늘었고, 지옥철 대신 소파에 앉아 유튜브나 넷플릭스, 왓챠를 본다. 필요한 게 있다면 배민이나 쿠팡으로 주문할 수 있고, 식재료는 마켓컬리나 쓱에서, 중고물품은 당근마켓에서 거래한다. 결제버튼을 누를 때 해당 브랜드의 품질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만큼 충분한 신뢰가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기꺼이 직접 보지 않고도 거래를 할 의향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신뢰할 수 있을까? SNS 가 모든 브랜드들을 감시하는 경찰역할을 해주고 있는 덕분이다. 잘못된 거래는 SNS 게시물로 고발되고, 이는 진위여부에 대한 논쟁을 거친 뒤 불매운동으로 이어진다. 대부분의 브랜드는 그러한 논란거리에 오르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기 때문에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그리고 그러한 이미지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언택트 서비스의 품질에 대한 신뢰는 이러한 공개적인 감시체계에서 생겨난다. 


JENNY 님 ,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최근 엄마에게 스타벅스 사이렌오더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드렸다. 그리고 얼마 뒤 모임에 나간 엄마가 친구들에게 스타벅스에 가서 앉아서 주문하는 방법을 배웠다고 말하자, 질문이 쏟아졌다. 


- 앉아서도 주문을 할 수 있는 거야? 


- 꼭 영어 이름이 있어야 된대?


- 그게 더 복잡하지 않아?


사이렌 오더를 이용하는 연령층이 꼭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엄마와 친구들은 잘 모르거나 그 필요성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냥 직원에게 직접 말하는 게 더 편한데 뭐하러 복잡하게 이것저것 직접 버튼을 누르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언택트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있는 게 신기해서 오랫동안 고민을 해본 결과 내가 내린 결론은 두가지이다. 


하나, 삶에서 기계를 접한 시간의 비율이 높을 수록 기계를 친숙하게 느낀다. 

   둘, 인간관계에서 지켜야할 에티켓을 더 많이 생각할 수록 기계를 친숙하게 느낀다.


사람은 실수를 하지만 키오스크(앱)은 고장나지 않는 한 실수하지 않는다. 잘못 알아듣거나 빈정이 상하지도 않는다. 아침에 잘못 먹은 음식 때문에 체하거나 소화가 안되지도 않고, 애인이 생기거나 헤어지지도 않으며, 퇴근도 하지 않는다. 고객과 어떠한 감정교류도 하지 않기 때문에 매순간 일정한 태도로 고객의 주문사항을 꼼꼼히 수행하는 데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리고 고객인 우리도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주문할 수 있다. 이 세대는 이렇다고 단정짓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우리 세대는 윗세대에 비해 자기 자신을 많이 소중히 여기고, 그만큼 타인에 대해서도 함부로 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타인을 대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기계는 그러한 부담을 덜어준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게임기 안에서, 휴대폰 속에서, 컴퓨터 모니터에서 우리에게 편안하게 말을 걸어주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주던 친구인 것이다. 한마디로 엄마 친구들의 질문에 대한 내 답변은, 


버튼 여러개를 누르는 거 복잡하지 않아?
아니, 그냥 자연스러운 의사소통 수단입니다~!

결론적으로 요즘 애들은 기본적으로 기계를 보면 이것저것 잘 눌러본다. 언택트 시대가 되면서 기계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기도 했고. 혹시 기계를 잘 만지작거리는 것이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아닐까?


노동의 가치에 회의적임


재택근무가 일상화되면서 우리는 노동의 유형이 극명하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는 것을 새삼 체감했다. 재택이 가능한 일과 가능하지 않은 일. 화이트컬러니 블루컬러니 하는 고전적인 분류방식이 아니라 좀더, 좀더... 좀더 해당 업종의 근무환경과 특정 회사의 역량과 업계 종사자들의 의지가  복잡다단하게 맞물린 어떤 그런 분류 방식에 의해서 어떤 업종의 어떤 회사에서는 팀업무와 개인의 업무 시간을 명확하게 나누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자유롭고 원활하게 재택근무를 도입한 반면 어떤 회사는 여전히 완고하게 무조건 사무실 출근을 고집하고 있다. 재택근무 여건이 조성되기 힘든 현장직 뿐만 아니라 업무회의조차 화상으로 진행하지 않는 사무직도 있고, 재택근무를 하거나 하지 않는 이유는 각양각색이다.


연봉도 물론 굉장히 중요하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가치나 사내 문화가 회사를 고르는 중요한 요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핀란드와 같은 근무환경과 제도를 기대하는 것은 몇십년 이내로는 무리라고 판단한 젊은이들은 최소한 근무에 대한 논의와 소통의 창구가 열려있는 회사에 가고 싶어 한다. 나의 이야기를 조금만 해보자면, 나는 야근이 꼭 필요하다면 할 수 있다. 나의 업무역량이 문제라면 개인 시간을 들여 업무에 대한 공부를 할 수도 있다. 단 필요가 없거나 단순히 눈치를 봐서 하는 추가업무가 아닌 경우에 그렇다. 꼭 필요한 추가근무 혹은 공부를 하는 게 장기적으로 나에게도 회사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몇년 전 나는 방송업계에 종사했었고, 1년여의 근무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이 업계는 소통이나 개선의 여지가 없다' 라는 것이었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고, 시간도 많이 지났기 때문에 지금은 아닐 수도 있다.) 


요즘 애들은 노동의 가치, 정확히 말해 쓸데 없이 소모적인 노동의 가치에 대해 회의적이다. 더 좋은 시스템을 논의하면서 잠깐 겪는 고생이라면 감내할 수도 있지만, 나아질지 아닐지 모르는 채 끝도 보이지 않는 터널을 파듯 묵묵히 앞으로 가다가 고꾸라져 죽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자신이 함께 참여하여 좋은 시스템을 설계하거나 기존의 시스템을 고치는 것. 한마디로 프로그래밍적인 일에 대해 요즘 애들은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시스템 속 부품으로서 소모되기를 거부하고, 시스템을 설계하는 입장에 있고 싶은 것이다.



개인주의


언택트와 개인주의는 굉장히 많은 상관관계가 있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 덕분에 개인주의적일 수 있는 것이다. 물건을 하나 사러 나가려면 옆집 누구의 차를 빌려 타고 나가야 하고, 동네에 생필품 가게는 딱 하나뿐이고 그 가게 주인이랑 우리 엄마가 굉장히 친한 상황이라면 어떻게 감히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을까? 


사회는 다변화되었고, 서로의 물리적 거리는 가까워졌을지언정 정서적 거리는 멀어지면서 우리는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타인이 되었다. SNS 에서 우리는 적당한 익명성을 갖기에 좀 더 용감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게 되었다. 휴대폰이라는 성능좋은 무기를 들고 다니며 언제든 자기자신을 보호할 수도, 타인을 공개적으로 망신줄 수도 있는 세상에서 우리는 개인주의자가 될 수 있게 되었다. 


고성능의 기계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나 많아졌다. 인터넷 쇼핑을 하다가, SNS 를 하다가 하고 싶은 것이 더 많아지고, 만들고 싶은 것이 생기면 프로그래밍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보인다. 그리고 오래전에 비해 프로그래밍은 훨씬 더 쉬워졌다. 설명서를 따라 프로그램을 하나 뚝딱 만들 수 있는 플랫폼도 꽤 많아졌다. 혼자 할 수 있는 게 이렇게나 많은 세상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너무나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한번씩은 프로그래밍을 건드려보는 것 같다. 나 역시 그중 한사람이다. 그래도 다시한번 말하지만 요즘애들이 전부 다 프로그래밍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혼자 노는 것을 꽤 좋아하고, 시스템의 결함을 개선하고 싶어하고, 좀더 가치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물론 이건 전부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다. 밀레니얼, Z 세대, 어쩌구저쩌구 세대 전체의 생각이 아니라.





TMI.

정말 여담이지만, 나는 택배라는 서비스에는 많은 감사함을 느끼지만 로켓배송처럼 도를 넘는 빠름을 지향하는 문화에는 회의적이다. 3일에서 일주일정도 침착하게 기다리는 문화가 정착되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앞으로는 택배와 배달서비스가 점점 더 보편화될 것이기 때문에, 택배서비스 종사자들의 정상적인 삶을 위한 문화와 제도 정착이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Photo by Silviu Beniamin Tofa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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