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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여름 May 17. 2024

7. 미루자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내 인생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태도

누구나 미룬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좀 많이, 그리고 오래 미룬다. 미뤄서는 안되는 일들까지도 미룬다. 데드라인까지 내야되는 서류 한 둘을 안 내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자기 되기를 미룬다. 그리고 미루기는 습관이 된다.


미루기는 감정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미루기를 하는 사람들은 저울질을 잘 하는 사람들이다. 저울의 한쪽 끝에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을 때의 평온한(진짜 평온한 것은 아닌) 감정이 있다. 저울의 다른 쪽 끝에는 이 일을 하지 않았을 때의 끔찍한 결과가 있다. 대체로 미루는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 지나 마지막 순간이 될 때까지, 그래서 지금의 평온한 감정이 줄고 줄어 콩알만해지고 가벼워져서 저쪽이 아주 처질 때까지 기다리는 성향이 있다. 몇가지 훈련을 더 하면 끔찍한 결과의 감정을 지금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조금 더 빨리 무거워지게 할 수 있다. 잘 미루는 사람은 그 결과가 왔을 때의 감정을 지금과는 완전히 분리된 상태로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 정도가 되면 이제 진짜 일을 시작해야만합니다

나는 어렸을 때는 취미를 가지는 것을 미루었다. 취미를 가지면 공부할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취미가 주는 주관적인 재미의 영역은 눈에 보이는 성적 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취미, 연애, 우정 등 수치나 결과로 환산되지 않은 그러나 인생을 구성하는 필수적인 많은 것들은 대학 이후로 미루어졌다. 


대학을 와서는 진로를 탐색하는 것을 미루었다. 대학 전체의 시간이 어릴적 미루었던 삶의 즐거움을 찾는데 쓰여졌다. 일은 즐거움과 정반대의, 어떤 고통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고통에 대해서는 웬만하면 생각하지 않고 싶었다. 4학년이 되자 허겁지겁 일을 찾기 시작했다. 일이 내 내면의 가치, 혹은 내가 되고 싶은 어떤 사람이 되는 '길'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한국을 떠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엔지니어가 되면 그 길이 유일하게 가능할 것 같았다.


엔지니어가 되자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다. 나는 일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괴로울 줄은 몰랐다. 5년 혹은 7년을 버텨야 호주로 갈 수 있는 자격이 된다는데, 그걸 버티다가 매일의 스트레스가 너무 과해서 면역계에 이상이 왔고 결국 이유를 알 수 없이 온 몸에 발진이 생겼다. 이러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하루도 더 낭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루기를 단번에 멈추고 회사를 그만두었다. 여행사에 취직을 했다.


여행사에 취직을 하고 출장을 다니는 일은 즐거웠다. 그러자 통장 잔고 보는 것을 미뤘다. 즐거움과 고통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일터'로 돌아가면 고통이 있을 것이고, 그것은 너무 고통스러워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모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혹은 현실적으로 볼 수 있는 필터가 없던 때였다. 어찌어찌 즐거우면서 돈도 어느 정도 받을 수 있고 커리어 개발도 가능한 일자리를 찾았다. 무엇보다 출근이 너무 죽을것 처럼 힘들지 않은데 이게 일이라는 사실이 믿을 수 없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도 보통사람처럼 살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덜컥 겁이 났다. 이게 다인가?

저도요...

미뤄왔던 외국에 가고 싶은 꿈이 떠올랐다. 나는 외국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20대 초반 해외여행을 다녀오던 시점부터, 한국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 고통은 언젠가는 벗어날 것이고 내 고통이 아니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캐나다로 오고 나서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과제를 끝내야만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과제를 끝냈다.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있는 익스큐즈가 없다. 그래서 나는 드디어 미뤄두었던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쓸때마다 두렵다. 내가 쓰는 글이 충분히 재미있고, 또 충분히 의미있다고 스스로 믿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원래 시간은 걸리는 만큼 걸리는 것이고 그것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심리상담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훨씬 더 오래 걸렸을 것이다.


내 삶에 책임을 지지 않고, 마치 남의 인생을 구경하는 태도로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어차피 내가 선택한 것은 없으니 망하나 마나 내 책임이 아닌 것이다. 어디에 있어도 한 발짝 빼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잘 안 되면 빨리 도망가게. 그러나 인생은 두 발 다 꾹꾹 누르고 산 것만큼 얻을 수 있는 무한한 주관의 세계다. 제3자의 눈으로 바라보듯 사는 것은 살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떻게 되나 지켜보자라는 태도로 내 삶을 지켜봐왔다는 것 자체가, 내 삶이 진정하게 내 마음이 이끄는대로 선택하지 않았으며, 어떤 보이지 않는 박스안에서, 보이지 않는 끈에 이끌려 살아왔다는 증거이다.


미루는 것은 공포가 너무 크기 때문이었는데, 미루던 것을 하나씩 해봐도 별로 큰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지난 몇년간은 그걸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과정이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싶은 것'은 아이적인 것이고, 어른의 삶은 고통스럽지만 감내해야 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엄마와 아빠가 살아낸 세계였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나는 엄마가 살았으면 하는 삶의 방식을 내재화한 채 당연히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더 많은 교육을 받았어도, 직업은 '돈 버는 일' 이상이라는 생각을 벗지 못하고 직업을 대했다. 내가 그렇게 대하니까 정말 직업은 나에게 돈 버는 일 뿐이었다. 양자역학에서 세계는 관찰자가 관찰당하는 것과 분리될 수 없다고 한다. 둘은 서로의 존재에 영향을 미친다. 삶은 정말 그런 것 같다. 1만 내주면 1만 돌려준다.


엄마는 한 때 이런 말을 했다. 아직도 18살 같은데, 거울을 보면 너무 늙어버렸어. 시간이 이렇게나 빨리 가다니. 나는 그말이 농담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이가 지나고 보니 나도 한 27살쯤에서 멈춰춰있다고 느낀다. 그런데 겉모습만 나이들어버렸다. 그러니까 아이인 모습은 언제나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누구나 죽을 때까지 아이의 마음을 버릴 수 없는 것이라면, 아이의 마음으로 삶의 여러가지를 선택해도 괜찮은 것 아닐까? 


괜찮은거 아닐까?

캐나다에 온 것이 바보같은 일이라는 생각을 아직도 가끔 한다. 첫 직장이던 대기업을 다니던 일을 그만둔 것도 바보같은 일이었다는 생각을 아직까지도 종종 한다. 대체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며 사는데도. 나는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내가 하고 싶었던 '유치한 일'을 내 인생을 걸고 해냈다. 그 일이 어떤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는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내 마음대로 결정해서 해봤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내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해봤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 나를 혼자서 생각하고 결정하고 책임지는 성인으로 만든 주춧돌 같은 선택 중 하나라는 것 만으로, 그 의미는 충분하다. 


인생을 즐거움 만으로 가득 채울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반대로 당연히, 인생이 꼭 고통만으로 가득차야 될 필요도 없다. 인간은 누구나 진정한 자기의 모습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낼 때 가장 편안하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만족스럽고 멋진 삶을 산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인생은 무한한 주관성의 영역이며, 나는 아직도 가끔은 그것을 까먹고 스스로를 탓하고 또 가끔은 기억해내서 어린아이처럼 어리둥절해 하곤 한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된다고?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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