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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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에 이사를 가게 되었다. 이사를 간다는 것이 단순히 집을 옮기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큰돈이 오가며 세금 문제가 발생하고, 날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평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운동을 하려고 마음먹었다가 이사 가서 해야지 미루고, 책을 읽어야지 하면서도 일단 급한일부터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또 나중으로 미루다가 어느새 일상의 대부분이 멈춰있다.
물론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볼 수도 있다. 평소보다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니 뇌가 더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다른 행동들에 제한을 두는 무의식적인 생각의 흐름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문제는 그 무의식적인 선택들이 내 생각이나 행동에 영향을 꽤나 많이 주고 있다. 요리를 만들어서 밥을 먹을까 하다가 라면을 끓인다던지, 빨래를 수건이 없어서 도저히 안될 때까지 버티다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극단적인 스트레스 관리로 인해서 이사와 관련된 것들 이외에는 관심을 갖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았다.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도 내 신경은 온통 이사 가는 일정을 생각하느라 집중할 수 없었고, 먼저 안부를 묻지도 않고 연락을 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 정도로 스트레스가 굉장히 심할 수밖에 없는 게 이사를 준비하느라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큰돈이 오고 가고 감당하기 벅찬 금액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에 중간에 잘못되면 그럴 수 있다며 넘어갈 정도의 일이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관계, 행동, 생각까지 미루는 습관이 스며들어서 어느새 그 모습들이 원래의 내 모습인가 싶을 정도로 미루는 선택들이 내 삶에서 익숙하질 무렵에 우연히 예능을 보다가 아차 싶었다. 예비역 군인들이 나와서 부대의 명예를 걸고 최강을 겨루는 강철부대라는 예능을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에 보다가 문득 나의 군인이었던 시절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나 역시도 뛰다가 지쳐서 숨이 터질듯한 상황에서 한걸음 더 뛰었고, 40kg가 넘는 군장을 8시간 잠도 안 자고 40km 넘는 거리를 행군하기도 했다.
TV에 나오는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바뀌려는 의지조차 미뤄뒀던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는 지금 모습에 최선을 다해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더 발전하고 나아가는 모습이 아닌 지금 이대로의 모습도 충분하다며 애써 위로하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여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충분히 벅차다고 내 안의 벽을 세워두고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선택한 무기력증에 잠식되어 내면을 갉아먹고 있는 나를 구원해줄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과거 그 시절 포기를 모르던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있던 나였다.
미루는 습관에 빠져서 많은 것들을 놓치고 있던 지금까지의 나를 구하고자 마음을 먹고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기로 정했다.
첫 번째로 쉽게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해낼 수 있을까 생각이 들면 일단 결과가 어찌 되었든 시도해보고 부딪혀 보려고 한다. 포기하는 순간 그동안 모든 노력과 시간이 그 자리에서 멈추기에 이번에 포기하지 않으면 1년 뒤, 5년 뒤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그만두려는 그 모든 것들에 있어서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20대 어느 날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22km 하프마라톤을 완주한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두 번째로 스스로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판단해서 내가 해낼 수 없는 것이라고 한계를 정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어렵고 복잡해 보이는 일들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해낼 수 있는 작은 일들이 있다. 20kg을 빼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힘들어 보이지만 오늘 저녁에 기름진 음식 대신 건강한 음식으로 한 끼를 채우는 식으로 말이다. 오늘 당장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없다. 그저 하루하루 해낼 수 있는 것들의 선택이 미래의 내 모습을 정하기에 묵묵히 할 수 있는 작은 것들부터 해볼까 한다.
마지막으로 먼 훗날에 내가 또 힘들고 지쳐서 쉽게 포기하고 해야 하는 것들을 미루는 순간이 왔을 때 오늘을 떠올리며 다시 나아갈 수 있도록 지금 해야 하고 해내고 싶은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해낼 것이다. 과거 군인이었던 내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많은 것들을 해냈듯이 미래의 내가 서른 즈음을 떠올려 봤을 때 결과물이 어찌 되었든 도전하고 부딪히고 피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테니까.
해야 하는 이유를 찾기 전에 행동하고 나서 의미를 만들어야겠다. 과거의 내가 그랬듯이 10년 후 나에게 부끄럽지 않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지 말자. 시간이 지나면 기억조차 나지 않을 괜한 자존심 때문에 더 나아가지 못하는 일은 이제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누군가의 인정에서 오는 만족감이 아닌 예전의 나보다 더 나아지고 있다는 성취감으로 삶을 채워나가고 싶다.
"그날 새벽, 나는 나에게 선언했다. 세상 사람들이 미쳤다고 말하더라도 신경 쓰지 말자.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거다. 그곳에 도달할 때까지는 멈추는 것을 생각하지도 말자. 그리고 그것이 어디인지에 관해서도 깊이 생각하지 말자. 어떤 일이 닥치더라도 멈추지 말자." -필 나이트-
"just do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