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강연가인 멜 로빈스가 지난해 발표한 <렛뎀 이론>을 몇 주째 읽고 있다. 렛뎀(그러라고 해)가 이론이라니 다소 과한 제목이다 싶다. 몇 년 전 나온 <신경 끄기의 기술>이나 <아주 작은 습관의 힘>처럼 렛뎀 기술이나 렛뎀 습관 정도였다면 좋았을 것 같다. 저자의 전작을 찾아보니 제목에 대한 의문이 금방 풀린다. 그녀를 대중강연계의 스타로 만들어 준 <the Five-Second Rule(5초의 법칙)>과 <the High5 Habit(굿모닝 습관)>에서 이미 기술, 법칙, 습관 등을 다 써버린 것이다. 렛뎀이 이론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였을 것 같다. 전작보다 높은 차원의 논의를 원하지 않았겠나. 또한 제목은 순전히 저자와 출판사의 영역이고, 대중들이 이에 반응했다면 이미 성공한 네이밍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렛뎀'을 '냅둬'로 번역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글자 숫자도 같고 약간의 위트도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 절반 정도를 읽고 있는 지금은 체념이나 포기 같은 부정적 함축이 들어간 '내버려 둬' 보다는 '그러라고 해'와 같은 번역이 더 적절한 것 같다. 상대방의 결정이나 행동에 대해 다소간의 인정과 여유로운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읽는 뉘앙스에 따라 다른 느낌이 들 수도 있겠다.
렛뎀 이론은 나 자신을 제외한 세상 일은 통제할 수 없고, 세상 일은 자주 불공평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우리는 크고 작은 인생의 사건들에 무너지고 무력감을 느낀다. 저자가 말하는 것은 이런 인생의 진리를 단순히 받아들이라는 것이 아니다. 렛뎀 이론의 핵심은 모든 일을 통제할 수는 없지만 그 일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같은 사건에 대한 수많은 대응방식이 존재한다. 바로 이것이 렛뎀과 렛미의 교차점이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혹은 내 의사에 반해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나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결국 이것은 외부 사건에 삶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는 인생의 필살기가 된다.
렛뎀은 나뿐만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는 방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불안한 현재, 불확실한 미래가 야기할 사건들에 쉽게 두려움을 느낀다. 내 문제 뿐만 아니라 나와 동일시하는 자녀와 가족, 가까운 친구들의 문제에는 더욱 예민해진다. 그냥 내버려둘 수 없는 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이다. 그들이 상처받고 실패하는 것을 지켜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참견하고, 개입한다.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고 불필요한 우려를 기어이 표하고 만다. 신념을 가지고 선을 넘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 소중한 관계들을 잃기도 한다. 렛뎀 이론을 통해 배운 것 하나는 내가 모든 일을 해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모든 대화에 참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꼭 함께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내가 그러하듯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역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그들의 답을 찾아낼 것이다. 그러니 Let them.
다 아는 얘기, 뻔한 자기계발서의 미덕은 환기 효과에 있는 것 같다. 매일 아침 창문을 열고 환기하는 것처럼 우리에게는 고인 기운을 순환시켜줄 긍정적 생각과 자극들이 필요하다. 그것이 매번 궁극의 깨달음이나 대단한 가르침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제 누군가에게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좀처럼 풀리지 않는 상황에 무기력하게 쓰러져있는 자신을 일으켜줄 수 있는 언니의 지혜 정도면 때로는 충분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