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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Jul 13. 2024

스무 살에 바라본 40대와 지금 내가 직면한 40대

스무 살,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캠퍼스의 낭만과 함께 찾아온 공동체 생활에서 우리는 아주 커다란 존재를 만나게 됩니다. 바로 선배인데요. 그때는 왜 그리도 한 학번 차이마저 크게 느껴지던지 스물한 살의 선배들은 정말 어른스러웠고 모든 걸 할 줄 아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밖에 나지 않지만요.


이렇게 한 학번의 차이도 멀게 느껴졌었는데 우리는 더 큰 존재를 만나게 되네요. 바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복학생 형들입니다. 2학년으로 복학한 형들의 나이는 대부분 24살 정도였는데요. 와, 이 사람들은 무슨 가정이 있는 사람들처럼 성숙하고 나이 들어 보이고 세상 물정에 통달한 사람처럼 보이더군요. 역시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밖에 나지 않네요.


저는 대학생 때 밴드 동아리 활동을 했었습니다. 매년 가을이 되면 가족제라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역대 기수 선배들도 모여서 이야기도 나누고 술도 마셨는데요. 처음 맞이하게 된 가족제에서 저보다 나이가 두 배, 그러니까 마흔 살을 넘긴 선배들도 많이 오셨습니다. 선배들은 가족제에 와서 좋은 말씀도 많이 해주시고 악기나 앰프 같은 공용으로 사용하는 장비들 사는데 보탬이 되라고 찬조도 해주셨죠. 


다들 아시겠지만 동창회든 가족제 같은 행사든 어느 정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분들이 자신의 모교, 학과, 자신이 속했던 동아리에 추억을 느껴 찾아오시는데요. 제가 스무 살이던 그 당시에 마흔 살을 넘긴 그분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아득하고 멀었습니다. 회사로 치면 직원의 이름도 모르는 사장과 새로 들어온 사원정도의 관계랄까요?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자신들의 삶의 여정을 이야기해 주시는데 사업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다들 파란만장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분들은 뭔가 세상에 통달한 도사처럼 느껴지기도 했었죠. 그때는 40대가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었네요.


그런데 막상 제가 그분들과 똑같은 나이가 되고 나니 뭔가 묘했습니다. 나는 아직 유치한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마음은 아직 대학생 때 머물고 싶은데 벌써 누군가에게 인생을 이야기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됐다니 말이죠. 그리고 약간의 좌절감도 생겼습니다. 가족제에 가서 동기들과 선후배들과 만나서 즐겁게 이야기 꽃을 피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내 처지에 그러는 건 사치 같아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동아리 생활의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마음 반대편엔 '혼자 가서 뭐 해?', '젊은 애들 노는데 늙다리가 껴서 뭐 하게?'라는 생각이 올라오더라고요. 그리고 이제 나이가 드니 그런 모임엔 찬조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만 남게 되더군요. 잘 나갈 때는 부담 없이 참석했던 모임이었는데요. 인생의 바닥을 찍은 시점에서는 그런 모임에 갈까 말까 하는 고민보다 더 먼저 찾아온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인간관계의 확장을 더 이상 원하지 않는다는 제 내면의 외침이었습니다. 역시나 경제적인 이유가 제일 컸습니다. 서글프게도 말이죠.


스무 살 때 만나 뵀던 그 선배들은 벌써 환갑이 지났겠군요. 40대 초반에 모든 걸 이룬 사람들의 눈은 확실히 온화해 보였고 안정적으로 보였습니다. 저의 40대는 이제 세상에 뛰어든 사람처럼 불안한 눈빛인데 말이죠. 시대는 이렇게 40대도 사춘기에 들 수 있게 해 주네요. 불안하고 불완전했던 청춘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리는 설렘인지 아직 분간이 되지 않네요.


경제적 부담이나 제 내면의 외침과는 반대로 어쨌거나 올해는 꼭 가족제에 동기 녀석들과 참석해 볼까 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 같은 애송이 어른도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좋은 것만 보면서 꿈을 키워야 할 젊은 후배님들에게 이런 불량 식품도 있으니까 조심하라며 제 이야기도 들려주고 싶군요. 그리고 저는 제가 부담을 느낄만한 것들에 직면해서 정면 돌파를 시도하면서 이 느낌이 새로운 인생의 막이 열리는 설렘으로 방향을 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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