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내와 대판 크게 싸웠었습니다. 정말 사소한 일이 불씨가 되어 서로의 케케묵은 감정까지 다 쏟아낸 것인데요. 일단 원인은 저의 말투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토요일 근무가 있어서 회사에 갔던 날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리고 바닷가로 낚시를 하러 갔었죠. 일을 마치고 오후 3시쯤 집에 와서 잠깐 기다리니 아내와 아이들이 도착하더군요. 잡은 물고기를 보여주며 한창 자랑을 하는 아이들과 아내에게 매운탕을 끓여주기 위해 저는 생선을 손질했습니다.
미리 만들어 놓은 육수에 무를 썰어 넣고 고추장과 된장을 적절하게 풀어넣고 간 마늘과 파, 두부 등을 넣어 대충 매운탕을 내어 놓으니 잘 먹더군요. 그러는 사이에 아내가 '잡아온 물고기 통 좀 정리해 주지'라며 지나가는 말투로 저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는 피곤하기도 했고 매운탕 끓이느라 정신없어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네가 한 취미 생활을 내가 정리해 줘야 되냐?"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내가 한참 멍하니 서있다가
"... 재수 없어."라며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처음에 그게 그냥 마음 상할 일은 아니고 제 말이 재수 없어서 맞받아친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아내가 저를 대하는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화가 난 포인트가 낚시 도구 정리를 안 해준 것에 맞춰져 있어서 저도 저 나름대로 뭔가가 계속 서운했습니다. 대화단절은 다음날까지 이어졌습니다.
다음날은 아이들과 대구 이월드에 가기로 한 날이었습니다. 저는 화해의 제스처로 자고 있는 아내에게 비가 안 온다며 얼른 가자며 깨웠습니다만 아내는 대꾸가 없더군요.
아이들은 일어나서 저에게 다가와 이월드에서 어떤 놀이기구를 탈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재잘댔는데 저 역시 기분이 그렇게 유쾌하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에게도 영혼 없는 대꾸만 해댔습니다.
10시쯤 아내는 일어나서 이월드에 갈 준비를 하더군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아빠 빼고 셋이서 가자'는 말을 듣고는 저도 그만 쌓였던 화가 폭발해서 말했습니다.
"도대체 왜 그러는데?"
아내도 할 말이 쌓여 있었는지 화를 내며 말했습니다.
"오빠는 내가 왜 이렇게 화났는지 모르나?"
"어제 낚시 장비 정리 안 한 것 때문에 화가 난 거 아이가?"
"아이다. 내가 그것 때문에 화난 거 같나? 니는 내가 아이들이랑 낚시 간 게 취미 같아 보이드나? 오빠야 니가 그 상황에서 통 안에서 생선 빼고 난 뒤에 통만 좀 헹궈줬어도 내가 그런 말 했겠나?"
그 말을 들으니 제가 포인트를 잘못짚은 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이미 둘 다 화가 나 있는 상태였고 저도 그 상황에서 지기 싫은 감정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취미라고 한 거는 내가 잘못 말했다. 미안하다. 근데 나도 화가 난다. 내가 언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왔든 내 물건, 내 장비를 니보고 정리해 달라고 한 적 있었나?"
이러면서 저도 제 딴에는 서운했던 걸 뱉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미쳤던 거죠. 아내는 잠자코 듣다가 한 마디하고는 아이들과 나가버렸습니다.
"니 혼자 잘 먹고 잘 살아라."
'쾅'하는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 안은 적막으로 가득 찼습니다. 할 말은 다 해서 속은 시원했는데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슬슬 비워둔 속마음에 차기 시작하며 아이들의 서먹한 표정이 머릿속에 떠나질 않았습니다. 부부싸움은 아이들 보는 앞에서 하는 게 아니라지만 이번엔 눈앞에 뵈는 게 없었는지 아이들 보는 앞에서 그렇게 싸우게 됐으니 아이들 걱정이 되는 건 당연했나 봅니다.
얼른 내 잘못을 빌고 화해를 하기 위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지만 아내와 아이들은 이미 대구로 떠난 뒤였습니다. 왠지... 오늘 안에 서로의 앙금을 풀어야 될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이 들어 곧바로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동대구로 가는 가장 빠른 열차표를 알아보고 바로 티켓을 샀습니다.
동대구로 가는 동안 저는 몽상가답게 별의별 상상을 했었는데요. 이런 일로 이혼해 버리고 늙어서까지 아이들 얼굴도 못 보고 객사하는 인생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또 다른 상상으로는 막상 이월드로 갔는데 사실 이미 이 일이 있기 전에 제가 죽어버렸기에 아내와 아이들이 나에 대한 존재도 까먹어버리는 상황도 그려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상상은 이월드에서 극적으로 화해하며 부둥켜안는 것이었습니다. 이런저런 상상들을 했지만 결론은 마지막 상상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동대구역에 내렸습니다.
역 밖을 나오니 제 기분과 비슷한 스산한 날씨가 뼈속에 스며들었습니다. 그래도 아내의 기분을 풀어주려는 생각 반, 놀라게 해주려는 생각 반으로 지하철을 타고 이월드로 향했습니다. 촌놈은 지하철을 탈 때마다 뭔가가 신기합니다. 스크린 도어에 정확하게 정차해서 열리는 문조차 신기합니다.
한 번 환승 후 집에서 출발한 지 2시간 만에 이월드에 도착했습니다. 혹시 모르는 가능성을 대비해 주차장에 가보니 어렵지 않게 우리 차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안도의 한숨을 쉬고 곧바로 표를 끊고 입장했습니다. 마음이 급했지만 표를 끊을 때 통신사 멤버십 40% 할인은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자, 이제 이 넓은 놀이공원에서 아내와 아이들을 찾아야 합니다. 여태껏 아내와 아이들이 놀이공원 어디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는지 기억을 끄집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 추리를 해나갔습니다.
아이들은 키가 작아 놀이 기구를 타는 것에 제약이 많다.
셋 다 인형 뽑기를 좋아한다.
점심때가 조금 지난 상태라 식당 근처에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 이월드의 식당 근처 뽑기 기계가 있는 곳 주변부터 찾기 시작했는데 시작하자마자 바로 낯익은 실루엣 셋이 동전교환기 앞에서 고개 숙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라는 존재, 약간은 단세포생물과도 같아서 이미 머릿속에 화는 풀려 있는 상태였고 곧바로 몰래 다가가 놀라게 할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아내 뒤로 몰래 다가가 어깨동무를 하고 "저기요"라며 눈을 마주쳤습니다. 아내와 아이들 모두 "네가 왜 거기서 나와?"라는 표정으로 눈이 동그랗게 뜬 채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상황파악이 됐는지 본인도 화가 풀렸는지 저를 와락 끌어안더군요. 혼자서 투정 부리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서 제 생각이 나더라면서요. 그 말에 살짝 눈물이 핑 돌았지만 꾹 참았습니다.
저도 주변 시선 상관 안 하고 같이 껴안아주면서 "내가 미안하다."라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아내와 저 이렇게 둘이서 안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새 아이들도 같이 안아주고 있더군요. 뭔가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배에서 '꼬르륵'소리가 요동을 쳤습니다. 오후 3시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온 터라 근처 식당에서 간단히 사 먹었고 이후로 놀이기구도 신나게 탔습니다.
해 질 녘 빗방울이 거세지면서 예정보다 일찍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내와 저는 서로가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 차분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정말 별거 아닌 걸로 싸우게 된 거고 당시에 제대로 대화만 했더라도 크게 언성을 높이는 일은 없었을 텐데라며 서로에게 사과와 용서의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했던가요? 순간 욱했던 제 잘못도 있었고 아내가 화가 난 상황도 심각했었지만 싸운 뒤에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솔직하고 자세하게 말할 수 있는 게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기회가 아니었다면 평생 마음에 담아두다가 전혀 생뚱맞은 상황에서 더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서운한 마음, 화를 내야 되는 상황이 온다면 바로바로 대화로 해결해야겠다고 느꼈던 이틀간의 에피소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