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서부 킹스-세쿼이아 국립공원 여행기
준비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발목을 잡히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실 그랜드캐년 여행 때, 경비행기를 탔다가 저혈압 증세로 꽤나 고생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장 높은 지대라고 해봐야 해발 2,000미터 이하인 킹스-세콰이어 국립공원. 숙소가 있는 마을은 1,500미터가 채 되지 않았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방심했던 것이 화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사건은 그랜트 그로브 로지(Grant Grove Lodge)에서 맞이한 아침에 시작됐다. 눈을 뜨자마자 두통이 몰려온 것. 이렇게나 상쾌한 숲속 공기를 마시며 푹 잤는데 전혀 개운하지 않다니. 처음에는 실내에 먼지가 많아서 그런가 싶었다. 밖으로 나가 크게 심호흡도 하고, 물도 마시고, 스트레칭까지 하며 몸을 달랬다.
아침을 챙겨 먹고 세쿼이아 국립공원 쪽으로 차를 몰았다.
모로록
Moro Rock
도착한 곳은 거대한 화강암 돔으로 이루어진 모로록. 주차장에서 계단만 조금 오르면 힘들이지 않고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곳이다. 눈 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마주하니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어라, 이제 몸이 좀 괜찮아졌나? 싶어 방심한 탓에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그 가파른 구간을 한달음에 다녀왔던 것이 지금 생각하면 가장 큰 실수였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짧았고, 차로 돌아오니 잠잠했던 두통이 아까보다 훨씬 날카롭게 머리를 파고들었다. 급한 대로 차 안에서 초콜릿을 입에 넣고 물을 들이켜 봐도, 이제는 속까지 울렁거리며 심한 멀미 증세까지 시작됐다.
결국 눈에 띄는 비지터센터에 들러
레인저를 붙잡고 증상을 설명하니,
돌아온 대답
그거 고산병 증세예요.
That's altitude sickness
평소 저지대에서 생활하던 여행자들이 이곳에 오면 흔히 겪는 일이라며, 레인저는 물 많이 마시고 푹 쉬라며 조언을 해줬다. 아차 싶었다. 두통약도 숙소에 놓고 와서 부랴부랴 달려간 제네럴 스토어 약품 코너. 그런데 세상에, 딱 두 알 들은 약값이 어찌나 비싸던지. 그래도 한쪽 코너를 가득 채운 두통약을 보고 있으니 묘하게 마음이 놓였다. 나만 머리 아픈 건 아니었구나.
숙소로 돌아와 약을 삼키고
한낮인데도 그대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숨 푹 자고 일어나니 머리를 짓누르던 통증이 사라지고
어느덧 밖은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
고산병으로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나서야 겨우 제대로 된 식사를 하러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체력 좋다고 자만했던 나에게 자연이 던진 따끔한 경고였던 셈이다.
여러분도 미국 국립공원 여행을 할 때는 무리한 일정은 금물입니다. 광활한 대륙인 만큼 이동 거리가 상당하고, 고지대가 계속되면 몸에 무리가 가기 쉽거든요. 대자연의 경이로움도 우리의 컨디션이 받쳐줄 때 비로소 온전히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