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해야 할 일을 가장 잘 아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남에게 의지 하듯 물어본다. 그것은 자신에 대해 믿지 못해서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남을 통해 그 대답을 얻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답정너는 자신에게 하는 말이다. 답은 정해져 있으니 우리는 그 답을 실행하면 된다. 자신이 왜 고통스러운지 가장 잘 아는 건 자신뿐이기에 그것을 극복하는 해답도 자신만이 알고 있다. 자! 답이 이미 정해져 있다 그것을 행동할지 안 할지는 자신이 선택할 몫이다.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자신이다.
사랑이란 상대를 위해 내가 변화하는 마음이다. 상대의 있는 모습을 인정해주고 좋아해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대를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바꾸려 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깨닫는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것을 사랑은 이기적인 것보다 이타적일수록 커진다. 하지만 사랑의 기본은 자신을 사랑하는데서 시작한다. 자신에게 사랑이 부족하면 사랑을 주는 것도 사랑을 받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몇 분이라도 의식적으로 바라보면 우리는 그 속에서 무언가를 느낀다. 그 무언가는 바로 자신이 평소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가령 길을 가다 간판이나 새로운 상점을 볼 수도 있고 커피 매장 옆을 지나가다 커피 향을 맡을 수도 있다. 화분에 꽃을 볼 수 있고 버스에 광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바라보아야 느낄 수 있다. 무의식 삶의 시간을 대부분 보내는 우리는 곁에 머물러 있는 것들을 느끼지 못한다. 감상할 줄 모르면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인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소소한 삶의 느낌이 모여 만든 것이다. 그 느낌은 작은 시선에서 나온다. 하늘의 구름, 길가의 꽃, 음식의 맛, 차의 향기, 회사 벽의 그림 , 지하철의 분위기, 버스 밖의 풍경, 집안의 소품들..... 단 몇 분이라도 주위를 의식적으로 둘러보면 새로운 느낌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가 보아야 할 삶의 아름다움이다.
현실은 우리 내부로부터 시작된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들도 우리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모든 것의 출발은 상상력이다. 그것은 현실이며 나이고 창조의 힘이다.
뒤쳐진 나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를 무언가에 쫓기듯 그리도 빨리 갈까?
어느새 흔적 없이 사라져
그들이 남기고 간 후회만이 나를 기다린다.
괜찮다, 아쉬워 말자 내 삶이거늘
지금 이곳이 내 삶이어라
끝까지 하라
미친 듯이 하고 싶다가도
어느새 제자리로.
항상 머물러 있던 곳이
얼마나 편하던지 금세 잠이 든다.
꿈속에 마음껏 날아올라
끝없이 이어진 구름의 바닷속에 뛰어든다.
깨어나면 생각 말고 다시 시작하자.
끝없는 구름의 바닷속 현실의 세상
그것은 나의 아름다운 인생의 길
눈을 감는 날까지 끝까지 하련다.
상상이 없는 사람들은 예측하기 힘든 삶을 산다. 그 이유는 자신이 보는 삶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삶은 자신이 상상한 대로 살기 때문에 자신이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 내 삶이 긍정적으로 보면 긍정적인 삶이 되고 부정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삶이 된다. 다 아는 내용이지만 실제로 자신이 긍정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 이유는 알고는 있지만 자신의 내면의 상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은 소망을 실현할 수 있는 충만한 힘이다.
믿는다는 것과 원하는 것은 하나이다. 자신을 믿으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 타인의 아닌 나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세상은 나를 통해 변할 것이다.
일어날 일은 일어날 것이다.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말이다.
당신이 행복을 원한다면 그렇게 될 거다. 이 말을 믿는다면 두려움과 걱정이 자신을 휘감아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당신은 위대합니까? 당신은 특별한 존재입니까? 당신은 행복합니까? 당신은 성공한 삶을 살았습니까? 당신은 열정적입니까? 이 물 음어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 뿐입니다. 당신이 지금의 현실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길 원한다면 자신 안의 더 훌륭하고 위대한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자신의 의식 안에 더 나은 '나'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다면 당신이 바라는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의식하지 않으면 어떠한 것도 존재할 수 없고 이룰 수 없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모습임을 의식해보세요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관념입니다. 더 나은 존재가 된 나를 상상하세요 그리고 그 현실을 믿고 따른다면 당신은 위대한 존재가 됩니다.
지금 현실은 내가 무의식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현실을 바꾸려면 내가 바라는 무언가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상상이 필요하다. 상상을 이용해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원하는 모습으로 그려야 한다 . 상상을 마치고 나면 변함없는 현실을 마주할 것이다. 당신은 그 현실을 보는 순간 의심을 한다. 자신이 해온 상상을 의심하며 부정한다. 하지만 당신이 했던 상상은 어디선가 싹을 틔우고 자라서 당신 앞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 보이지 않는다고 그것을 현실이 아니다고 말할 수 없기에 당신은 상상한 모든것을 믿어야 한다. 모든 일어나는 일에는 원인이 존재한다. 그 원인이 바로 당신의 상상이기때문이다.
당신의 감정은 순수합니다. 분노할 것이 있다면 터뜨려서 가슴속에서 내보내세요. 분노의 감정을 순수 그 자체인 고요함에 넣어보세요.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신은 맑아질 겁니다. 자아 깊은 곳에서 당신은 어떤 감각이라도 환상의 상태로 끌어올릴 수 있습니다
실제는 찰나이다. 꿈의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사실임을 기억하자
나는 책을 읽고 있다. 그 순간 아들과 딸은 아내에게 말하는 것이 들린다. 나는 책을 읽는 것과 동시에 주위의 사물들을 인지한다. 그 중심에 나의 자아가 있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나를 의식하면 왜?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창의성은 거기서부터 시작된다. 창의성이란 내가 변하고자 하는 생각을 실현하는 것이다.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저 외부의 환경에 의해 살게 될 것이다.
평가 그 자체가 아닌 의미와 중요성이 부여 불쾌한 감정이 일어난다. 우리가 평가에 의존하는 이유 또한 의미와 중요성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의 하는 평가에 감정의 소모를 일으킨다.
우리는 이미 일어난 현실을 바꾸려 애쓰고 있다. 그것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실제란 지금 이 순간뿐이며, 지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이미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라 자신을 중심으로 보이는 모든 것은 이미 존재된 상태이지 않는가? 심지어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마치 영화의 프레임처럼 우리 기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우리는 현재에 살고 있다. 하지만 과거에 머무르며 자신의 주의는 현재 프레임에 얽매어있다. 우리가 의식에 따라 움직이고 결단력 있는 행동을 하여 문제를 해결하고 목표에 도달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이역시 현재 프레임 안에 무의식 상태에 있음을 알고 있을까? 이 말을 믿지 못하는 건 당연하다. 지금도 당신도 나도 여전히 무의식 상태이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이 직접 선택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외부가 만들어놓은 프레임 안에서.... 다시 한번 말한다. 진짜 실제는 이미 일어났다. 더 이상 그 실제에 미련을 버려라. 지금 마주하고 있는 실제와 싸우는 것이 아닌 앞으로의 현실을 선택해야만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통제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우리의 의도는 현재에 머물러 있어 자신에게 일어나는 행동의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생각이 아닌 말로 상상하면 생각을 더 확실하게 만들 수 있다.
타인에 의해서 불쾌감이 온다면 유용함을 가지자 유용함을 자신의 이로움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의 불쾌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 속에서 자신의 이로움을 찾을 수 있다.
행복은 자신이 선택한 것으로부터 온다. 그러기에 행복을 얻기 위해 세상과의 싸움은 불필요하다. 결국 세상은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서 현실로 실현시키기 때문이다.
내 삶의 걸음은 어디까지 왔을까? 뒤돌아보지 말고 급하게 뛰지도 말자. 천천히 한걸음의 무게를 느끼고 앞으로 묵묵히 가자.
오늘의 주문
오늘 아침은 정신이 맑다.
오늘은 나에게 좋은 일이 가득하다.
여러 사람이 나를 찾아온다.
그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다.
오늘 아침의 밝은 기운이 하루 종일 내 몸을 감싼다.
하고자 하는 일에 목표가 확실한 오늘이 된다.
내 책상엔 일주일째 읽다만 책이 엎어져 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집중해서 읽어야 하기에 에너지 소모가 많아 잠시 쉬다가 산문집을 꺼내 읽는다. 생각의 쉼에 마음에 여유를 찾는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균형으로 이루어져있다. 당신의 몸도 균형으로 채워져 있으며 당신의 생각도 그러하다 지금 당신의 삶에 만족하지 못한다면 당신의 생각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말할 것이다. 그 생각을 무시한다면 당신은 지금의 삶에 만족해야 한다.
관대함은 다른 사람의 권리도 존중하는 것이다. 관대함은 다른 사람에게 신뢰, 시간, 관심을 주는 것이다. 자신의 어리석음을 스스로 용서하는 것도 관대함이다. 관대함은 강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충만하고 넉넉한 마음으로부터 온다. 나는 관대한가? 내 마음은 넉넉한가? 이 질문에 답은 나는 관대하다. 이미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그러니 ' 나는 관대하다'라고 말할 수 있다.
책상
책상 위에 두 군의 책이 있다. 하나는 심리 경제 책이고 하나는 산문집이다. 두 채의 겉표지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그리고 정사각형 책상의 끝으로 치워진 아비투스 내 공간의 책상은 무려 여섯 개가 존재한다. 하나의 책상엔 디퓨저가 향기를 뿜고 또 다른 책상엔 난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긴 책상엔 미처 자리잡지 못한 책들이 겹겹이 쌓여있고 그 옆에는 커피 향이 가득한 커피머신이 있다. 한 책상엔 아무것도 없고 다른 책상엔 컴퓨터와 생활문 구들이 널브러져 있다. 그 많은 책상 중 늘 창밖을 볼 수 있는 책상에서 책을 읽는다 이따금 지나가는 사람과 눈이 마주칠 때에 서로 민망하여 고개를 돌린다. 오늘은 벌써 세 번이나 그랬다.
당신은 지금 중요한 일이 있는가? 그것이 당신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중요한 일 때문에 지금 머리가 어지럽다면 당신은 어둠 속에서 눈에만 의지한 채 걸어가는 것과 같다 스스로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당신은 그 일에 대한 중요성을 한 발 국 뒤로 가라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그만 생각하야 한다. 그렇게 해도 당신은 분명히 그 일에 대해 미련을 못 버릴 것이다. 괜찮다. 예전보다 중요성이 감소했으니 당신은 이제 그 일이 스스로 흘러가게 만들었다. 그리고 당신의 행동도 흐르는 물결을 탔다. 예전에 당신이라면 폭포를 거꾸로 오르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큰 바다로 흘러가는 강물에 동력 없는 배에 올라타 아무 저항 없이 앞을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중요성은 당신의 의지를 강력하게 만들지만 너무 강력한 나머지 흐름을 역행하게 만든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행위의 결과보다 주의를 돌려서 행위의 과정을 맞추어야 한다. 그러면 당신의 의지는 강력하되 흐름의 역행을 하지 않고 조화롭게 균형을 유지한 채로 고민과 후회 그리고 집착으로부터 벗어나 목표에 이르게 할 것이다.
자신만의 고유함이란 자신이 가진 의식이다. 각자의 의식은 고유성을 가진다. 하지만 외부의 영향으로 고유성은 통합성으로 변한다. 통합성이란 외부 사회가 만들어낸 일종의 규범이다. 이것은 어릴 때 부모로부터 만들어지고 학교에서 주입한다. 그래서 자신의 고유성은 버리고 사회가 만들어낸 규범의 통합성으로 의식을 변화시킨다. 우리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그 고유성을 찾아 자신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면 사회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다.
불쾌감이 오는 스트레스는 코로나보다 전파력이 강하다. 게다가 친한 사이일수록 더 강력하다. 때문에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느슨함
느슨함이란 게 이름이 아니다. 삶의 느슨함은 자신을 생각할 시간을 준다. 사회에 묻혀 자신을 잃어가는 시간 속에서 존재의 의미를 깨닫게 해 주는 게 느슨함이다. 가끔 그런 느슨함을 가져보자. 혼자 카페에 가거나 산책을 하거나 서점에 가서 책을 읽거나 무작정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가보자. 마음이 만든 제약으로부터 무작정 떠나보자.
나는 개인가?
맞다.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람들에게 가족보다 더 신경을 많이 쓴다.
빌어먹을 , 정말 그렇다.
타인은 이해하면서 가족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꾸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