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윰 Jul 31. 2024

내일은 촬영날

D-day!

내일은 드디어 촬영일이다.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짧은 만 큰 강도가 셌다. 더구나 개인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다른 일의 마감일이 겹치는 바람에 정신없는 한 주를 보냈다. 그리고 계속 걱정하던 일일촬영표 짜기도 완성하고 컨펌을 받았다.


 내일 예상 온도는 최저 25도 최고 35도로 뙤약뼡이 걱정된다. 지금은 카페에 앉아 챙겨야 할 소품리스트를 최종 작성하는 중이다. 배우 소품들, 상비약, 촬영스케줄표 8매 등등... 촬영날 커피차를 해주겠다는 사람 둘을 만류하고 자금을 조금 지원받았다. 우리의 예산안을 찬찬히 다시 보는데 최대한 예산 절감을 위해 스텝들을 위한 최소한의 식사 메뉴가 눈에 띈다. 이틀간 밤샘을 강행하며 촬영하게 될 텐데 우리가 먹을 식량은 카프리썬, 오렌지주스, 김밥 1줄과 컵라면, 그리고 맘스터치 햄버거 단품이다. 사실 소품비와 배우 촬영료만 해도 이미 예산 초과이므로 햄버거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이긴 하다.


 현장에서 이것저것 주워 먹을 단 과자들과 음료를 샀다. 그리고 피디님께 저희 간식비는 예산안에서 빼주셔도 될 것 같다고 연락드렸다. 이미 팀원들 각자 십시일반 사비를 내었기 때문에 현 예산안을 초과하면 곤란해질 수 있기 때문에 간식비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마음이 크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아는지 선뜻 나서서 먼저 간식 이야기를 꺼내준 지인들에게 고맙다.


 촬영 전날이 오기까지 팀원들의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감독은 촬영 이틀 전까지 나를 포함원 팀원들로부터 시나리오에 대한 혹독한 피드백을 들었고, 미술감독은 정해진 예산에 맞는 좋은 퀄리티의 소품을 찾느라 이곳저곳 발로 뛰는 중이다. 제작부는 행여나 예산이 초과될까, 촬영 당일 놓친 구석이 생길까 걱정에 신경이 곧 두서 있다. 촬영부는 이른 일출시간과 화면상 미감을 조율하기 위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그리고 배우는 배역을 소화하기 위해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조감독으로 배우와 촬영 전반에 대비하고 있다. 모두 본업을 병행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린 서로에 대해 모른다. 오직 이 프로젝트를 함께해 가는 과정 속에서 본인이 맡은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각자의 성향과 일하는 태도를 볼 뿐이다.


 흔히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이다. 일하는 모습을 보면 사람이 자리를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어떤 자리가 주어지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역량껏 해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자리를 버거워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후자를 쉽게 비난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앉힌 사람이 우리라면? 우리의 책임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을 무능력하다고 비난하긴 쉽다.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왜, 무엇 때문에 그 사람을 뽑았을까? 이것 또한 생각해 볼 일이다. 부모와 자식 간은 천륜이라는 이유로 어떠한 고난도 인내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회에서 만나는 타인 특히, 그게 연인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쉽게 인연을 끊어내 버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정상의 범주를 벗어난 관계까지 귀책사유를 본인에게 돌리며 연을 붙들고 있을 필요는 전혀 없다. 그러나 우매하다는 이유로 타인을 비난하기 이전에 내 선택의 우매함도 돌아볼 여지가 분명하다는 이야기다.  


'왕관을 쓰려는 자 그 무게를 견뎌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나 왕관을 오랫동안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운 좋게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금방 한계가 드러나는 경우는 많다. 우리는 매스컴에서 이런 경우를 숱하게 보지 않았던가. 하지만 관계 전복을 위한 폭력과 비난이 필요한 정점이 오기 전까지 우리는 먼저 나의 책임을 수용하고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를 바탕으로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듣지 않는다면 그때가 어떤 적극적인 행동을 취해야 할 때이지 않을까.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는데, 촬영과 관련된 이야기는크게 아니다. 그저 감독의 책임과 무게를 생각하며 '내가 저 역할을 맡았다면 어떻게 해냈을까' 상상하다 보니 여간 어렵고 부담스러운 자리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런 개인적 상심은 접어두고 일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해내는 게 프로고 수장이겠지!


이틀 간의 촬영 동안 의견 대립이나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침착하게 모두가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주길 바라며.. 아니 나부터 잘하기 기원..


단편영화제에서 커피를 제공해 주신다는 카톡이 온다.

커피 못 마셔서 어쩌나 내심 아쉬웠는데,

역시나 럭키비키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