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시작이다.
병원에서 실습 중인 아들이 첫 분만실 근무를 마쳤다.
19년 전, 아들을 처음 만난 분만실에서의 기억이 생생한데
그 아들이 분만실 경험을 했단다.
그러니까 산모가 아기를 낳는 모습을 목격한 것이다.
고작 대학교 2학년 19살 아이가 분만실에서 무슨 일을 할 수 있었을까?
내 기억 속 분만실은..
비명 소리.
빨리 끝내고 저녁 먹으러 가자던 의사.
그 옆 무지 바빠 보이던 간호사들.
안절부절 못 하는 남편인 나.
아들이 분만실에서 어떤 경험을 했을지 궁금했다.
미리 정신 교육을 받아서인지 별로 떨리지는 않았단다.
혈압계 정도를 보며 서 있으면 되는 게 임무였단다.
뭐.. 걸리적거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니었을까!
그러나 인생, 그게 그렇게 예상대로 돌아 갈리 없다.
산모는 첫 출산이었고 당연히(?) 남편도 첫 경험.
그리고 산모의 어머니까지 분만실에 같이 있었는데,
하필 난산이었단다.
무슨 일인지 세상 구경하기 싫은 듯 뱃속 아기가 자꾸 방향을 바꿨단다.
의사는 아기의 방향을 바꾸려고 시도했지만 연달아 실패.
산모의 비명은 한 없이 커지고 있었다.
남편과 같이 산모의 손을 잡고 있었던 아들은 산모의 한쪽 다리를
붙들고 있어야 했다. 다른 한쪽은 물론 남편 몫이었다.
산모는 지쳐갔고,
출혈량이 많아지며 사태가 심각해 보이는 상황이 되었단다.
황급히 등장한 의사가 4명.
뭔가 일이 심상치 않게 돌아간다는 것은 누구나 눈치챌 수 있었다.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산모 옆의 남편이 울음을 터트렸다.
산모의 어머니는 놀라서 입조차 못 열며 기도를 했다.
일순간에 분만실은 긴장 가득한 혼돈 상태로 빠져 들었다.
속닥거리 듯 이야기하던 의사들이 제왕절개수술로 계획을 바꾼다.
얼떨결에 응급 수술실로 따라가게 된 아들.
어느 누구고 따라오라고 한 사람은 없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단다.
태아가 자칫 위험에 빠질까. 산모에게는 전신 마취도 할 수 없었다.
Epidural (부분 마취제)가 투여됐다.
급격히 혈압이 떨어질 수 있는 위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산모의 어머니는 수술실에 들어 올 엄두도 못 냈고,
수술실의 남편은 거의 실신 직전이었단다.
정신없는 가족들에 비해 의료진은 빠르게 움직였고,
배를 절개하고 자궁을 절개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 아들.
첫 실습에 너무 많은 경험을 하게 된 아들.
그리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 낸 아기.
아기를 꺼내 든 간호사는 울지 않는 아기를 때리고 때려서 울렸단다.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고 시행된 봉합 수술.
가장 시간 소비가 많았던 건 수술에 사용된 거즈(Gauze)의 수를 세는 것이었단다.
출혈이 많아 거즈를 많이 사용했고 혹시라도 산모의 몸속에 남아있을,
우려 때문에 거즈의 수를 꼼꼼히 세어야 했단다.
확인의 확인 끝에,
숫자 세기가 끝나고 봉합 수술을 할 수 있었단다.
수술실을 나오고 나서도 조금 전, 무슨 일을 겪은 건지 실감을 못했다는 아들.
그러고도 이어지는 실습실 생활.
첫 실습을 독하게 해서인지 병원에 나름 익숙해지고 있단다.
수술이 끝나고 3주 정도가 지난 지금,
산모와 아기 모두가 건강하다고 한다.
아들의 분만실 실습 이야기를 듣고 보니,
쉽지 않은 상황을 버틴 것이 대견스럽기보다는 신기했다.
내 아들이 이런 경험을 했다고?
기절 안 하고 버티었다고?
피라면 질색을 하는 아빠가 아들에게 심각하게 물었다.
"네가 앞으로도.. 계속할 수 있는 일 맞아?"
"할 수 있지 그럼.." 아들의 빠른 대답이 돌아왔다.
우려 끝에 아빠가 덧붙인다.
"의사는 할 사람이 해야 하는 거야.. 능력은 당연하고.. 적성도 맞아야지."
아빠라면 절대 못 할 일을
아들은 매일 배우며,
자신을 테스트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들에게 건투를 빈다.
얼떨결에 어른 나이가 되어,
군인의 앳된 얼굴을 볼 때면 애틋한 마음이 들었는데,
곧 의사에게도 그런 마음이 들까 싶다.
(지난 글에 나의 분만실 경험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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