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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수 먹고 속 차려야겠네

by 김주원

아내와 연애 시절, 처남의 결혼식 때 나는 쭈뼛쭈뼛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참석을 했었다. 연애시절이라 아내의 가족들을 본다는 생각에 부담도 되고 긴장도 많이 했었다.


당시만 해도 여친 신분이었던 아내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많이 하지는 않았던 상황이라 다들 처음 만난 상황에서 변변치 않은 내 모습에 많은 실망을 한 듯한 뉘앙스가 느껴졌었다.


특히나 처형은 나를 보자마자 아내에게 냉수 먹고 속 차리라는 말을 했다. 나이 차이 나는 연애는 이래서 힘들구나 싶었다. 나는 애드립이 약했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도 그냥 "미인이십니다!!"만 연발했다. 빈말이 아니고 진짜 미인이어서 진심으로 나온 말이었다.


연애 초반에 나와 아내의 만남을 그렇게 말린 사람도 처형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해가 갔다. 장인어른과 장모님께서 8살 차이가 났고, 처형과 손윗동서 형님 역시 8살 차이가 났기에(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음을 살면서 느꼈기에) 막둥이 아내만큼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 남친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던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미 아내는 나에게 푹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고...


아무튼 처남 결혼식 때 냈던 축의금은 얼마 뒤에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어떤 의미인지는 대충 전달이 됐기 때문에 씁쓸했지만 이내 그 돈으로 뭘 할까 하다가 아내와 나는 아웃백에 가서 스테이크를 맛있게 사 먹었다.


다 지난 일이라 딱히 나쁜 기억은 없다. 오히려 이해가 갔고 나 같아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와 아내의 삶을 누구보다 지지해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바로 처형이다. 이래서 인생이 재미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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