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나 - 무너질 수 없다.
엄마에게 이혼선언을 한 후…
엄마에게 이혼하겠다고 말을 하고 나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슴속은 먹먹함이 솟구쳐 나와 목구멍을 막았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역시 사위가 집에 다른 여자를 들였다는 사실이 못 믿겠다는 어투로 최대한 외도가 아닐 가능성에 대해 질문을 늘어놨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남자였고 좋은 남편이었으며 좋은 사위였다.
내 동생조차 평소에 ‘이 세상 남자들이 다 바람을 피운다 해도 형부는 절대 안 필 사람’이라는 평을 해 왔을 정도이다.
“여사친들이 놀러 왔을 수도 있고 시누이가 놀러 왔을 수도 있잖아.”
“여사친들이 놀러 왔을 수도 있는데, 시누이는 아냐…”
우리는 평소 시댁식구들과의 왕래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일 년에 한두 번.
이것도 신기한 일인데 시부모님은 본가 지역을 잘 벗어나지 않는 분들이다. 외식도 안 하셔서 밖에서 시댁식구들을 만나 외식을 해본 경험이 딱 두 번있을 정도이다.
하나 있는 남편의 여동생 시누는 아직까지도 미혼에 시댁에서 부모님과 같이 살고 있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기 손으로 밥을 해 본 적이 없단다.
그러니 오빠집에 와서 오빠를 위해 음식을 한다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외고, 외국어대 일본어과를 졸업한 남편은 어렸을 때부터 여초 환경에서 자라와 남사친보다 여사친이 더 많았다.
그래.. 여사친이 놀러 왔을 수 도 있지…
예전에 내가 일본이나 한국에 장기간 나가있을 경우, 동창들을 집에 초대해 놀았던 적이 몇 번있다. 이번에도 그런 거였다면 미리 나한테 얘기를 해줬겠지…
그래 뭐.. 이번에는 나한테 뭐가 많이 쌓여서 얘기하기 싫었을 수도.
그렇다고 해도 여사친들이 놀러 와서 왜 침실까지 들어오며 침실 안에 있는 욕실에서 샤워를 하냐고….!
여사친들의 머리카락이라고 보기에는 놀랍게도 한 종류의 머리카락만 나온 걸…
여사친 한 명이 놀러 왔었다고 해도… 거실화장실에서 샤워한 거? 이 역시 이해는 안 가지만 백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 본다.
근데 왜 침실 욕실에서 샤워를 하냐고… 여사친이…
그날 집에서 발견된 모든 정황들과 아내인 나의 촉은 남편의 외도로 결론짓고 있었다.
그 밖에도 엄마는 계속해서 외도가 아닐 가능성에 대한 질문을 했지만 그 질문에 나의 반박은 한쪽만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가 있고, 내가 없는 동안 이 집에 들였다.’
“엄마… 나 어떡하지? ”
엄마도 이혼의 경험이 없는지라 이런 상황이 당황스러운 건 마찬가지.
“한국이었으면 당장 같이 이혼변호사라도 찾아갈 텐데…
너가 그래도 한 번쯤은 용서하고 같이 살아야겠다 싶으면 집에 들어왔을 때 물어봐야지… 이게 뭐냐 그러면서…
근데 이혼해야겠다 싶으면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모른 척해야 하고…
엄마는 너가 이혼한다고 해도 괜찮고 용서하고 다시 같이 산다고 해도 괜찮아.”
엄마의 마지막 말에 나는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한다고 해도 엄마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안도감이 나에게 용기를 주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상황에서 엄마는 어떻게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확실한 증거를 찾을 때까지 모른 척해야 한다는 생각을 못 했다.
내 주변 얘기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보통 남편이 바람이던 딴 짓거리던 들키면 아내가 세모눈을 뜨고 추궁하지 않나…
엄마 덕에 적어도 난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아내의 모습은 면했다.
국제결혼에 대해 탐탁지 않았던 엄마는 온전히 내가 한 선택에 대한 존중감으로 내 결혼을 축복해 주고 지지해 줬는데…
그래서 더 예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결국 끝을 이렇게 보여주다니… 엄마에 대한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다음으로 내 하나뿐인 여동생 연희에게 미안함이 몰려왔다.
지금은 아버지도 돌아가셔서 안 계신 데다 국제결혼했다가 이혼한 언니의 존재가 혹여나 여동생 혼삿길을 막을까 봐…
내 이혼으로 내가 아픈 건 괜찮은데 이렇게 내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고 폐를 끼치게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미안하고 슬프고 용서할 수 없었다.
소파에서 발견된 여자 머리카락을 봤을 때 나는 내가 내자신이 놀랍도록 심장이 차가워지고 오히려 신께 감사한 마음도 들었던 것이다.
사랑하고 믿었던 남편에게서 느끼는 배신감과 아픔보다 ‘신이 이렇게 날 돕는구나… 이렇게 한치의 미련도 없이 명확하게 대만을 뜰 명분을 주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대만에서의 생활이 힘들었고 결혼 생활이 힘들었나 보다. 이제부터 나는 나의 결혼생활을 끝을 내는 과정을 달려가야 하는데 미련이 한 톨 없었다.
시험관 시술이 실패해서 임신을 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임신한 채로 이 사실을 맞닥뜨렸다면.. 정말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정말 아이를 원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너무나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증거… 증거를 찾아야 한다…
이 날도 그는 밤늦게 들어와 게스트룸으로 들어갔다.
남편이 술을 많이 먹고 들어온 날은 게스트룸에서 자기로 한 것이 우리의 룰인데, 그 옆 방 침실에 있는 나는 한숨도 잘 수가 없었기에 그의 인기척이 너무나 괴로웠다.
그리고 이 침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우리 침실의 침대가 께름칙했다.
물론 집에 오자마자 침대 커버와 이불을 새로 다 교체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름이 끼쳐 도저히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남편이 이 침대에서 다른 여자와 뒹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역질이 났다.
그렇다고 내가 게스트룸에서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안방 침실은 차지하고 싶었다.
게다가 남편은 내가 외도를 눈치챘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데 갑자기 내가 게스트룸을 쓴다? 부자연스럽다.
이때부터 난 한동안 수면장애와 식이장애를 겪었다.
먹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잘 먹었던 나는 식욕이란 것이 없어져 버렸다. 목구멍이 아예 닫혀서 물조차 먹기가 힘들었다.
잠은 당연히 안 온다. 그만큼 내 두뇌는 비상사태 위기 풀가동이었던 같다.
앞으로 이 일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하고 막막한지라…
정말 먹지도 못하겠고 잠도 잘 수가 없었다.
이 정말 싫은 나라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하나만 보고 대만행을 결정한 나였는데…
이제는 내 옆에 ‘그’도 없다. 진짜 혼자가 되었다는 생각은 정말 외롭고 슬프고 미칠 노릇이었다.
그렇다고 힘없이 누워서 울면서 처량하게 있고 싶지는 않았다.
먹지도 자지도 못해 너무나 괴로웠지만 계속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했다.
일단 나에게 유리한 증거를 다 모을 때까지 남편의 외도는 모른척하기.
그리고 이 수면장애가 식이장애를 하루빨리 극복하기.
몸과 마음이 온전히 건강하게 대만을 떠나서 ‘엄마’에게 건강한 딸로 돌아갈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