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읍내를 거쳐 배를 타고 한참 이동하면 ‘서도’라는 외딴섬이 있다. 나는 그 섬으로 아버지 따라 남동생과 하숙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서도 지서장으로 발령받으시면서, 매일 늦은 시간에 귀가하신다. 아버지는 집에 언제 들어오셨는지 알 수 없으나, 아침 일찍 눈을 뜨면 옆에 누워 계신다. 아버지가 일어나실 무렵에는 까칠한 수염으로 내 얼굴을 비비신다. 술 냄새가 진동을 한다. 나는 싫다는 표정으로 “따갑다”고 말하면서 마음속에는 행복이 느껴진다. 그러는 나는 친구가 없다. 친구를 사귈 만하면 아버지를 따라 또 이사를 가야하기 때문이다. “발령을 왜 이리 자주 하시는지!”
아직 국민학교를 입학하지 않은 나는, 어린 남동생을 돌봐주고 있다. 가끔 하숙집 주인아주머니가 동생을 보살펴 주실 때는 밖에 나가 뛰어놀기도 한다. 마을 아이들이 모여 있으면 옆에 어슬렁거리기만 해도 자연스레 친구가 되어 버린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놀기 좋은 곳은 그래도 넓은 교회 앞마당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어느덧 어두컴컴해진다.
괴물의 등장
섬마을에는 가끔 이상하게 생긴 괴물이 등장한다. 괴물은 덩치가 산만한 거인이며 피부색이 하얗다. 그리고 미사일처럼 코도 뾰족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언을 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괴물 뒤를 따라다니면 우리를 향해 달콤한 초콜릿을 건네주기도 한다. 처음 먹어본 이 맛은 괴물을 따라다니게 유혹한다. 우리는 뒤에서 골려 먹고 놀려도 ‘화’를 내지 않는다. 아마도 괴물이 우리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이 괴물은 섬마을 사람들의 아픈 상처를 치료해준다. 이를 바라본 나는 착한 괴물인 것을 느낌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어둠이 오면 바다 한가운데 홀로 서 있는 큰 배에서 불빛이 비친다. 그 배는 괴물이 거주하고 날이 밝아지면 섬마을 육지로 상륙한다.
남동생의 대형사고
하루는 어린 남동생이 대형 사고를 쳤다. 동생이 하숙집 마루에 대변을 보았다. 하숙집 아주머니는 그날따라 나에게 언성을 높였다. 나는 더럽지만, 동생 대변을 치웠다. 너무 서글펐다. 아버지는 항상 ‘비상근무’라고 하시며 늦게 들어오신다. ‘비상근무’는 술 드시는 날인 것 같다. 그런데 매일 ‘비상근무’시다. 그날은 왠지 서글퍼 멀리 바다에서 비치는 불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보고 싶었다. 엄마는 누나랑 서울에 사신다. 누나는 국민학교에 다닌다. 곧 다가올 겨울방학이면 엄마랑 누나가 섬마을에 오리라 믿고 고대한다.
한겨울의 크리스마스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는 크리스마스의 어두운 밤이다. 잠이 들면 루돌프 사슴이 썰매를 몰고 온 뒤, 굴뚝으로 내려온다는 산타할아버지를 만나기로 다짐했다. 그러나 잠든 기억조차 없이 꿈에서 깨었다. 내 옆에는 리듬에 맞춰 아버지 코골이 알람 소리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머리맡에 작은 선물이 있다. 그 순간 착한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고 가신다는 산타할아버지를 상상하며, 만나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했다. 나는 아버지 가슴을 흔들며 말했다.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놓고 가신 거예요?”라고…….아버지는 눈을 뜨지 않은 채 “그래”라는 답변만 언급하시고 주무신다. 산타할아버지를 만날 기회는 1년에 단 한 번…….
그 해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흘러갔다.
가족들의 재회
서울에서 엄마랑 누나가 섬마을 부둣가에서 걸어오신다. 누나는 빨간 겨울 털모자를 썼는데 모자에 달린 털 방울이 누나 엉덩이보다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다. 저렇게 길게 늘어진 털 방울은 난생처음 본다. 우리 다섯 식구는 오랜만에 하숙집에서 한자리에 모였다. 나는 겨울이 지나면 학교 입학을 앞두고 섬마을을 떠나야만 했다. 그동안 정들었던 마을 친구들과 괴물, 아버지와 같이 근무하신 경찰관 아저씨들…….내가 뛰어놀던 넓은 교회 앞마당…….그렇지만 하숙집 주인아주머니는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남동생 대변을 내가 손수 치웠는데, 동생한테는 야단치지 않고, 나한테는 얼마나 야단을 치셨던지…….세상은 이처럼 공평하지 않았다. 산타할아버지는 루돌프가 있으니 썰매 타고 오시면 서울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점점 섬마을에서 멀어져만 갔다.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는 섬마을
서울의 한 국민학교에 입학했다. 학교를 마치고 정문 앞에 나서면 노상에서 장사하시는 달고나 아저씨를 거쳐 집에 가는 길목에는 아이스케키 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나절이 지나 이불 속에 누워있으면 “찹쌀떡”, “메밀묵” 소리도 귀에 솔깃하다. 이처럼 서울의 도심 속은 주야로 먹을 것이 풍부했다. 그렇다고 먹지 못한 건 아니다. 단지 먹어도 배고프고, 또 먹고 싶고, 원하는 만큼 배를 채운 기억은 없다. 그러다 보니 나에게는 꿈이 하나 생겼다. 어른이 되면 아이스케키 사장이 꼭 되겠다고…….
세월은 물레방아처럼 수십 바퀴를 돌았다. 나는 일찌감치 성인으로 자리매김했는데, 코골이의 달인 아버지는 하늘나라로 급하게 떠나셨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빠’라고 불렀던 기억이 없다. ‘엄마’는 엄마라는 호칭을 사용하면서 왜! ‘아빠’를 아빠라고 언급하지 못했을까…….왠지 엄하시며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권위에 누구도 도전장을 내밀 수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와 나를 지목해 “고양이와 쥐”로 비유하곤 했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보고 싶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내 아버지가 너무 생각난다. 그립다 못한 나머지 나는 머나먼 서도로 발길을 돌렸다.
어려서 그리 멀었던 섬마을 ‘서도’는 강화군 선착장에서 40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월의 변천사는 피할 수 없지만, 내 기억 속의 섬마을은 지우개로 지워지지 않았다. ‘서도’를 지금은 서도면 ‘주문도’라고 부르고 있었다. 주문도를 걷다 보니 초행길과 같이 느껴졌다. 어려서 놀던 교회 앞마당을 되새기며 교회를 찾았다. 그런데 내가 뛰어놀던 교회가 아닌 신축건물이었다. 계단을 내려가니 아래에 나무 종탑의 십자가와 옛 예배당이 존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어려서 뛰어놀던 추억이 되살아난 교회였다. 나의 어린 과거를 회상하며, 지금도 가끔 섬마을을 찾는다.
나의 추억 속에 담긴 스케치는 여기까지 그려본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