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 많은 아기
예정일이 지나도 아기는 얼굴 보여 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뱃속의 아기가 너무 자라면 산모가 힘들어진다는 의사의 견해에 따라 유도분만 결정이 내려졌다.
영화에서 본 것처럼 급하게 119를 부른다거나 남편이 산모를 업고 병원으로 뛰는 장면은 일어나지 않았다.
저녁 무렵, 짐 챙겨 약속한 시각에 병원에 도착했다.
집을 떠나기 전에 기념사진까지 찍는 여유도 보였다.
병실에 도착해서는 의사와 간호사가 오가며 아내의 상태를 살폈다.
희한하게 병원에 도착 한, 밤부터 아내의 진통이 시작됐다.
다음 날이 되고 아내는 분만실로 옮겨졌다.
묻지도 않고 나에게 가운을 입힌다. 멍하게 간호사를 쳐다보니..
닥치고 하라는 대로 하라는 표정이었다. 아니 내가 뭐라고 했습니까!
그리고 얼떨결에 분만실 행..
진통이 오가는 아내 옆에서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어 책을 읽었다.
오래 읽을 수 있는 책을 가져간다며 잡은 책이
"현대 방송의 이해"였다. 도대체 방송을 왜 이해하려 했을까?
아직도 의문이다.
진통이 점점 심해지는 아내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저 손을 잡고 있을 뿐.. 대화를 할 상황도 아니다.
오가는 간호사들은 멀뚱히 서 있는 나를 가구 취급해 줬다.
오후 2시쯤이 되며 갑자기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의사가 들어오고
간호사가 3명으로 늘었다.
나는 아내의 머리맡에 서있다가 아내의 손을 잡았다.
아내를 위한 손 잡이가 아니고 나를 위한 행동 이었다.
고통으로 일그러지는 아내의 얼굴. 그 얼굴을 흉내 내 듯하는 내 얼굴.
현기증이 나고 귀에서는 이명이 들렸다.
근데 이 애는 왜 이리 안 나오는 거야!
조금만 더 힘쓰자! 거의 끝났다! 한번 더! 그렇지 그렇게!
잘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된다!
분만실만 아니라면 어느 체육관에서 들을 수 있는 응원의 소리가
의사와 간호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나는 속으로 파이팅! 을 외치고 있었다.
문득 이 상황을 사진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온 아기의 모습을 찍어뒀다가..
이다음에 자식이 말을 안 들으면 엄마, 아빠 고생한 그날을 얘기하며
협박을 해야겠다는.. 지극히 아빠다운 생각..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라서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를 때였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듯한 아기를 의사가 거꾸로 잡고 있고..
아기는 세차게 울었다. 간호사 두 명이 아기를 수건으로 감싸고..
동시에 다른 간호사가 나의 손에 가위를 쥐여준다.
그때 나는 남은 정신줄도 놓아버리고..
눈물, 콧물이 섞여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간호사가 여기라고 소리 지르는 바람에 멍하니 탯줄을 잘랐다.
리본 커팅식이 연상됐던 건.. 제가 철이 없어서..
아무튼 이런 이벤트 미리 얘기해 줘야 되는 거 아닙니까?
미리 이야기를 했다고 해도 기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희미하게 본 아기는 사내아이였다.
그때서야 언제 놓았는지 모를 카메라를 쥐어 들고 셔터를 누른다.
프로페셔널 맞아?
부끄러워서 모습을 안 보여주던 아기라던 의사가,
이제는 시끄러운 아기라고 얘기할 정도로 아기는 계속 울어댔고,
간호사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아기의 몸무게를 재고 발 지문을 찍고..
모든 일이 착착 진행되는 모습이 어느 공장의 프로세스 과정처럼 보였다.
분만실에서 눈물, 콧물 흘려가며 감동받은 사람은 아내와 나뿐이었다.
아기조차도 아기 같이 안 생겼다.
무슨 굼벵이 같기도 하고, 본 적 없는 외계인 같기도 하고..
아무튼 영화에서 익히 보아 온 그런 아기의 모습은 아니었다.
아내가 손가락, 발가락 숫자를 세어 보라고 명령했다.
손가락, 발가락 숫자를 세어 본 후에 우리는 안심을 했다.
산모가 쉬기 위해 아기는 수유 시간을 제외하고는 신생아 실에 머물렀다.
아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고 삼 일째였다.
나는 신생아 실 밖, 유리창을 통해 아기를 쳐다보고 있었다.
비슷비슷하게 생긴 아기들 중에서 어렵게 아기를 찾았다.
아기가 바뀌지 않도록 태어나자마자 정보 팔찌를 채우긴 했지만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
믿거나 말거나 신생아들.. 인종에 상관없이 비슷비슷하게 이상하게 생겼다.
나는 아기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다짐을 하고 있었다.
좋은 아빠가 되겠습니다. 지혜로운 아빠가 되겠습니다.
잔소리 안 하는 아빠가 되겠습니다.. 대충 그런 내용이었던 거 같다.
인기척에 옆을 보니 어느 틈엔가 아내가 옆에 서 있었다.
"여기서 뭐 해?" 아내가 묻는다.
혼자 중얼거린 게 창피해서..
"아무것도 아니지 뭐.. 그냥 우리 애 보고 있었지.." 얼버무렸다.
아내가 한심하다는 듯 쏘아본다.
그리고 더 한심하다는 말투로 말한다.
"우리 애 여기 없는데.. 삼일 됐다고 윗 층으로 옮겼는데.."
"아! 쉬 내 애를 언제 옮겼어!" 뒤늦게 화를 내본다.
그건 그렇고 간절히 바라보던 그 아기는 누구의 아기였을까?
병원에서 느꼈던 인상적인 것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는 한국의 사정은 잘 모르지만
이곳에서는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우리가 미리 정했던 소아과 의사가 산부인과로 와서,
아기를 전담했다.
퇴원 전에는 산모와 아빠를 따로 불러 신생아를 다루는데 필요한 교육을 시켰다.
30분 남짓한 시간 동안, 아기를 달걀 다루 듯해야 하고 절대로 아기를 흔들면 안 된다는 것,
위생을 철저히 하라는 것, 중요한 예방 접종 스케줄 같은 것들을 설명해 주었다.
아내와 나는 선생님 앞의 유치원생 같이 눈만 껌벅이며 Yes.. Yes 만 거듭한 시간이었지만,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을 배우는 좋은 기회였다.
두 번째는 퇴원 시, 아기의 부모가 차량용 유아 카시트(Baby Car seat)를 꼭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병원 관계자가 꼼꼼히 카시트를 확인 후에야 퇴원을 시켰다. 카시트가 없으면 퇴원을 안 시켜준다.
생전 처음 유아 카시트를 사러 간 나.
좋은 걸 사야 하는데 뭐가 좋은지 알리가 없다.
그렇다고 무조건 비싼 거 사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는다.
사용해 볼 수도 없고.. 아기를 앉혀 볼 수도 없는 상황.
안전이 최고인데.. 시험을 해볼 수도 없잖아.
보는 사람만 없으면 전시되어 있는 카시트를 차례로 집어던져 내구성을 시험해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빠가 처음이라..
결국에 선택한 카시트는 쿠션이 제일 많이 붙어있는 제품이었다.
카시트 없이는 절대로 아기를 데리고 퇴원할 수 없다는 뉴욕의 병원..
기억에 남습니다.
나이를 7주 정도 먹으니 아주 조금 사람처럼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