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용기
고등학교 2학년 여름, 수우 타운센드(Sue Townsend)
작가의 비밀일기 (The Secret Diary of Adrian Mole)라는 책을 동네 서점에서 마주했다.
제목이 비밀일기? 이름부터 비밀스럽다. 별 망설임 없이
책을 집어 들고 친구 삼촌이었던 사장님께 돈을 지불했다.
원래 무슨 책을 사러 갔었는 지는 잊은 지 오래다.
책을 펴자마자 주인공 에드리언에게 빠져 들었다.
바람난 엄마와 염세적인 아빠,
여자 친구라고 불러도 될지 모를 여자 친구.
도저히 웃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빛나는 촌철살인의 풍자가 가득한 책이었다.
주인공은 매일 일기를 썼다.
나도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의 독자가 읽는 글을 맹목적으로 썼다.
보여주지 않을 글들이다. 보여지면 여럿 다칠 수도 있다.
버릇처럼 글을 쓰다 보니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겼다.
어차피 독자는 나 하나뿐이다.
용기도 아닌 객기로 미주한국일보의 문예공모전에 도전하게 된다.
저 정도 글은 나도 쓰겠다는 호기는 시작과 함께 좌절로 이어졌다. 그래도 포기는 안 했다. 포기라는 단어가 사치스러울 수준이었으니 당연하다.
어찌어찌해서 단편소설(?)을 완성은 했다.
정성스레 프린트를 하고 보낼 곳 주소를 몇 번이고 확인 후,
우체국까지 가서 생애 처음으로 쓴 보여주는 글을 떠나보냈다.
며칠이 지나 글을 받았다는 내용을 이메일로 받았다.
그걸로 끝.
그다음 해를 기다려 또 다른 한 편의 단편소설을
미주한국일보로 보낸다.
잘 받았다는 메일을 또 받는다. 그리고 또 끝.
또 1년을 기다리며 글을 쓴다. 아주 조금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받기는 했는데 읽기도 했을 까? 그동안의 당선작들을 찾아 읽어 보기도 했다.
아는 게 없으니 내 글과 뭐가 다른 지도 모르겠다.
이번만 응모해 보고 보여주는 글 따위 다시는 안 쓰겠다고
다짐한다.
나를 치유할 수 있고 뒷담화에 최적화된 일기나 쓸 참이었다.
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내 글이 어떤지 평가라도 받고 싶었다.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아는 사람들에게는 평가받고 싶지 않았다.
보여 줄 용기도 없고 냉철한 평가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글을 쓰다 보니 주책없이 외롭기까지 했다. 글을 쓴답시고 할 건 다 한다.
아무튼 또다시, 오자 검토부터 주소 확인까지를 몇 번이고 반복하고 우체국을 향한다.
우체국을 나오며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결심한다.
잘 받았다는 메일을 잘 받고.. 이제 당선작 발표를 기다린다.
몇 개월이 흐르고 드디어 신문에 당선작 발표가 나왔다.
내 이름 같은 건 없었다.
절필선언(?)이 필요한 때이다. 우습다. 뭘 했다고?
체념을 하고 심사평을 읽는다.
왜 내 이름이?
내 눈을 의심한다.
진짜 내 이름이잖아!
은희경 작가님의 심사평에,
내 글이 입상권 안에 들지 못해 아쉽다는 내용이 있었다.
정황 포착이나 세부 묘사가 섬세하고 입심도 좋지만,
에피소드 간 연결이 부자연스럽고 언어나 태도가 틀에 박힌
느낌이라는 평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평.
눈에 들어온 건
‘정황 포착, 세부 묘사, 섬세, 입심' 뿐이었지만,
보여주는 글쓰기와 헤어질 결심이..
열심히 써보자라는 각오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의 글 '기다린 자국'이
2021년 미주한국일보의 문예공모전에서
단편소설부문 당선작으로 선정된다.
은희경 작가님 감사합니다! 포기 안 했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발행 아이콘을 누르기 전,
매번 용기가 필요하다.
보여 주는 글에 아직도 자신이 없다.
판단은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마음을 다스리지만 쉽지 않다.
비밀일기의 작가가 2014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근래에 알게 됐다.
일기를 쓰게 해 준 고인을 뒤늦게나마 추모한다.
이제는 글을 써서 외롭지 않다.
보여줄 수 없는 글을 쓰던 내가 브런치 작가가 되어
보여주는 글을 쓴다는 게 그저 신기하다.
71명의 구독자 여러분과 졸작을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용기 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