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짱 Oct 01. 2022

경기도교육감직인수위원회 백서 비판

- 혁신교육과 미래교육에 대한 개념 정립을 중심으로

 9월29일 있었던 미래교육을 열어가는 혁신교육 1차 포럼 발제 원고인 이형빈 교수님의  '경기도교육감직 인수위원회 백서 비판' 공유합니다.  


이형빈 (가톨릭관동대학교 교수)     


  1. 혁신학교 운동의 교육사적 의미    

 

  2009년 경기도에서 시작하여 2010년대를 관통했던 혁신학교 운동의 교육사적 의미는 결코 적지 않다. 한국교육사 가운데 혁신학교 운동만큼 한국 공교육의 모순을 근본적으로 응시하면서도 이를 공동체적으로 해결하고자 실천했던 흐름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1980년대의 교육민주화운동, 1995년 5ㆍ31 교육개혁안에 비견할 만한 교육사적 의미를 갖는다. 

  물론 혁신학교 운동의 한계도 명확하다. 혁신학교 운동은 기본적으로 ‘현 제도의 틀 안에서 학교혁신의 최대치를 상상하고 실험’하는 것이기 때문에, 학벌구조나 입시경쟁체제에서 비롯된 모순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운동으로서의 학교혁신’과 ‘제도적 정책으로서의 혁신학교’ 사이의 긴장 관계는 피할 수 없는 모순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학교의 성과를 가볍게 폄하할 수는 없다.

  혁신학교 운동을 가볍게 폄하하는 담론에 대표적으로 ‘학력 저하’, ‘무늬만 혁신학교’ 등이 있다. 전자는 학벌구조의 모순으로부터, 후자는 ‘운동과 제도적 정책’ 사이의 모순으로부터 비롯된 한계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러한 담론이 혁신학교의 한계를 나름대로 지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러한 한계가 곧 혁신학교의 성과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논거로 작동할 수는 없다. 혁신학교 운동의 교육사적 의미는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혁신학교 운동은 무엇보다도 현장교사들의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운동이 진보교육감 진영의 정책적 지원과 만나 하나의 제도로 구축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의 교육개혁 운동과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과거에도 열린교육 운동 등 혁신학교 운동과 유사한 교육개혁 운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는 관 주도의 하향식 방식으로 이루어져 현장 적합성을 상실한 채 교사 대중들을 수동적인 존재로 대상화시킨 한계가 있다. 물론 일부 혁신학교에서 이러한 측면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나, 성공한 혁신학교로 평가받고 있는 학교에서는 무엇보다도 교사 대중의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이 개혁의 동력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자발성이 관료조직의 경직성을 내부로부터 균열 내고 있다는 점도 중요한 성과이다.

  둘째, 다음으로 혁신학교 운동은 일부 영역에 국한된 변화가 아니라 학교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단순히 교사 개인의 수업의 형태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동료 교사들과의 협력적 구조 속에 학습공동체를 구축하고 이를 바탕으로 동학년ㆍ동교과 전체가, 나아가 학교 전체가 새로운 협력수업의 원리를 보편화하고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또한 학교교육의 중심을 교육과정 운영에 두고 학교업무를 재구조화하며, 교사, 학생, 학부모 등 교육주체가 민주적으로 참여하는 학교운영을 실현하는 등 학교교육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단위학교를 총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모색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혁신학교 운동은 “현 제도 속에서 가능한 학교변화의 최대치”를 현실화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셋째, 혁신학교 운동은 또한 특정한 모델을 벗어나 꾸준히 진화ㆍ발전하고 있다. 혁신학교 운동 초창기에는 배움의 공동체 등 특정한 모델을 염두에 두거나 교육청의 정책 방향에 따라 진행되어 온 측면도 있었다. 그러나 혁신학교 운동이 확산되면서 학교 안에서의 변화와 학교 밖에서의 변화를 함께 모색하고, 특정한 모델에서 벗어나 새로운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초기에는 일부 열성적인 활동가를 중심으로 진행되어 온 혁신학교 운동이 학교 내 모든 교사들이 혁신학교의 철학과 원리에 동감하며 공동으로 실천을 모색하고 그것이 학교의 구조와 문화로 내재화되면서 새로운 혁신학교 모델이 나타나고 있다. 이른바 ‘혁신학교 시즌2’, ‘혁신학교 3.0’ 등의 표현에 나타나 있듯이, 학교 안에서의 변화가 학교 밖으로 확대되면서 ‘마을교육공동체’라는 새로운 담론과 실천이 출현하고 있고, 지역 내 혁신학교와 일반학교의 연계, 초-중-고 혁신학교 교육과정의 연계 등 새로운 방식이 모색되어 왔다.      


  2. ()경기도교육청 혁신학교 정책의 흐름     


  2009년부터 추진된 경기도의 혁신학교는 과거 ‘작은학교 살리기 운동’으로 대표되는 아래로부터의 학교혁신운동과 최초의 주민직선 진보교육감의 정책이 맞물려 공교육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추구해 왔다. 

  초창기 혁신학교 정책은 혁신학교 지정을 통해 공교육 혁신의 모델을 창출하여 이를 일반화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이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혁신학교를 “혁신학교는 민주적 자치공동체와 전문적 학습공동체에 의한 창의지성교육)을 실현하는 공교육 혁신의 모델학교”로 규정하였다(경기도교육청 2012). 그래서 이 당시에 소위 ‘모범적 혁신학교’라 불릴 만한 학교들이 주로 열악한 지역의 학교, 신설학교 등을 중심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학교들에서 구현된 수많은 담론과 실천들이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들 학교가 이른바 ‘파일럿 스쿨(등대학교)’ 역할을 하며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다.

  2014년부터는 ‘혁신학교 일반화’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이 당시 경기도교육청은 혁신학교를 “민주적 학교운영 체제를 기반으로 윤리적 생활공동체와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형성하고 창의적 교육과정을 운영하여 학생들이 삶의 역량을 기르도록 하는 학교”로 정의내리고 있다. 이는 ‘공교육 모델’을 제기하고자 했던 1기의 정책을 넘어 ‘학교혁신 일반화’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고, 그 중심에 ‘전문적 학습공동체’와 ‘혁신공감학교’ 정책이 있었다. ‘전문적 학습공동체’를 통해 학교혁신의 동력을 만들고자 했고, ‘혁신공감학교’를 통해 ‘모든 학교를 혁신학교로’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공교육의 새로운 모델 창출’과 ‘혁신학교 일반화’라는 정책은 그 자체로 상당한 딜레마를 태생적으로 내포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무늬만 혁신학교’ 담론은 이러한 딜레마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다. 이는 혁신학교 정책의 오류라기보다는 ‘낡은 질서를 새로운 질서로 대체하는 가운데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순’으로 보아야 하며, 모든 사물의 변화와 발전은 이러한 ‘모순’을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이와 관련해 김성천(2018)은 혁신학교 정책의 딜레마를 ‘제도화의 딜레마: 운동문법 vs 정책문법’, ‘성과 설정의 딜레마: 학업성취도 vs 미래형학력’, ‘추진 전략의 딜레마: 양적 확산 vs 질적 심화’, ‘정책 목표의 딜레마: 공교육 정상화 vs 미래학교 모델 제시’, ‘정책 모형의 딜레마: 동형화 vs 이형화’, ‘정책 계승의 딜레마: 단절성 vs 지속가능성’ 등의 여섯 가지로 정리하였다. 이 중 여기서 논의해야 할 쟁점은 ‘공교육 정상화’와 ‘미래학교 모델 제시’와의 관련성이다.

  이 때부터 이른바 혁신학교의 위기가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이 위기는 혁신학교 자체가 쇠퇴했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공교육 정상화’ 이후의 전망이 무엇이냐에 대한 명확한 해답이 부재한 것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경기도교육청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2018년 경부터 이른바 ‘미래교육’과 관련된 논의를 활성화하였다. ‘존엄의 교육론’, ‘미래형 혁신학교’ 등의 개념이 산발적으로 제기되었다. 그 결과 2019년에 발간된 「경기미래학교 청사진」에서는 경기미래학교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그러나 당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제시한 미래학교의 모습은 미래교육의 철학과 비전을 바탕으로 새로운 영감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다양한 분야의 새로운 과제로 추가로 집대성한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이는 기존의 혁신학교 정책에 더하여 또 다른 ‘혁신 피로감’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최근 경기도의 혁신학교 운동이 부딪힌 근본적인 문제는 ‘학력 저하’, ‘무늬만 혁신학교’ 논란이 아닐 것이다. 이미 경기도의 혁신학교들은 현재의 제도적 틀 내에서 해낼 수 있는 혁신의 과제를 충분히 구현해 왔다. 문제는 ‘공교육 정상화’를 넘어 ‘미래교육’이 지향해야 할 철학과 과제가 무엇인지, 그것은 우리의 교육과 사회를 어떻게 바꾸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의 공유가 부족한 것이다.     


  3. 미래교육의 개념 - <OECD Education 2030>을 참고로     


  ‘혁신교육’이나 ‘미래교육’은 공통적으로 ‘기표’가 지시하는 ‘기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신교육’에서 말하는 ‘혁신’은 ‘과거의 낡은 것을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혁신교육’은 ‘(경쟁과 차별로 특징되는) 과거의 낡은 교육’을 바꾸어 ‘공교육이 마땅히 지향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교육(공교육 정상화)’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혁신교육’은 ‘과거의 교육’을 ‘오늘의 교육’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반면 ‘미래교육’은 범박하게 말해 ‘오늘의 교육’을 ‘내일의 교육’으로 바꾸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논의되어 왔던 미래교육의 담론 역시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 동안 논의되어 온 미래교육 담론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미래사회의 변화에 적응시키는 교육’을 강조하는 흐름이다. 이는 특히 ‘4차산업혁명 담론’과 관련이 깊다. 이의 전형적인 논리가 “AI가 인간의 일자리를 대처할 것이니, 이에 대비하여 새로운 직업에 필요한 역량을 갖추어야 한다.”와 같은 담론 구조이다. 사실 그 동안 혁신교육 진영에서 ‘참학력’ 논의의 논거로 활용했던 OECD DeSeCo 프로젝트에서의 ‘핵심역량’ 개념도 이와 관련이 깊다. 이 당시 역량 개념은 다분히 경제주의적 관점에 따른 것으로,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직무능력’에 가까운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미래교육 담론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이는 인간을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시키는 관점이 아니라 일자리 구조에 따라 그때 그때 새로운 역량을 개발해야 하는 수동적 존재로 고정시키는 관점에 가깝다. 더욱이 미래사회에 대한 진단이 달라지면 교육과정 역시 수시로 바꾸어야 하는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1990년대에 강조했던 ICT 교육, 2015 개정교육과정 발표 당시의 코딩 교육, 최근의 AI, DQ 교육 등이 이에 해당한다.

  미래교육에 대한 올바른 관점은 ‘미래사회의 변화에 적응시키는 교육’이 아니라 ‘미래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교육’이어야 한다. 이는 미래사회가 기본적으로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관점, 그리고 이러한 위기(기후위기, 불평등 심화, 인구급감 등)에 맞서 미래사회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주체적 인간을 길러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참고할 만한 국제적 동향이 <OECD Education 2030>과 <UNESCO 2050>이다. 이 중 <OECD Education 2030>은 이미 우리나라의 2022 개정교육과정의 배경이 되는 등 국제적 표준으로 자리잡고 있다.

  OECD는 2015년부터 <OECD Education 2030>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역량 체계를 연구해 왔다. 이 연구 프로젝트는 미래사회가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의 시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OECD는 2018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성인이 되는 2030년을 염두에 두고 이에 기반한 새로운 역량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변화 양상은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구분되는데 첫 번째 변화는 기후위기와 자원 고갈로 인해 이에 대한 긴급한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인공지능의 발달로 인해 전례 없는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이고, 세 번째로는 사회문화적 다양성이 확대되고 불평등이 확대된다는 전망이다. 

  OECD는 이러한 미래사회에 대한 전망 속에서 학생들은 ‘지속가능성’과 ‘좋은 삶(well-being)’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두어야 하며,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새로운 도전과제에 대응하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well-being’은 기존의 교육이 ‘성공’에 강조했던 것에 대한 대안적 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역량을 위한 교육과정의 비전은 ‘아는 것(to know)’과 ‘하는 것(to do)’를 넘어서 ‘존재하는 것(to be)’가 되어야 한다고 보고, 기존의 핵심역량이 ‘지식-기능-태도 및 가치’ 중 주로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면, 새로운 역량 개념은 이 중에서 ‘태도 및 가치’에 초점을 맞우고 있다. 

  <OECD education 2030>에서 가장 강조하고 있는 역량은 ‘변혁적 역량(transformative competence)’으로, 이는 기존 DeSeCo 프로젝트의 ‘핵심 역량’을 대체하는 개념이다. 기존의 ‘핵심 역량’ 개념이 ‘미래사회에 잘 적응하는 능력’에 가깝다면, ‘변혁적 역량’은 ‘미래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꿔가는 능력’으로 볼 수 있다. 변혁적 역량은 크게 보아 두 가지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첫 번째는 개인의 측면에서의 ‘웰빙(well-being)’이고, 두 번째는 사회적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성’이다. 이는 학교 교육과정뿐만 아니라 전 생애에 걸쳐 요구되는 역량으로서, 예견하지 못했던 문제에 부딪혔을 때 이를 타파할 수 있는 고차원적 역량에 해당한다. 

  이러한 ‘변혁적 역량’을 기르기 취한 교수학습의 원리로 가장 중요한 요소가 ‘학습자 주도성(Student Agency)이다. ‘학생 주도성’은 ‘학생이 자신의 삶과 학습을 주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능력’, ‘학생이 책임감을 가지고 참여하는 자율적인 능력’ 등으로 정의할 수 있다. ‘변혁적 역량’은 ‘학생 주도성’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사회를 변혁하고 미래를 열어가는 데에 필요한 지식, 기능, 태도 및 가치’로 정의할 수 있다. 과거의 역량 개념이 대체로 미래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기능으로 규정되었다면, 변혁적 역량은 미래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능력으로 규정되고 있다. 이 개념은 특히 코로나 사태를 맞아 기후위기, 사회양극화, 인구감소 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교육의 개념을 올바로 설정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변혁적 역량’을 중심으로 하는 ‘미래교육’의 개념은 혁신학교 운동이 새롭게 도약하는 데에 많은 시사점을 줄 것이다. 엄밀하게 보아 현재의 혁신학교는 듀이(Dewey)가 말했던 ‘아동 중심적 학교’, ‘인본주의적 학교’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수업의 형태를 바꾸니 학생들이 잠에서 깨어나 수업에 참여하고, 학생들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니 학생들의 자존감과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이 학생들이 혁신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불평등하고 불의한 사회 속에서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게 될지 의문이다.

  그런 점에서 마이클 애플(M. Apple)은 그가 주창한 ‘민주적 학교’에서는 사회정의 교육이 핵심으로 포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말하는 민주적 학교란 모든 사람의 삶의 가치가 평등하게 승인되는 사회구조의 원리가 실현되는 학교이며 그 속에서 학생들이 불평등한 현실을 극복하는 변화의 주체가 되도록 하는 학교를 말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자아존중감을 높이고 학습문화를 개선하는 노력 이상을 추구해야 하며, 학교 밖에서 벌어진 사회적 불평등으로 인한 곤란을 학교 안에서 완화시키는 노력을 할 뿐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그러한 불평등을 초래한 사회적 조건을 변화시킬 역량을 키워줘야 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교육부에도 ‘민주학교’, ‘미래학교’라는 개념을 사용했으나 그 개념은 ‘학교의 민주적 운영’, ‘에듀테크를 활용한 교육’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당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이 함께 추진했던 ‘미래형 혁신학교 사업’(경기도교육청의 ‘학교와 마을이 제안하는 혁신학교’ 사업)이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던 것도 개념적 협소함 때문에 새로운 영감과 상상력을 일으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래교육은 ‘미래사회의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교육’이어야 한다. 미래사회의 위험 요소 가운데 학교교육에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인구수 감소이다. 인구수 감소는 공교육의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일 수 있다. 학생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학생 한명 한명의 가치가 더욱 소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 한명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은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라 절박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제 한명의 엘리트를 키우기 위해 대다수를 포기하는 교육은 사치이다. UNESCO를 비롯하여 전 세계가 ‘모두를 위한 교육’을 표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든 학생의 탁월성을 키우기 위해 한명 한명의 고유한 존엄성을 극대화하는 교육, 특히 특수교육에서 강조하는 ‘개별화 교육’의 원리가 모든 교육에 적용되어야 한다. AI가 교육현장에 활용되어야 한다면 이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데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4. 경기도교육청 29대 교육감직인수위원회 백서 비판     

  지금까지 혁신학교 운동의 교육사적 의미, (구)경기도교육청의 혁신학교 정책의 특징, 미래교육의 개념 정립 등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혁신학교 운동은 미래교육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바탕으로 한 단계 도약해야 할 시점이다.           


<18대 교육감직인수위원회 백서> 106쪽      

  2009년 13개의 혁신학교가 지정된 이후, 2022년 현재 혁신학교는 1,393교(초·중·고 56.92%)이며, 혁신공감학교를 포함할 경우 경기도 내 98% 이상의 학교가 혁신학교로 지정되어 있다. 혁신학교는 기존의 관행에 대한 전면적인 변화를 시도한 것이기 때문에 학교 현장에 쉽게 정착하기 어려웠음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자율적으로 변화를 선택하도록 했기 때문에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학교는 학습공동체로 재구조화되었고 학교교육공동체는 집단지성을 발휘하여 다양한 실천 전략들을 만들어내면서 학교의 변화를 이끌어 냈다. 그러나 혁신학교의 양적 확대를 위해 추진된 혁신학교 일반화 정책은 4대 과제를 중심으로 성공한 혁신학교의 프로그램을 따라 하는 무늬만 혁신학교들이 나타나면서 의미있는 학교혁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학교혁신에 대한 공감 확산을 위해 추진된 혁신공감학교 역시 혁신 철학에 대한 동의나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 의지와 관계없이 예산을 지원하여 혁신을 강제하려 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위에 인용한 교육감직 인수위원회 백서에서도 기존 혁신학교 운동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일리 있는 언급을 하고 있다. 혁신학교 운동은 ‘학교구성원의 자발성’과 ‘집단지성’에 따라 다양한 변화를 이끌어 냈다는 점을 정당하게 지적했고, 혁신학교 양적 확대 과정에서 이른바 ‘무늬만 혁신학교’가 발생하는 등 부작용도 나타났다는 지적도 정당하다.

  그렇다면 경기도교육청은 마땅히 ‘학교구성원의 자발성과 집단지성’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전략, 그리고 ‘양적 확대’를 넘어 미래교육의 관점에 따른 ‘질적 심화’의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수위원회 백서에서 제시한 미래교육의 개념은 1990년대 ICT 교육 수준으로 후퇴한 듯한 인상을 준다.          

<18대 교육감직인수위원회 백서> 107~109쪽      

  경기교육이 추구하는 ‘자율’은 학교가 교육공동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스스로 결정하도록 한다는 의미이다. 이를 위해 교육청은 기존의 정책들을 검토하여 학교의 자율적인 교육활동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재구조화하고,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방적인 정책들과 불필요한 규제들은 과감하게 폐지해야 한다

  그 연장선에서 자율을 기반으로 혁신교육을 재구조화하기 위해 학교운영 다양화를 통한 미래학교 확산, 교육공동체 구성원의 자율성 보장, 학교형태 다양화를 통한 교육수요 충족 등을 제안하며,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향은 다음과 같다. 

  첫째, 혁신학교는 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미래학교 체제(미래역량형기초·기본역량형미래학교준비형)로 전환해야 한다. 미래역량형은 학습에 새로운 기술 및 콘텐츠 활용과 관련된 에듀테크·AI·SW·DQ 영역, 문제 해결력·비판적 사고력·창의성을 키우는 IB 영역, 세계시민으로서의 소양을 키우는 세계시민 영역으로 구분되며, 연구학교가 중심이 된 실행연구를 기반으로 운영한다. 기초·기본역량형은 각 학교에서 우선적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과제를 자율적으로 선정하여 운영한다. 미래학교준비형은 기존의 혁신학교 2~4년 차 운영교로 교육공동체의 희망에 따라 미래역량형 또는 기초·기본역량형으로 전환이 가능하다.     


(미래학교로의 체제 전환혁신학교를 미래학교 체제로 전환

  ※ 2023년 혁신학교 신규지정·재지정 폐지      

(미래학교 운영다양한 미래학교 유형 중에서 선택하여 운영

  - 미래역량형: 학교의 여건을 고려한 영역 선택(에듀테크, AI, SW, DQ, IB, 세계시민교육 등)

  * 연구학교(연구진과 공동연구·성장 지원)·시범학교로 지정 운영, 영역·학교급·연구 수행 역량을 고려한 연구·시범학교 지정

  - 기초·기본역량형: 학력과 인성 신장을 위한 학교의 현안 과제 선정·해결 

  * 미래역량형, 미래학교 준비형이 아닌 학교 대상, 사업선택제로 제시

  - 미래학교준비형: 혁신학교 운영교(2~4년 차)는 미래학교준비형으로 전환

  * 기존 혁신학교 운영교는 학교 요청에 따라 미래역량형, 기초·기본역량형으로 전환 가능     

  첫째, 이 문건은 내부적으로 논리적 모순을 범하고 있다. (구)경기도교육청의 ‘혁신공감학교’를 ‘혁신을 강제한 정책’이라 비판하며 ‘학교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일방적인 정책들과 불필요한 규제들을 과감히 폐지’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이미 학교구성원의 자발적인 신청에 의해 지정ㆍ운영되고 있는 혁신학교를 일률적으로 ‘미래학교’로 전환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더욱이 ‘미래학교’의 과제를 ‘에듀테크, AI, SW, DQ, IB, 세계시민교육 등’으로 한정함으로써 학교혁신의 생명력이라고 볼 수 있는 ‘자율성’과 ‘실험과 상상의 정신’을 억제하고 있다. 특히 ‘IB’의 긍정적인 측면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더라도, IB 교육과정을 국내 학교에 이식한다는 발상 자체가 이 문건에서 비판하고 있는 ‘혁신을 강제한 정책’의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둘째, 미래교육에 대한 개념 자체가 구시대적이고 협소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 백서에서는 특히 디지털교육을 미래교육과 거의 동일시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AI, SW 활용교육을 아무리 강화한다 하더라도 5년만이 지나면 이는 더 이상 ‘미래교육’이 아닌 ‘과거의 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OECD Education 2030> 등의 국제적 흐름에서는 이미 ‘미래교육’을 ‘미래사회를 바람직하게 바꾸는 교육’, ‘변혁적 역량을 기르는 교육’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기후위기의 시대’, ‘인구 절벽의 시대’의 절박한 교육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는 단순히 ‘AI를 활용하는 교육’, ‘SW 기능을 기르는 교육’의 범위를 훨씬 능가하는 원대한 교육철학을 요구한다. 

  이미 2021년 11월에 발표된 <2022 개정교육과정(시안)>에서도 <OECD Education 2030>의 ‘변혁적 역량’ 개념을 수용하여 ‘생태전환교육, 민주시민교육 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인수위원회 백서에서 제시하고 있는 미래학교 개념은 이러한 국내외적 흐름에 한참 뒤쳐진 듯한 인상을 지우기가 어렵다.

  이러한 모순과 개념적 한계가 무엇으로부터 연유되었는지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다만 이것이 ‘정치적 진영 논리’나 ‘성과주의적 강박’, 혹은 ‘특정 집단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기를 바랄 따름이다.     

  5. 다시 광야에서     


  경기도의 혁신학교 운동은 다시 근본적인 성찰의 시기로 들어서고 있다. 혁신학교는 제도적 정책이기 이전에 현장 운동이기도 하다. 사실, 아래로부터의 자발적인 학교개혁 운동이 교육당국의 정책적 지원과 결합해 온 지난 10년의 경험이 교육사적으로 볼 때 매우 이례적인 현상이다. 

  교육청의 정책적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운 이 시기가 어쩌면 혁신학교 운동의 진정성을 입증할 기회일 수도 있다. 이럴 때일수록 혁신학교 주체 간 수평적 네트워크 구축이 절실한 과제이다. 교육청을 매개로 한 네트워크가 오히려 마이클 퓰란(M. Fullan)이 말한 ‘왜곡된 협력(당파적, 편의적, 인위적 협력)’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이를 넘어 학교혁신을 위한 진정한 협력이 교사 간, 학교 간, 주체 간에 탄탄히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학교네트워크 등 교원단체의 역할이 중요하고, 학교 급을 넘나드는 지역별 네트워크의 복원이 시급하다.

  다음으로는 혁신학교의 미래지향적 전망에 대한 공유가 필요하다. ‘답정너’가 사라진 상황, 현장의 실천적 지혜를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전망을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여기에 <OECD Education 2030>이 던진 ‘변혁적 역량’이라는 화두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미래교육은 AI에 대한 환상이나 두려움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전대미문의 팬데믹 사태가 ‘학교의 존재 이유’에 대해 던졌던 근본적 질문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혁신학교 정책 되돌아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