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절창」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글의 마지막에 등장인물의 나이와 외모(?) 등 작품의 번외 사항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 정리돼 있습니다.
절창(切創). 칼이나 유리 조각 같은 예리한 날에 베인 상처라는 뜻이다. ‘아가씨’는 타인의 상처에 접촉해 기억을 읽을 수 있다. 불법 사업장을 운영하는 ‘문오언’은 아가씨를 저택에 가두고 대상에게 상처를 낸 뒤 기억을 읽게 한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을 관찰하는(혹은 읽는) ‘독서 교사’가 있다.
「절창」은 이제는 대중화된 ‘사이코메트리(대상을 읽는 초능력)’ 소재에 절창이라는 제약을 둠으로써 서사의 독창성을 획득한다. 이를 통해 타인의 마음을 읽는 일은 살을 찢어내고 그 안을 파고들어야 할 만큼 난해한 일임을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아가씨가 능력을 사용할수록 정확도가 떨어지는 설정이 그렇다. 종래에는 상처의 깊이와 정확도가 정비례하게 된다. 언젠가는 그마저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타인을 온전히 읽을 수 있다는 건 자만이다. 비행을 자신하며 밀랍 날개를 달고 하늘로 솟구쳤다가 추락한 이카로스의 망상과 다르지 않다.
사람의 마음이든 책이든 무언가를 읽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오독을 수반한다. 독자마다 독해력이 다른 데다 가치관이나 상황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무리 명징한 암시가 있어도 작가의 의도에 다다르지 못하고 언저리나, 혹은 아예 반대편으로 미끄러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 영원한 암실 속에서 서로를 듣고 헤아린다는 착각과 함께 살아가는 유기체적 현상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63p).
어떤 읽는 행위에는 대상에 대한 애정이 요구된다. 문오언은 아가씨를 소중히 대하면서도 그녀의 일상을 통제하고 잔인한 일을 시킨다. 아가씨는 한때 문오언에게 애정 비슷한 마음을 품을 수 있다는 기대를 걸어봤지만, 그의 냉정함에 마음의 문을 닫는다.
문오언은 아가씨에게 자신의 마음을 읽어 달라 애원한다. 자신이 저지른 행위로 자신을 오독하지 말아 달라는 일종의 고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아가씨는 끝내 허락하지 않다 문오언이 생을 마감할 때 다급히 그를 안음으로써 의도치 않게 그의 상처와 접촉하게 된다.
‘세상에는 어떤 이야기도 부여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286p)’의 절절한 사랑(그렇다고 긍정할 수는 없는)이 본심이었을 확률이 높겠으나, 문오언도 아가씨도 언급하지 않은 내용을 독자가 아무리 판단한들 그것은 결국 또 하나의 오독일 것이다.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 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344p).
우리는 오독 당함으로써 자신의 마음에 절창을 입기도, 오독함으로써 타인의 마음에 절창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읽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망망대해와 같은 세상에서 나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받고 싶고, 같은 욕구를 가진 타인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 너의 눈앞에 있는 한 권의 소설은 그 무의미의 운명에 어떻게든 의미 비슷한 걸 부여해 보려고 죽으려던 예술가들의 오랜 싸움과 필연적인 패배의 흔적이야(303p).
그 무의미한 운명 속에서 우리는 손을 베여가면서도 오늘도 용기를 내어 타인이라는 책장을 넘긴다.
Q. 문오언의 이름.
오독에 대한 내용이다 보니 ‘그르칠 오(誤)’에 ‘말씀 언(言)’ 자를 쓸 줄 알았는데 ‘까마귀 오(烏)’에 ‘어조사 언(焉)’ 자를 쓴다고 한다.
Q. 등장인물들의 나이.
아가씨는 스물예닐곱 살 정도, 문오언은 서른여섯에서 일곱 그즈음이라고 한다.
Q. 문오언은 외모.
외모 묘사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콰지모도’ 사례처럼 작품의 이해에 외모가 중요한 역할을 미칠 때 이뤄진다고 한다. 따로 묘사가 들어가지 않았다면 대충 괜찮게 생겼다고 보면 된다고.
Q. 최애 등장인물.
주요 화자인 독서 교사가 소설 전체 메시지를 정리하고 개괄하는 사람이다 보니 마음이 가는 편이라고 한다. 독서 교사의 일부 에피소드는 본인의 경험담이다. 뛰어난 운동 신경이나 과감한 성격은 본인이 닮고 싶은 점이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