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여행
도시를 대표하고, 도시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음식점이 있다면, 그 곳의 사람들은 축복받았다 할 수 있습니다. 한 그릇의 음식을 맛보며 그들의 문화를 알아갈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여행은 없을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에는 여행과 음식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대표맛집'이 여러 곳이어서 더 행복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여행을 갔다면 꼭 가봐야 할 보딘 베이커리를 첫 번째 샌프란시스코 맛집으로 소개합니다. 둥그스름한 빵의 속을 파서 그 안에 따끈한 클램차우더를 담아 먹는 메뉴가 이 곳의 명물인데요. 보딘 베이커리가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대표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비밀을 알아볼까요?
오리지널 샌프란시스코 사워도우란?
프랑스 부르고뉴 출신의 부댕 가문이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것은 골드러시 시기였다. 프랑스의 베이커리에서 견습생을 하다가 16세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온 이시도르 부댕은 베이킹과 사업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고, 1849년 보딘 베이커리를 창업한다. 오늘날 보딘은 리바이스, 기라델리, 웰스파고, 델몬트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에서 태동한 대표적인 기업으로 성장했다.
우리나라 여행객에게는 '클램차우더 가게'로 유명하지만, 사실 보딘베이커리는 '사워도우 빵'을 맛있게 먹도록 하기 위해 클램차우더를 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빵의 퀄리티에 모든 것을 건 아티장 베이커리다. 어두운 황금색으로 빛나는 단단한 표면 속에 특유의 산미가 느껴지는 부드러운 빵은 '오리지널 샌프란시스코 사워도우'라는 이름으로 상표 등록까지 했을 정도.
사워도우란, 말 그대로 시큼한 맛을 내는 주식용 빵이다. 국내에도 아티장베이커리가 늘어나면서 사워도우를 쉽게 접할 수 있는데, 사실 빵맛은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더욱이 여행자 입장에서 커다란 덩어리 빵인 '사워도우'만 사서 뜯어먹는 경우도 흔치 않다. 그런데 보딘 베이커리에서는 사워도우 빵의 속을 파내고 그 안에 조개살과 해물이 듬뿍 들어간 따끈한 클램차우더를 넣어먹을 수 있어서 쌀쌀한 샌프란시스코의 날씨를 견뎌내는 든든한 한끼가 된다.
맛의 비결 - 170년 동안 이어져 내려온 마더도우
보딘베이커리의 사워도우는 일체의 첨가물 없이 밀가루와 이스트, 소금과 물을 사용해 직접 반죽하고 성형하여 굽는 천연 발효빵이다. 보딘 베이커리에서는 이스트와 공기 속 박테리아(효모균)의 화학작용을 통한 자연스럽고 느린 발효과정 자체를 중시한다. 반죽이 완성되면 그 일부를 남겨 다음 번 반죽을 만들기 위한 발효종(levain)으로 사용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 반죽을 '마더도우(mother dough 혹은 sourdough starter)'라고 부른다.
보딘에서는 1849년 베이커리가 오픈한 이래 마더도우의 명맥을 끊지 않고 계속 사용해왔다는 부분에 큰 자부심을 갖는다. 바로 이 점이 제빵용 효모(commercial yeast)를 넣어 반죽을 빠르게 발효시키고, 그 과정에서 화학첨가물을 사용하는 일반적인 베이커리와의 결정적인 차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일대를 뒤덮는 짙은 바다안개(해무)는 7월부터 9월 사이의 한여름에도 천연 에어컨같은 작용으로 사워도우에 포함된 효모와 유산균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한다고 한다. 창업자 이시도르 부댕은 특유의 기후 환경이 빵의 발효에 미치는 영향까지 파악했을 뿐만 아니라 여러 곳에서 생산된 밀가루를 혼합 사용하면서 샌프란시스코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만든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사실 골드러시 당시에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노동자들이 샌프란시스코에 흘러들어오는 시기였으므로 제빵 기술만을 연구한 사람도 거의 없었겠지만,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마차를 이용해 아침마다 따끈한 빵을 배달하는 Door-to-Door Delivery서비스까지 도입한 것을 보면 명실상부 제빵의 1인자로 자리잡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님을 입증한다.
빨간색 로고까지 예쁘고 세련된 오늘날의 보딘 베이커리 본점은 여러모로 재밌는 곳이다. 플래그십 매장은 샌프란시스코 여행의 핵심 관광지인 피셔맨스 워프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시설과 볼거리가 남달라 꼭 한번 방문할 가치가 있다.
보딘 베이커리 구조
카페-베이커리-비스트로-박물관까지 갖춘 보딘 베이커리를 제대로 보려면 1~2시간 정도 소요된다.
첫번째 볼거리는 '베이커스 홀'이라는 이름이 붙은 보딘 카페. 입구에서부터 줄을 서 음식을 주문하고 반대 쪽에서 픽업하는 셀프서비스 방식이다.
카운터에서 먼저 메뉴를 골라 주문하고 결제한 뒤, 픽업 포인트에서 음식을 찾은 다음,
이곳 저곳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자유롭게 식사를 하면 된다.
메뉴 고르기
대표 메뉴는 당연히 브레드볼에 담긴 따끈한 스프다. 뉴잉글랜드 스타일의 클램차우더(조개와 감자, 양파 등이 들어간 크림스프), 러스틱 토마토(사워도우 크루통을 넣은 토마토 스프에 파마산 치즈를 뿌린다) 또는 비프 칠리(걸죽하고 매콤한 텍사스 스타일) 등을 선택할 수 있다. 던지니스 크랩이 들어간 샌드위치도 인기가 높고, 그 외에 샐러드나 피자 등 다양한 메뉴를 갖췄다.
여기에 다양한 종류의 로컬 음료까지 선택한다면 완벽한 구성이다.
따끈한 커피와 곁들여 먹을 쿠키도 팔고 있으니 피셔맨스 워프를 관광하다가 잠시 쉬어가는 휴식 공간으로도 안성맞춤.
박물관 구경하기
간단하게 식사를 마쳤다면 이제 위층으로 올라가볼 차례! 아래층이 붐비는 것에 비해 위층은 한산한 편인데, 박물관 입장은 무료이므로 부담없이 올라가보자.
박물관 입구에는 귀여운 사워도우인형들이 가득~ 누구나 만져보고 싶겠지만 당연하게도 만지는 것은 금지.
베이커리의 역사와 함께 샌프란시스코의 옛 이야기도 차곡차곡정리해놓은 깔끔한 전시관은 규모가 크지 않아 10분 정도면 다 돌아볼 수 있다.
아울러 빵의 제조공정도 견학할 수 있도록 모든 과정을 공개하고 있다.
박물관 옆에는 비스트로를 운영하고 있어서, 카페보다는 한적한 식사가 필요한 가족단위의 방문객에게 적당하다.
2층 전체를 둘러 봤다면 다시 1층 카페로 내려간다. 전부 다사고 싶은 보딘 베이커리 굿즈를 구경할 차례. 예쁜 로고 디자인이 인쇄된 여러가지 기념품이 눈길을 사로잡고, 묵직한 클램차우더 통조림은 무겁지만 않다면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샌프란시스코 선물 필수템! 대신 작고 가벼운 것으로 몇개만 구입해 본다.
총평 보딘베이커리는 170년 역사만으로도 방문 이유가 충분하지만, 무엇보다 피셔맨스워프라는 관광지에서 좋은 퀄리티의 음식을 저렴하게 (클램차우더 하나에 $10) 먹을 수 있고, 쉬어갈 자리도 많다는 점에서 특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어요. 베이커리 바로 옆에 있는 테일러 스트리트(대형 크랩 모형이 세워진 곳)에도 클램차우더 식당이 많지만, 클램차우더만큼은 보딘에서 먹는 것을 추천합니다.
글•사진
여행작가 <미국서부100배즐기기>저자 제이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