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

by 새파랑

그곳은 방문객 하나 없이 혼자였다. 완전한 고요함이 살갗을 눌렀지만 그 무게는 무겁지 않았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생가였다. 사랑채 처마 밑, 수우재(守愚齋). 현판이 일시에 보였다. 검은 획들이 오래 묵은 볕 속에서 바래 있었고 바람은 그것을 스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리석을 우(愚). 국문학의 대가가 제 몸에 새긴 글자가 어리석음이라니. 한편에 빛바랜 검은 활자들이 수우재의 뜻을 새겨놓고 있었다. 어리석음이 아니었다. 스스로를 낮추고 뒤로 물러서겠다는 서약이자 한 인간의 단단한 결기였다. 얕은 지식의 부끄러움이 뺨으로 뜨겁게 몰렸다. 붉은 뺨을 감추려 청마루에 앉았다. 하늘 대신 짚으로 엮인 지붕의 살이 보였다. 이 고택에는 기왓장이 없다. 여산의 흙냄새를 닮은 볏짚, 농부의 그을린 살갗 같은 억새. 그의 정신과 유해(遺骸)는 이토록 고졸하고 담백한 공간으로 응축되었다. 지식인의 몸을 기어이 땅의 가장 깊은 곳으로 밀어 넣었다. 그의 시조에서 초가 마루 끝에서 들리는 풍음과 책장을 넘기는 손끝의 혈관 소리를 동시에 듣는 듯한 소리가 배어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문득 저 성긴 초가지붕이 빤히 바라보니 염려스러웠다. 주기적인 보수가 없다면 속절없이 허물어질 터, 이 떠나간 시인의 집은 이제 누가 돌보는 것일까. 그것은 이내 잊히고 낡아가는 것들을 향한 나의 오랜 동정심을 건드렸다. 나는 오래된 것을 동경하고 연민하는 경향이 있다. 동료 교사들이 아무리 이북리더기의 신세계를 역설해도 나는 끝내 지갑을 열지 않았다. 다가올 환경에 대한 동정은 없는 건지 여직 종이책을 사 모으는 구시대에 속해 있다. 나는 옛것에는 쉬이 마음을 내주면서도 미래에는 어찌 이리 무정한가.


계속된 부족함이 불러온 부끄러움을 떨치려는 듯 서둘러 마루에서 몸을 일으켰다. 사랑채 맨 끝방 진수당(鎭壽堂)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의 주인이 문헌을 모으고, 원고를 정리하고, 시조를 잠들게 한 방. 그리고 삶을 지킨다는 뜻. 가람은 무엇을 지켰는가. 국어사전을 엮고 조선어학회에 몸담으며, 그는 소멸해 가는 모국어의 방파제가 되었다. 잠식되어 가는 언어의 시체들을 그러모아 온기를 불어넣던 위태로운 영묘(靈廟)이다. 그 시절 지식인의 삶 위로 나의 삶이 겹쳐졌다. 역사를 전공하고 과거의 서사를 교단 위에서 전하는 업을 삼은 나. 포스트모더니즘이 선언한 언어로의 전환을 배웠고, 마르크 블로크와 페르낭 브로델이 펼쳐 보인 아날의 세계를 탐독했다.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를 촉구하던 에드워드 카의 낡은 책 한 권도 기억한다. 그 무렵,‘왜 우리 사회는 아나키스트와 사회주의자에게 관대할 수 없는가’라는 발칙한 제목의 보고서를 썼던 대학 시절의 내가 떠올랐다. 만약 일제강점기였다면, 혹은 서슬 퍼런 군사정권 시절이었다면. 그 폭정과 압제의 시대를 가정해 보았다. 공기의 모든 분자에 감시의 눈이 박혀 있고 뱉어낸 숨결마저 벽에 스며들어 증거가 되는 시대. 단어 하나가 한 사람의 생을 통째로 지워버릴 수 있는 시간 속에서 나의 언어는 어디에 있었을까. 이토록 자유롭게 문장을 짓고 사유를 엮어내는 손가락은 그때도 과연 나의 의지대로 움직였을까. 호시절에 태어남에 그저 감사해야 하는가, 시대의 양심으로 기꺼이 등불이 되었던 이들에게 경외를 바쳐야 하는가. 겁쟁이인 나는 당대의 지식인보다는 차라리 소박한 농부의 삶이 자연사에 이르는 훨씬 안전한 길이었으리라 속으로 중얼거렸다. 독립운동에 투신할 용기는 없지만 그렇다고 친일 매국에 가담할 배짱조차 없는 나의 성정을 나는 잘 안다. 혹 내가 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걸까. 아니. 나는 그저 소멸하지 않기 위해 존재의 부피를 최대한 줄이며 살았으리라. 그러자 진수(鎭壽)의 무게가 다시금 묵직하게 다가왔다. 지금 누리는 평온한 사유의 시간이 얼마나 위태로운 기적 위에서 있는지 새삼 자각한다. 손에는 얼음이 부딪는 차가운 커피가 들려 있고 얼굴을 스치는 가을바람은 더없이 평화롭다. 이 안온함 속에서 펼쳐보는 하찮은 상상력과 미천한 감정이입은 이토록 나를 작아지게도, 역사 속 위인을 거대하게도 만드는구나.


집의 경계, 그 끝에 정자 한 칸이 있었다. 승운정(勝雲亭). 이름처럼 구름이라도 이겨볼까 하며 슬며시 무릎을 접어 자세를 잡아본다. 흉내라도 내면 옛 시인의 시선 끝에 닿을 수 있을까. 곁에는 이백 년 세월을 이고 선 탱자나무가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고 그 앞으로는 네모반듯한 수련 연못이 고요히 누워 있다. 아직은 푸른 잎과 섞여드는 낙엽 사이로 바람이 불어왔다. 온몸으로 스며드는 자연의 숨결, 수련 잎 위, 낙엽 한 장이 가볍게 눕는다. 물은 조용히 원을 키운다. 파문이 가장자리를 넓히자 말도 따라 번졌다. 입 밖으로 나온 적 없는 문장이 문득 찾아왔다.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허물어지는 것을 제때에 돌보는 작은 손길임을. 그러한 기척들이 모여 장고의 시간을 거듭 버텨낼 때, 한 사람의 언어와 정신은 다음 세대의 호흡 속으로 이어져 살아남는다는 것을.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맥박치고 있었다. 역사의 차가운 숨결이 살갗에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