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박물관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일주일에 단 하루 쉬는 날이었다.
그날의 계획은 늦잠을 자고 일어 나, 아무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거였다.
하지만 계획과 상관없이 심하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눈을 뜨니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전화를 받아 말아 천천히 고민을 하며 전화벨이 그치기를 바라는데..
전화벨은 그칠 생각이 없는 듯했다.
설마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최대한 천천히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최대한 아픈 목소리로 낸 음성.
"오빠! 큰일 났어.. 빨리 TV 틀어 봐!"
여자 친구의 다급한 목소리였다.
워낙 다급한 목소리다 보니 리모컨도 못 찾고 허겁지겁
TV를 틀어보니 채널이 모두 먹통이었다. 이건 왜 이래?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채널을 누르다가 화면이 잡힌 곳은 평소에 보지 않는
뉴욕의 지방 채널이었다.
고정된 화면에서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의 윗부분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 어떻게 저기서 불이 나?
고층에 불이나 사람들 대피하기 힘들겠다, 워낙 고층이라 물 끌어올리기도 힘들겠다,
같은 대화를 여자 친구와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믿기지가 않아 밖으로 나가 맨해튼 쪽을 바라봤다.
저 멀리 연기를 뿜고 있는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보였다.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뉴스에 집중했다.
그제야 들리는 아나운서의 목소리.. 아나운서도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잔뜩 긴장해 불 얘기, 연기 얘기, 다운타운의 소방서를 입에 올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속보로 다른 화면을 보여 주는데 어떤 검은 물체가 건물에 부딪치며 화염에 휩싸였다.
그 장면이 너무 비 현실적이라 마치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설명은 비행기가 월드 트레이드 센터와 충돌을 했다는 거였다.
그 동네가 원래 헬기 이착륙이 많은 곳이긴 하지만 비행기가 부딪친다는 건 정말 믿기 힘든 일이었다.
마침 그 동네의 건축회사에서 일하는 오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형님 그 동네 괜찮아요?"
"여기 난리도 아니다. 뉴욕 경찰차, 소방차는 다 온 거 같아."
나는 TV 화면으로 월드 트레이드 센터를 보고 있었고, 형님은 10 블락도 안 떨어진 빌당을
육안으로 보고 있었다.
형은 건축가답게 고층 빌딩에서 화재 발생 시, 공사비 이야기를 했다.
그때였다. 형과 나는 동시에 고함을 지르고 말았다.
건물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초고층의 자취.
이런 일이 뉴욕에서 벌어지다니..
우리 둘은 서로 신음만 내뱉다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후 맨해튼으로 향하거나 나오는 교통이 단절되었다.
생사를 확인해야 하는 사람들의 전화는 통신 두절됐다.
강 건너 뉴저지에 살던 오 선배는 걸어서 새벽녘에야 집에 도착했다.
회색빛 재를 뒤집어쓴 뉴요커들이 멍한 눈에 지친 몸으로 거리에 누워있고,
피난민처럼 떼 지어 다리를 건너는 뉴요커들의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봤다.
하루종일 내 눈을 의심했다. 거짓말 같았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났다.
애써 외면하던 911 박물관에 다녀왔다.
어딘가 가라앉아 있을 상처가 터질까 두려웠다.
박물관에 들어서자마자 앙상한 잔해와 마주치며
화부터 났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극장으로 들어 가 15분 길이의 짧은 다큐멘터를 봤다.
화의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수많은 테러 위협을 몰랐거나 무시했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무용담처럼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 그리고 그의 사람들.
테러 이후에는 전쟁이 시작됐다. 더 많은 희생이 따랐다.
죽은 자들만 불쌍하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었다.
그때 그 순간, 그대로 시간이 멈춰 버린 듯한 장엄한 공간을 지나 전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전시장은 급박했던 상황을 시간별로 따라가다가,
주인을 잃은 희생자들의 소지품이 전시된 방에서 끝난다.
슬픔을 억누르기 힘든 박물관이었다.
전시장에서는 엄격히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사생활 보호와 조용한 추모를 위한 배려인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밝혀진 사실은 그날 테러로 인한 사망자 수는 약 2,977명이다. 이 숫자에는 세계 무역 센터(WTC)에서의 사망자, 워싱턴 D.C. 근처 펜타곤에서의 사망자, 펜실베이니아주에 추락한 유나이티드 항공 93편의 승객들이 포함되어 있다.
사망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부상당했으며, 구조 작업과 잔해 청소 과정에서 건강 문제를 겪은 사람들은
아직도 고통을 받고 있다.
한 순간에 가족을 잃은 사람들. 아침에 직장을 가고 학교를 가는 가족을 보며
영원히 못 볼 얼굴이라고 생각이나 했을까?..
이제는 가족의 간절한 후회만 남아 있다.
매년 9월 11일이 되면 모든 메이저 방송에서 추모 행사를 생중계한다.
가족 대표들이 나와 희생자들의 이름을 빠짐없이 한 명 한 명 부른다.
갓난아기였던 희생자의 아들이 이제는 성인이 되어 아버지의 이름을 부른다.
너무 늙어버린 어머니가 딸의 이름을 부른다.
가족들은 젊을 적 얼굴 그대로인 형, 언니, 동생의 이름을 부른다.
그렇게 외쳐지는 가족의 이름들.
눈물 묻은 그들의 목소리는
그날을, 그들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각오다.
그리고 그 각오는 절대로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는
굳건한 다짐으로 맹세된다.
미국인들의 추모는 자신들과의 약속이다.
그들은 알고 있다.
비극이 되풀이될 때 더 큰 비극이 된다는 것
그 비극을 끊으려면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