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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루나 May 23. 2022

티셔츠를 오랫동안 새것처럼 입는 법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어떨 때 생기나

1년 전쯤 나는 수년 전 살던 동네인 이화동에 찾아가 

낙산공원으로 올라가는 길을 거닐고 있었다.


티셔츠 몇장을 살겸, 매번 지나치기만 했던 

편집샵 같은 옷가게에 즉흥적으로 들어갔는데

실용적인 티셔츠가 많아 3장 정도 고르고

계산을 기다리는 중에 짐짓 그러고 싶어져 점원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평소 물건을 사거나 할 때 일절 먼저 말을 걸지는 않는 나였는데

그날 따라 습관적 행로를 좀 벗어나고 있었다.

오랜만에 온, 내가 살았던 동네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감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예전에 여기 살 때는 지나치기만 했는데, 오랜만에 동네에 다시 찾아와 봤어요.

여기 이쁜 옷이 많네요. 알았으면 진작에 자주 들를 걸 그랬어요 ㅎㅎ"


점원분의 표정이 밝아지더니 본인이 옷을 어떤 경로로 가져오는지

자랑을 한참 늘어놓아 나는 긍정도 부정도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 있었다.


"아 그리고 티셔츠를 새것처럼 오래 입는 법 아시죠? 

뒤집어서 세탁망에 넣어 세탁기에 돌리면

목도 안 늘어나고 변형이 거의 없이 입을 수 있어요.

뒤집을 때 팔은 뒤집지 않아서 옷감 안쪽에 있게 하구요."


앗. 그런 방법이?


세탁기에 티셔츠를 그대로 벗어 넣고,

매번 제멋대로 목이 늘어나는 결과들을 목도해 왔지만

나는 그게 그냥 당연한 걸로 알고 살았다.

한철 입으면 외출용 티셔츠가 목늘어난 집안용 티셔츠로 전락하고

매년 새 티셔츠를 구매해 왔던 나로써는

솔깃해지는 정보였다.

왜 아무도 이런 걸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지?


지난 1년간 이 꿀팁을 열심히 적용해 오고 있는 나는

신세계를 맛보고 있다.

아, 티셔츠를 원래 모습 그대로 오래 입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구나.

그걸 모르고 목 늘어난 티셔츠를 그냥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고 살고 있었구나. 


근 몇년 간 알게된 실용적인 생활정보 중 가장 유용했던 걸

나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에게 들었던 것이다.


아마도 인터넷 같은 곳에서 지나가는 카드뉴스 같은 이미지로 이러한 정보를 봤다면,

나는 흘려듣고 시도해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 분의 자부심 넘치는 말투와 강조하는 눈빛에

나는 어쩌면 그 분의 '선의'를 느끼고 감화되었는지 모른다.

'아 이 사람은 정말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는 구나'

이런 정서적 경험이 나의 이후 행동을 바꿔주었다.


그 분은 처음 보는 나를 돕고 기여하고 싶은 마음을 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 마음을 촉발시킨 건 무엇이었을까.

내가 이 동네에 살았다는 걸 알아서였을까.

그 가게에 이쁜 옷이 많다고 칭찬해줘서였을까.

분명해 보이는 건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았다면,

대화도 이어지지 않았을 테고

그 분의 꿀팁을 전해들을 기회도 없었을 거라는 점이다.


어떤 이유건

그 분도 나에게 일종의 연결감 같은 걸 느꼈을 테고,

생전 처음보는 내가

본인이 파는 옷을 소중하게, 오래도록 이쁘게 입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냈던 것 같다.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어쩌면

상대방이 자신을 조금 개방할 때,

그래서 상대방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될 때가 아닐까.

최재천 교수님의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떠올려지는 대목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티셔츠가 세탁기 안에 들어갔다 나올 때

목이 늘어난 모습을 조우하며 느끼는 맴찟과 우울을 더는 느끼지 않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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