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가 자리한 강화도는 북한과 접경지역입니다. 그러다 보니 군인들이 많이 상주합니다. 읍내에서 해병대를 상대로 수선집을 운영하시는 70대 아저씨는 아주머니를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셨습니다. 그래서인지 운영하시던 수선집 문을 닫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그 자리에서 함께하시던 금실 좋은 부부셨는데…….바늘과 실 중 어느 것 하나만 없어도 그 가치는 쓸모가 없듯, 아저씨도 아주머니가 그와 같은 존재였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아저씨는 슬하에 시집간 딸, 둘이 서울에 거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집가서 자주 오지 못해도 아주머니가 떠나신 뒤, 주말이 되면 찾아온다고 하십니다. 걱정된 나머지 빈자리를 딸들이 채워주고 싶은 마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평일에는 아저씨가 저에게 연락합니다. 경상도 억양의 사투리로 “뭐 하니?” “나와라, 맛있는 것 먹으러 가자…….”나는 거부할 수 없어 아저씨를 만나곤 했습니다. 그리고 기분 전환으로 드라이브하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갑니다. 아저씨가 아주머니랑 수선집을 운영하실 때는 이같이 식사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그런 것을 고려하면 왠지 허전하고 외로웠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이렇게 자주 뵈었던 아저씨가 며칠 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아저씨를 만난 순간 얼굴이 변한 듯했습니다. 눈썹에 문신이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눈썹이 없으시긴 했지만 그렇다고 문신까지 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저씨 눈썹 문신 하셨어요?”라고 질문하자 “응, 그래”라며 점잖게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눈썹 문신이 이마 쪽으로 올라가 있는 것입니다.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시시덕거리며 “근데, 눈썹이 왜! 이마 쪽으로 올라가 있어요?”라고 여쭤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저씨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거울을 보셨습니다. 그러면서 “내 이년을…….”하시며 이를 악무는 것입니다. 아저씨는 눈썹 문신이 이마 위로 올라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날, 아저씨는 이마에 대일밴드를 길게 붙이시고 나오셨습니다. 눈썹 문신을 가린다고 가리시고 나온 듯합니다. 마치 개그를 연상케 했습니다. 물론 아저씨는 웃기시려고 대일밴드를 붙이신 것은 아니지만, 이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러나 표정은 그리 밝지 않고 수심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면서 “내일이면 딸들과 사위들이 온다.”라고 나직하게 언급하셨습니다. 눈썹 문신 걱정을 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다고 대일밴드를 붙여 놓을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게 고민에 빠졌습니다.
월요일 오전, 공원에서 만난 아저씨는 이마에 대일밴드를 길게 붙이시고 “벤치에 앉아 있어라.” 하시면서 혼자 뚜벅뚜벅 힘찬 구두 소리를 내며 인근 미용실로 향했습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고성이 들리는데 “이년아,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돈 내놔…….”아저씨 목소리입니다. 미용사는 비명을 지르고 헐레벌떡 미용실에서 뛰쳐나오더니, 주머니에서 십만 원을 꺼내 아저씨에게 건넸습니다. 아저씨는 딸들이 집에 찾아왔을 때, 아무리 얼굴을 돌리고 이마를 감춰도 들켜버렸다면서 딸들이 문신 제거 시술을 하라며 권유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사위들이 보는 앞에서 체면이 구겨졌다고 하소연합니다.
다음날 아저씨는 딸들이 거주하는 서울 집에 머무시면서 눈썹 문신 제거 시술을 한다고 떠나셨습니다. 이 대화가 아저씨와 마지막 소통인지 모르고 우린 이렇게 헤어졌습니다.
나는 그 뒤로 서울의 직장을 다니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두절됐지만 그래도 부모님이 계시는 강화도는 가끔 찾습니다. 어느 날 읍내를 지나다 오래전 아저씨의 수선집 옆에서 장사하시던 분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나는 혹시나 해서 “전에 장사하셨을 때 옆집에 수선집 하시던 아저씨, 강화에서 보셨어요?”라며 소식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아! 그 아저씨? 딸네 집에서 좀 살다가 얼마 전에 돌아가셨어…….”라고 언급하셨습니다. 나는 놀란 목소리로 “그래요? 좋은 분이셨는데…….”
생각이 잠기면서 허무함이 밀려왔습니다. 나는 사람들 눈썹을 보면 기억 속에 남아있는 아저씨 모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누구나 한번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경험을 겪어야 하지만 최소한 아저씨는 웃음을 선물하시고 떠나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아주머니랑 행복하시길 기원하며 아저씨를 다시 한번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