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추함과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음각(추함)을 깊게 파야 양각(아름다움)이 도드라지기 때문이다. '명규'는 눈이 보이지 않음에도 아름다운 도장을 만드는 장인으로 성공한 인물이다. 다큐멘터리 PD '수진'은 그를 인터뷰한다. 장인인데 손이 왜 거칠지 않은지, 홀로 아들 '동환'을 키우면서 고난은 없었는지 집요하게 캐묻는다. 영화는 시작부터 명규의 추함을 깊게 팜으로써 아름다움을 집요하게 부각시키려 한다.
추함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건, 동환을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실종된 '영희'의 시신이 발견되면서다. 동환은 영희가 살해된 것 같다는 경찰의 전언을 듣고 혼란에 빠진다. 영정 사진도 없는 영희의 장례식장에서 동환은 왕래가 없었던 외가 친척에게 영희의 사진이 있는지 묻는다. 황망하게도 "영희는 못생겨서 사진 찍는 거 싫어했어"라는 답변이 돌아온다. 영희와 함께 피복공장에서 일했던 동료는 영희의 별명이 '똥걸레'였다며 못생기고 굼떠 조롱받는 직원이었다고 배설하듯 증언한다.
영희는 보복이 뒤따를 걸 알면서도 사장의 악행을 고발할 정도로 의로운 사람이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추하다는 이유로 함부로 이야기해도 되는 대상이 된다. 수진도 "얼마나 못생겼길래 그런 말이 나오냐"며 무례한 답변을 유도한다. 추함은 죽어서도 무례한 취급을 받는다. 영화의 영어 제목이 추함(The Ugly)인 이유다. 추함을 바라보는 사회의 얼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 얼굴에 반사된 영희의 과거 씬은 애처롭다 못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명규가 영희가 미인이라는 소문에 현혹돼 결혼을 결심한다는 서사는 자못 흥미롭다. 명규에게는 영희가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중요했다. 보이지 않아도 자신을 멸시하는 얼굴을 느낄 수 있었기에 영희와 함께 한다면 자신을 바라보는 얼굴 역시 달라질 거라 믿었다. 영희가 추녀라는 사실을 알고 분개해 그녀를 살해하는 일련의 과정은 아름다움에 대한 명규의 광적인 집착을 여실히 보여준다.
명규는 당시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도장이 음각과 양각의 대조를 통해 선명한 아름다움을 찍어낼 수 있듯, 자신의 삶이 완성될 수 있었던 건 추함을 철저하게 깎아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명규가 그토록 말하는 아름다움의 실체는 무엇인가. 극 중에서 명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정확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사회가 아름다움으로 인정하는 범주(예술)가 있었고, 추함을 벗어나기 위해 범주에 들어가려 노력했을 뿐이다.
연상호 감독은 영화가 끝나기 직전, 영희의 얼굴을 보여준다. 그 얼굴이 추녀인지 아닌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영화를 보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추녀의 모습을 영희에게 대입했을 관객을 돌연 머쓱하게 만든다. 엔딩 크레딧에는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실체 없는 범주화를 대하는 우리의 얼굴만이 남는다. 그 모든 혼란 속에서도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사실은 영희가 자신을 향한 세상의 멸시에도 의로움과 정을 베풀려고 노력한 사람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