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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식사 5분 컷

by 김주원

*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은 아님을 우선 알려드립니다.


제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공단 내에 위치한 작은 제조업체인데요. 제 기준에서 우리 회사의 장점 중에 하나를 꼽으라면 점심식사 시간이 11시 50분부터 시작되는 겁니다. 10분 더 주어지는 점심시간이 얼마나 큰지는 입사하자마자 바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리 회사는 직원 수가 얼마 되지 않아서 11시 50분 땡 하면 곧바로 승합차 1대에 우르르 타고 3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한식 뷔페식당에 가서 식사를 합니다. 반찬은 5~7가지가 나오고 가끔 국밥이나 수육 같은 특식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참고로 저는 상상이상으로 단순한 동물이라 밥 잘 나오고 집 가까우면 좋은 직장이라 생각합니다.


게다가 남자만 있는 회사라 밥 먹는 속도도 경쟁입니다. 다들 자기 식판을 테이블에 놓고 수저를 들자마자 흡입하기 시작하는데 마치 경마장의 경주마를 방불케 합니다. 우즈벡 출신 직원 2명도 처음엔 숟가락, 젓가락질이 서투르고 밥 먹는 속도도 느려서 애 좀 먹는 것 같았는데 이제는 몇 개월 지났다고 국에 밥을 말아먹질 않나 김치도 곧장 잘 먹더군요.


아무튼 저도 처음에는 밥 먹는 속도를 못 따라가서 애 좀 먹었었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음식 맛 따위 트림할 때 느껴보리라, 소화는 위장이 알아서 해주리라 믿고 입에다 쑤셔 넣기 바빴습니다. 물론 5분 내로 식사가 끝나더군요. 다 같이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 12시 5분이 채 되지 않습니다.


점심 식사 후 1시까지 남은 시간이 무려 50분이 넘습니다. 회사 탕비실에서 제가 좋아하는 초코음료를 하나 들고 나와 제 차로 갑니다. 차 안에는 항상 읽고 있는 책이 한 권 있는데요. 들고 온 음료수를 마시며 졸리기 전까지 대략 20분 정도 독서를 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12시 30분쯤 되면 눈이 감깁니다. 아마도 5분 만에 먹은 밥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밥을 빨리 먹는 습관은 건강에 안 좋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차 한 대로 회사 직원이 다 같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데 저 혼자 밥을 느리게 먹는 것도 굉장한 부담이 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이번 달부터 평소보다 먹는 양을 줄이게 됐습니다. 밥 양이 줄어드니 소화도 잘 되고 자연스럽게 제 몸무게도 줄어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이따금씩 뉴스로 접하게 되는 직장인들의 삶 중에 점심시간 짬을 내 자기 계발을 빡세게 하는 수도권 회사원을 동경해보기도 했지만 저는 지금의 점심시간을 만족해하며 살고 있습니다. 10분 일찍 식당에 가서 5분 만에 밥 먹고 회사로 돌아와 차 안에서 책 좀 읽다가 잠드는 점심시간 말이죠.


밥반찬이 별로라고 투덜대는 직장 동료도 있지만 저는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다 보니 남들이 불평하는 환경도 저에게는 그렇게 좋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제 때 밥 먹을 수 있는 것 자체로도 감사해하는 단순한 감정에서 제 나이 40 이후의 행복을 세팅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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