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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35분 휴대폰에서 알람이 울렸습니다. 1분간 울림을 멈춘 건 제 오른손이었지요. 평소에는 손만 뻗으면 될 곳에 놓아두었는데 이번엔 조금 멀리 두었나 봅니다. 몸을 이리저리 굴려가며 오른손을 더듬고 1분의 알람 소리를 멈출 수가 있었습니다. 벌떡 일어나 묵은 잠을 떨쳤으면 좋으련만 어제 늦은 오후의 달리기로 인해 몸이 무거웠어요. 다시 눈을 감고 잠을 자려했지요. 다행히 7월 18일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조금 게으름을 피워도 될 만큼 저에게 허락할 수 있을 정도로 일주일간 새벽 기상을 했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5시 10분이 되니 날이 밝아오더군요. 그래서 더 자볼 심산이었어요 하지만 아들 녀석의 잠버릇에 그만 일어나야 했답니다.
요즘 무더위로 아들과 함께 거실에서 자고 있습니다. 아들은 온 거실을 돌아다니며 잠을 잔답니다. 제 머리 위에서 자고 있다가 어느새 보면 제 발아래에 있죠. 덕분에 잠을 자는 동안 몇 번은 깨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자고 있는 아들을 볼 때면 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역시 아이들은 잠잘 때 천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새 자신의 고개를 힘들게 돌리던 선풍기를 멈추고 물 한잔을 시원하게 들으켰습니다. 저는 아침마다 항상 물을 한 컵을 마시는데 그 이유는 시원한 물이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느낌이 너무나 좋아요. 그런데 평소에 먹으면 그런 느낌이 잘 나지 않지요. 꼭 자고 일어나야 그 느낌이 많이 납니다. 이상한 일이에요. 아마도 새벽 기상을 해야 해서 제가 만든 억지스러운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평소와는 다르게 몸이 무거웠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어제 늦은 오후에 달리기를 했거든요. 늦은 오후라고 해도 해는 자신이 떠있는 내내 땅을 달궈놓았지요. 달리는 내내 발바닥에서 오는 열기가 금세 제 옷을 땀으로 젖게 만들었어요.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조금 핑 도는 것을 느꼈답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이러다 쓰러지는 거 아냐?"
정신을 바짝 차리고 목표를 향해 조금 천천히 달렸습니다. 이런 제 모습에 '그러게 왜 무더위 속에 달리기를 하냐'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주말 달리기의 제 목적은 스타벅스에 있습니다. 반환점이 있는 곳에 스타벅스가 있거든요. 3킬로 를 조금 넘게 달리고 시원한 음료를 마시면 기분이 정말 상쾌하거든요. 그 맛에 주말 오후에는 무더위라도 달린답니다.
무거운 몸을 폼롤러로 풀고 있을 때, 아내가 일어나더군요. 평소 우리 부부는 새벽에 일어나 저는 산악 달리기를 하고 아내는 산행을 합니다. 제가 먼저 나가서 정상을 찍고 내려오면 중간에 아내와 마주칩니다. 그때마다 서로의 손을 부딪쳐 하이파이브를 한답니다. 하지만 주말에는 조금 틀린 루틴을 합니다. 바로 가족 루틴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은 가족 모두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이죠. 그것이 아침 기상이고 운동입니다. 6시가 넘어갈 때 딸과 아들을 깨웠습니다. 저희 아이들 역시 완강히 일어나길 거부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포기란 없지요. 자는 아이들을 향해 말합니다.
"더워서 6시 30분에는 나가야 돼"
"그런데 안 가고 싶으면 안 가도 돼"
"그건 너희들 자유야"
아이들은 이런 말이 조금 억압으로 들리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 말을 하고 나면 아이들이 일어나거든요. 그래도 약간은 뭉그적 거림이 있어 계획했던 6시 30분보다 늦은 7시 정도에 가족 모두가 현관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생각해보면 제가 저 나이 때는 한없이 늦잠을 자고 게으름을 피웠을 텐데....
잘 따라준 아이들이 너무 기특하답니다.
현관문을 나서고 두대의 자전거를 꺼냈습니다. 하나는 아들, 하나는 아내가 탈 자전거죠, 딸은 어떡하냐고요? 요즘 산책로를 걷다 보면 버리고 간 자전거들이 있답니다. 물론 휴대폰을 켜고 결제를 해야 탈 수 있는 것이지 만요. 딸아이는 그 자전거를 탑니다. 오늘은 운이 좋게 집 앞에 바로 버려진 자전거가 있었습니다. 바로 휴대폰을 껴내 결제하고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는 저를 버리고 자전거를 타고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전 천천히 걸으며 무거운 몸을 풀었습니다. 산책로에 다 달랐을 때 가족들은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손짓하자 아들이 선두로 하여 아내 그리고 딸아이가 일렬로 자전거를 탔습니다. 저는 그 뒤를 따라 달렸습니다. 이른 아침에도 더위는 물러가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나와 운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로 전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달렸습니다. 목적지는 역시 스타벅스였습니다. 평소보다 빨리 달린다고 하는데 벌써 딸아이의 뒷모습이 점처럼 보입니다. 숨은 차오를 때마다 버려진 자전거를 볼 때마다 나도 타고 싶다는 욕구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도 위안이 되는 건 저처럼 달리는 사람들이 보인다는 것이죠. 비록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같이 한다는 것에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서로 마주칠 때마다 보이지 않는 파이팅이 있습니다. 말을 하지 않아도 말이죠. 그것 때문이었을까요? 무거웠던 몸이 달리기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 1킬로 남짓 달리기는 오히려 3킬로를 달렸을 때보다 숨이 더 차오릅니다. 허벅지와 종아리가 묵직해져 달리는 속도도 제대로 나오질 않죠. 그러다 몸의 적응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꽤 오랜 시간을 달릴 수 있습니다. 그 고비를 넘기면 신기하게도 목표보다 더 멀리 달릴 수 있습니다. 삶도 달리기와 같을 겁니다. 고비를 맞을 때 포기하지 말고 그 고비를 넘기면 목표보다 더 멀리 있는 자신이 서있을 테니까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자전거 세대가 매장 앞에 놓여있었습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제 땀을 얼음처럼 만들더군요. 아 살맛 나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게 일상의 감사함인 것 같습니다. 주문하는 가족에게 다가갔습니다. 각자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문한 뒤 기다렸습니다. 조금 지나 직원이 말했죠
"거대한 기적님 주문한 음료 나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제 닉네임이 거대한 기적입니다. 사실 닉네임을 지을 때 별 의미 없이 지었지만 다른 사람이 제 닉네임을 부를 때 이상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바로 뿌듯함이었죠.
우리는 항상 기적을 바라잖아요. 그렇다고 기적을 말로 하진 않아요. 하지만 말이 씨가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말을 하면 현실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죠. 그러니 제 닉네임을 부르는 사람도 듣는 저도 둘 다 좋지 않을까요. 직원분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제 닉네임이 들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주문한 음료를 받아 들고 2층에 올라갔죠. 이른 시간이라 한적한 공간에 재즈 음악소리가 들리니 마음을 편해졌습니다. 창가에 앉자 샌드위치와 음료를 마시며 이른 아침을 먹었습니다. 각자 가져온 책을 읽으면서 휴일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소중한 시간을 알기를 바라봅니다. 아직은 무리인걸 압니다. 제 욕심이지만 저보다는 빨리 깨우치길 바랍니다. 코로나로 인해 각자의 공간적 여유가 없어 서로 부딪히고 감정싸움에 지치는 현실에서 이런 시간이 꼭 필요합니다. 서로를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서 마음의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에 공간이 있어야 관계도 부드러움이 생긴답니다.
1시간 남짓의 시간을 보내고 저는 달리고 딸과 아들 그리고 아내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 왔습니다. 7킬로 남짓의 아침 운동을 하니 역시 활력은 보상으로 주어지네요. 남보다 이른 출발로 주말 아침은 한층 여유롭고 각자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간의 깨끗함을 위해 청소를 하니 한층 밝아지는 집이 되고 그 속에서 일주일의 고단함을 잠시 낮잠으로 풀었습니다.
TV 속에 화면에서 운동선수의 뒷모습이 나와 아내에게 그동안 열심히 운동한 근육을 보여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자 아내는 자지러지듯 웃네요. 포동포동한 아이 등 같다고 근육은 도대체 어디 있냐며, 눈에서 눈물이 맺힐 만큼 그렇게도 제 등이 웃긴가 봅니다. 나름 열심히 한 운동인데 비웃는 아내가 조금은 섭섭해도 거실 가득히 웃는 소리가 들리니 이보다 행복할 순 없었습니다. 7월 18일 나에게 주어진 하루가 다시 돌아오진 않지만 그날의 행복한 일들이 앞으로 살아갈 날에 긍정적인 의미가 될 것 같습니다.
우리의 삶은 한평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씩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다 보니 죽음 앞에서 하루의 삶들이 필름으로 남는 거겠죠. 누구나 잘살기를 바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를 바라지만 전 잘 살았다기보다 죽는 날 행복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7월 18일의 하루는 행복하고 감사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