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뉴질랜드에서 맞이하는 세 번째 연말이다.
그 사이 일상을 남기려고 메모장에 주제를 몇 개 적어두고는 기록하지 못한 채 연말을 맞이했다. 일을 시작하고 난 후로는 일주일 단위로 시간이 더 빠르게 정신없이 흘러가는 기분이다. 평일 오일은 일하면서 보낸 후 주말에 친구를 만나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면서 살았다.
12월은 더 바쁘게 지나갔다.
월초에 하루 휴가를 내고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 졸업식에 다녀왔다. 친구들이 내 졸업식에서 함께 축하를 해주었듯 나도 졸업식에서 마음껏 웃고 축하했다. 일 년을 넘게 함께한 친구들은 타향살이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내 졸업식 때는 무대에 올라가 인사를 하고 졸업장을 받는데 온 신경이 집중되었다면, 이번에는 반가운 이름이 불릴 때마다 환호를 하느라 목이 칼칼해질 정도였다. 행사가 끝나고 한 친구의 애프터 파티에 참석해 한참을 축하하고, 또 며칠 뒤에는 다른 친구의 파티에서 축하와 연말인사를 전했다.
여름이 오면서 자주 남편이랑 바닷가로 향했다. 차에 돗자리와 비치타월이 실려있으니 운동복이나 수영복 차림으로 가까운 바닷가에 간식 챙겨가면 바로 소풍이다. 삼십 분 한 시간 원하는 대로 널브러져 있다가 돌아온다.
지난해에는 예약시기를 놓쳤던 교통박물관(MOTAT) 크리스마스 야간개장도 다녀왔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마지막날 티켓으로 사두었는데, 올해도 매진이었다. 차를 끌고 입장시간에 맞춰 갔는데 이미 잔뜩 줄이 서있었다. 집에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갔을 때도 줄이 남아있다. 들어가 보니 조명에 푸드트럭, 곳곳에 악기연주와 합창까지 테마파크가 되어있었다. 조용한 시골에 살고 있다며 농담을 하곤 했는데, 이런 행사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구나 싶었다. 조명을 둘러보면서 사진을 남기고 악기연주를 한참 감상하다 나왔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날. 아침부터 차로 40분이 걸리는 바닷가로 갔다. 남편이 새로 산 캠핑의자도 사용할 겸 일찍 움직여서 바닷가에 자리를 잡았다. 날씨도 좋으니 수영복 입고 햇빛 쬐면서, 가져간 블루투스 스피커로 캐럴을 작게 틀었다. 크리스마스라 수영복 차림에 산타모자를 쓴 사람도 많고 가족단위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도, 서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서양애들 명절이라며 가족들끼리 보내는 게 내심 부럽다 싶었다.
집으로 돌아와 씻고 소파에 기대 쉬고 있는데 앞집 아줌마가 갑자기 초대를 했다. 크리스마스라 음식을 잔뜩 했는데 와서 먹어주지 않겠냐고. 놀고 와서 출출한데 뭘 해 먹기는 귀찮던 참이었는데 무작정 가도 되나 싶어 망설이고 있었다. 불편하면 본인이 가져다주거나 우리가 담아가도 된다고 하길래 일단 감사하다고 하고 앞집으로 들어갔다. (급하게 가느라 휴대폰도 놓고 가서 사진도 못 남겼다.) 남동생과 친구가 와서 함께 했다며 식탁에 우리 접시와 커트러리를 놓아주신다. 돼지고기구이에 샐러드, 각종 디저트까지. 서양 명절을 이렇게 체험하게 되니 너무 고맙고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음식을 먹고 사진구경도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종종 마주치면 인사나 스몰톡을 하긴 했어도 한 자리에 길게 앉아 이야기를 하는 건 처음이다. 다른 문화권 출신인 우리를 이해하려 노력도 하고, 항상 밝고 유쾌한 가족이라 이웃을 참 잘 만났구나 싶었다.
신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며칠을 앓았다. 지난 주말 남편이랑 근교에 드라이브 겸 놀러 갔다가 피부가 뒤집혔다.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크리스마스 날 햇빛을 한참 쬐고는 일광화상을 입은 게 탈이 났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밤에는 오한이 났다. 12월이라 평소보다 외부활동이 많기도 했고, 이래저래 스트레스로 잠을 못 잔 것까지 컨디션이 좋은 게 이상할 정도이다. 남편이랑 같이 쉴 때 실컷 놀러 다니려고 했는데 결국은 내 체력이 경고장을 날렸다. 결국 약 먹고 계속 쉬는 수밖에.
어제 오후. 낮잠을 자고 일어나 뉴스를 보고 계속 새로고침을 눌렀다. 비행기 추락사고.. 며칠 전 러시아로 가던 비행기 추락사고에 생존자 숫자를 떠올리며 그래도 생존자를 빨리 구해야 할 텐데 왜 안 나오지 하는 마음이었다. 밥을 먹을 때도, 헬스장에 가서도. 결국은 최초 부상자 두 명 외 추가 생존자가 나오지 않았다. 뉴질랜드 헤럴드 메인에도 부서진 제주항공 동체가 실려있다. 여행을 탈 때 이용하던 항공사기에, 나도 저 비행기에 실려있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에 먹먹함이 밀려왔다. 해외생활을 하는지라 비행기는 앞으로도 계속 타게 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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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변화가 많은 한 해였다. 뉴질랜드 생활 삼 년 차에도 여전히 서툴고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