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기록#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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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코로나19가 국내 감염으로 이어지는 순간에도 이전에 있었던 조류독감이나 메르스처럼 금방 지나가서 크게 대수롭지 않게 넘기며 지내곤 했다. 그러나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국내 확진자는 현재 2만 명을 넘어섰고, 식당과 학원은 문을 닫았으며 이제는 집을 나설 때 휴대폰을 챙기듯 마스크를 챙기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며 애써 외면했던 나날들이 길어질수록 내 예상보다 빠르게 내 삶 속에 침투하고 있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더 이상 기본급을 제공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협상의 여지없이 일방적인 통보였다. 코로나의 영향이 나한테까지 미치기 시작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 하지만 현재 내 삶을 유지하는 필수 비용이 없어졌으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밖에 없었다.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의 대부분을 내려놓고 살 것인지 아니면 포기하지 않고 손에 꼭 쥐고 가던지 말이다.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에 급하게 현재 하는 일과 병행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이것저것 알아보며 찾아보게 되었던 일이 야간 물류센터였다. 저녁이 있는 삶과 잠을 포기하면 지금 상황을 유지할 수 있었기에 많은 것을 내려놓지 않으려면 이것밖에 선택지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처음 몇 주 동안에는 애써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 잠깐 일하는 것이고 상황이 나아지면 언제든지 예전과 같은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깊은 곳에 멍이 드는 듯했다. 어쩌면 잠깐이 아니라 앞으로 꽤 오랜 시간 잠을 줄여가며 살아야 하고 예전 같은 삶은 이제 절대 돌아올 수 없다는 느낌이 들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캄캄한 터널 어딘가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져 무작정 걸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하고 밤에 혼자 산책을 하며 노래를 듣거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소소한 행복들이 모두 없어지고 밤에 잠을 줄여가며 일하는 것이 과연 나를 위한 것이 맞는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되는 줄 알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먹었던 저녁시간에 친구들에게 조금 더 살갑게 대해주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저녁 늦게까지 카페에 앉아 책을 보고 글을 쓰는 일들에 더 소중히 대할 수 있었을 텐데 자책하며 지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시간이 흐르고 어느 정도 새로운 일도 익숙해지고 생활패턴도 비슷해질 무렵 새벽과 아침이 만나는 시간의 퇴근길에 평소처럼 시동을 걸고 내비를 켜려고 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라디오에서 윤종신의 오르막길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원래 알고 있던 노래였고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노래였는데 그 날 유독 그 노래를 만나서 그런지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이유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차를 잠시 정차해두고 한동안 말없이 펑펑 울었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나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을 했다. 정말 이렇게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는 것은 나에게 오히려 기회는 아니었을까. 평소에 정말 많이 당연하게 느꼈던 많은 것들이 소중하게 다가오게 되었고, 변하지 않고 머무르려던 습관에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메시지를 몸소 경험하게 되었으니 삶을 한번 되돌아보라는 뜻이 아닐까 싶다. 그러다 정말 지쳐 쓰러져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 찾아오더라도 어쩌면 이제는 조금 더 덤덤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살고 있는 집이 작아지거나 아끼던 차를 처분해도, 급여가 확 줄어들거나 몸이 어딘가 갑자기 아프더라도 이제 그걸로 인해서 스트레스를 받고 슬퍼하기보다는 그 상황에서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묵묵하게 하고 있지 않을까. 넘어져서 울고 있는 나를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일어날 수 있지만 발을 내디뎌 앞으로 걸어 나아갈 수 있는 것은 본인 뿐이니까.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생긴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